EP78 : 유명함이라는 가면
루나는 어느 날 새벽, 현실과 꿈의 경계에 서 있었다. 그녀가 발을 들인 곳은 거대한 도시였다. 도시의 중심에는 거울로 만들어진 탑이 서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탑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거울 탑은 모든 빛을 받아내고, 모든 사람들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루나는 탑 주변을 천천히 걸으며 사람들을 관찰했다. 그곳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얼굴이 거울에 비칠 때마다 다소 불안한 표정을 지었고, 곧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내 다시 거울을 보며 미소를 지으려 애썼다. 루나는 그의 곁에 다가가 물었다.
"왜 그렇게 계속 거울을 보고 있어요?"
남자는 놀란 듯 루나를 쳐다보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보고 있잖아요.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알아야 하니까."
"사람들이 보는 게 중요한가요?"
"처음엔 아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 탑이 나를 비춰주는 게 당연해졌어요. 사람들이 나를 보길 원했고,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게 하길 바랐어요. 그게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거든요."
루나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다시 물었다.
"그럼 지금은요? 여전히 특별하다고 느끼나요?"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지금은 그저 피곤할 뿐이에요. 내 얼굴이 이 거울에 비치는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닌 것 같아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누구인지는 상관없고, 그저 사람들이 내가 뭘 하는지 보는 게 중요해졌거든요."
루나는 그가 말하는 동안 탑을 올려다보았다. 탑은 아름다웠지만, 가까이에서 보니 곳곳에 금이 가 있었다. 그리고 금이 난 틈으로 작은 목소리들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생겼지?"
"저건 말도 안 돼."
"나는 왜 저 사람처럼 되지 못했을까?"
그 남자는 그 목소리들을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듣고 싶지 않아서 외면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사실, 유명해지는 게 내 꿈이었어요. 이젠 아니지만요. 어느 순간 깨달았거든요. 내가 진짜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니었다는 걸.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조용히 지내는 게 더 행복하다는 걸요. 근데 이미 여기까지 와버렸으니, 이제는 빠져나가기가 힘들어요. 사람들이 날 보지 않는 순간, 내가 사라질 것 같아서요. 굳이 모르는 사람들에게 얼굴과 내 사상을 드러내며, 그 사람들과 연결되어 내 행동에 영향 주고 있다는 게 괴로워요. 현실에서 만나지 못할 별 이상한 사람들도 저를 가지고 이야기하고 모든 게 다 구설수에 올라요."
루나는 그의 말에 잠시 침묵했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모두가 서로의 시선을 의식하며 탑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만족감보다는 불안과 초조함이 깃들어 있었다.
"여기를 떠나면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려다 멈췄다.
"떠난다고 해서 모든 게 나아질까요? 이미 내 얼굴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고, 내 이름은 이 탑에 새겨졌어요. 어디로 가든 나를 쫓아올 거예요."
그의 말에 루나는 탑의 거울을 조용히 만졌다. 그녀의 모습이 거울에 비치자마자, 거울은 갑자기 빛을 잃고 어두워졌다.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거울을 올려다보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왜 거울이 꺼졌지?"
사람들의 시선이 거울에서 떠나자, 그 남자는 놀랍도록 가벼운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은 금방 다른 것을 찾아 떠나요. 당신이 여기에 비치지 않는다고 해서 당신이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중요한 건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가 아니라, 당신이 누구와 함께 있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예요."
그 남자는 한참 동안 루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결심한 듯, 탑에서 걸어 나왔다. 그의 뒤로는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미 탑의 다른 부분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의 얼굴은 잊힌 듯했다.
"고마워요. 내가 잊고 있던 걸 다시 생각나게 해 줘서."
루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람들이 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당신이 보는 게 중요하니까요."
그는 탑을 뒤로하고 걸어갔다. 그의 뒤에는 긴 그림자가 드리웠지만, 앞에는 작고 따뜻한 빛이 비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