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색하다 보면 가끔 나를 잃는다
내가 나였나?
존재론적인 물음을 던져본다
쌀쌀한 공기가 피부를 에면, 다시 감각이 살아나는 기분이 든다
나를 곱씹어 본다
수영도 하고, 클라이밍도 하고, 복싱도 했었다
몸은 자세를 기억하고, 얻어맞아 피가 났던 기억이 있다
일본어와 영어를 배운 게 맞나?
내뱉으면, 뭔가 뱉어지긴 한다
신문방송부 활동으로 제작했던 신문과 동영상,
경영학 학사, JLPT, 토익 스피킹 자격증 따위가 나를 증명해준다
그래, 내가 무언가 하긴 했다
하지만 그게 지금의 나인가 싶다
한창 이데올로기에 빠졌다
겉핥기였지만 쇼펜하우어, 미셸 푸코, 불교의 사상적 이야기를 좋아했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고, 가변하는 사회적 통념 속에서
마음 가는 대로 살면 된다고 믿었다
평생 혼자 쓸쓸하게 살았던 늙은이들의 이야기
싯다르타도 못하고 법륜 스님도 못한 해탈을, 내가 할 수 있을 리 없다
철학자들도 초기와 후기로 나뉘는데, 내가 뭔 소리든 못할까
책장에는 블랙잭이 꽂혀 있다
타카하시 루미코의 만화를 좋아했다
구로사와 아키라, J-POP 따위를 좋아했다
그때는 마이너였는데, 지금은 꽤나 영향력이 있다
현학적이고 아는 체하는 것에 꽂혔다
지적 허영심도 결국 동기가 되어줬으니 나쁘진 않다
내 삶의 궤적은 흔적으로만 남았다
한때는 사회적 동물임을 부정했다
권위와 평판, 전통과 통념, 헤게모니
보이지 않는 역학관계에 허무주의로 맞섰다
행동심리학, 뇌과학, 호르몬, 책과 철학에 빠져
혼자가 편하다고 생각하며 틀어박혀 살기를 몇 년
이성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합리적 동물이라 생각했다
정치와 종교에 빠진 사람들과 내가 뭐가 달랐을까 싶다
인간은 참 별로인데, 인간적인 게 끌렸다
이론적으로는 알아도 안 되는 것들이 있었다
결국 세상으로 나오기로 했다
순진함을 순수함으로 착각하며 동경했지만
환상을 직접 걷어내니 별거 아니었다
이제는 사회적인 상황도 이해할 수 있다
음악과 책에는 대단한 코드도, 대단한 문장도 필요 없다
언젠가 내 이야기도 하고 싶다
요즘은 그냥 달린다
지나간 인연에 매달리는 것보다 달리는 게 낫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고, 사회공헌으로 유명한 서점에 들렀다
서점에서 미래를 그리는 상상이, 클럽보다 자극적이다
버킷리스트를 본다
하고 싶은 걸 하려니 가슴이 뛴다
치열하게 살던 세상이 익숙하지만, 편안함도 나쁘진 않다
복잡하고 빠른 세상에서 잠시 쉬어가는 고향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