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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ㅏ Dec 12. 2023

서울기행

파괴적이고 서정적인 도시에서 느낀 익숙한 낯섦

용산역이 보이는 친구집 아파트

 최근 여러 일로 조금 지쳐있었다. 나름 행복하게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던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나 보다. 고맙게도 몇 박을 할지도 모르는데 흔쾌히 자신의 집을 빌려주겠단 친구 덕에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급하게 산 싸구려 이어폰의 포장을 뜯고 구닥다리 노래를 들으며 잠시 눈을 붙였다.


 시간이 꽤 지난 후 살며시 눈을 뜨니 진정한 도시의 풍광이 나를 반겼다. 후진 음질의 이어폰에 귀가 아려와 이어폰을 뽑고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늘과 한강에 떠 있는 보름달. 도시의 네온을 은은하게 품고 찰박이는 강. 우람하게 솟아있는 빌딩 숲이 뿜는 화려한 조명에 비치며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흥을 받았다. 이제껏 도시에 감흥을 받은 적이 없는데. 오늘따라 왠지 가슴이 아련하게 울린다.


 애초에 지하철을 타고 친구 집으로 향하려고 했지만 아까 보았던 도시의 모습이 아롱거렸다. 지도를 펼쳐 용산역까지의 거리를 보니 1시간이면 충분히 걸어갈 수 있었다. 개찰구를 통하려던 발걸음을 돌려 서울역 대합실로 나왔다.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역이어도 11시 30분이란 늦은 시간에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서울도 별거 없다고 생각하려던 찰나 서울역 밖으로 나오니 빌딩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웅장이 서있었다. 그 모습에 압도되어 조금 움츠렸다.


 계단을 내려가며 서울의 공기를 온몸으로 맞으니 새로웠고, 목이 빠지게 주위를 둘러보던 중 대뜸 호객꾼이 나에게 여관을 구하느냐고 물었다. 백 팩과 크로스 백을 동시에 메고 빌딩 하늘을 둘러보는 촌뜨기를 보고 영업본능이 자극되었나 보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 낯선 도시에 적응하지 못한 건 나뿐이었다. 화려한 서울 거리를 익숙한 듯 거니는 회사원과 학생, 거리에 드러누워 세상에 대한 불만을 뿜어내는 노숙자. 그 대척점에 서서 서울이란 도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나뿐이었다.


 낯선 도시를 걷는 것은 힘들었다. 그들에겐 일상인 도시가 나에겐 어려웠다. 지방 도시에 살다가 서울을 걷는 것은 다큐멘터리에 살다가 갑자기 액션영화로 편입하는 느낌이다. 길거리에 흩뿌려진 선혈, 비틀거리며 걷는 취객, 어디선가 풍겨오는 역한 냄새. 이것들의 정체를 자세히 알고 싶지 않아 걸음을 빨리했다.


 도망과 비슷하게 걷던 중 교차로에 발목이 잡혀 잠시 멈추게 되었다. 순간 하타 모토히로의 RAIN이 듣고 싶었다. 의식적인 흐름이 아닌 본능적인 흐름으로 음악을 켜고 내장 스피커로 음악을 듣게 되었다. 신호를 기다리며 음악을 듣는데 때마침 지나가는 전차의 소리에 음악이 뭉개졌다. 이것도 나름대로 좋다고 느끼고 있는데 몸에 전율이 돋았다. 낯선 도시, 익숙한 음악, 파괴되는 부조화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조화가 나를 공명 시켰다.

 

 서울은 참 이상한 도시이다. 크리스토퍼 놀런의 영화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가 동시에 상영되는데 BGM으로는 김광석의 먼지가 되어가 흐르기 때문이다. 이 이상한 도시에도 익숙함은 있었다. 길 건너로 몇 번 와봤다고 익숙해진 용산역이 보이자 긴장이 조금 풀렸다. 하지만 이상하게 건너로 넘어가는 길이 다 막혀있었다.


 엄청나게 가고 싶은 곳에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막힌 길이라 돌아가야 한다는 좌절감과 허탈감은 다시 느끼고 싶지 않다. 고행 끝에 익숙한 동네에 도착했지만 언제 와도 익숙해지지 않는 고급아파트에 맞서니 기분이 묘했다. 40층이 넘어가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드디어 도착이라는 생각을 하니 진이 다 빠졌다.


 친구 집의 벨을 누르고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더 늦게 도착하여 걱정 가득한 친구에게 인사를 했다. 꽤나 고된 여정이었기에 바로 이불에 쓰러지듯 누울 뻔했지만 문득 오늘의 감정을 일기로 남기고 싶다는 열망이 생겨 편의점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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