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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ㅏ Sep 17. 2024

열심 벌과 대충 벌

EP 23: 열심히 해서 타오르는 날개와 대충 하며 꿀 빠는 벌

 루나는 온통 노란 육각형 통에서 눈을 떴다. 이번엔 어디로 온 걸까,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니 창이 나있었다. 창밖을 보니 형형색색의 꽃들이 가득 피어 있었고, 그 위로 작은 벌들이 날아다니며 분주하게 꿀을 모으고 있었다. 벌들의 세상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벌들은 모두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두 마리의 벌이 유독 루나의 눈길을 끌었다. 

 첫 번째 벌은 마치 전쟁터에 나온 병사처럼 매섭게 날개를 휘저으며 꽃에서 꽃으로 이동했다. 그 꿀을 모으는 속도는 숨 막힐 만큼 빠르고, 그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다. 반대로 두 번째 벌은 느긋하게 꽃잎 위에 앉아 그저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꿀을 모으는 일에 신경 쓰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고, 흡사 세상의 모든 시간은 자신에게 있다는 듯, 여유롭게 몸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루나는 두 벌을 관찰하다 호기심에 이끌려 첫 번째 벌에게 다가갔다.

“꿀을 모으는 게 그렇게 급해?” 

 루나가 말을 걸자, 벌은 잠시 날갯짓을 멈추고 루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은 바쁘고, 집중력이 가득 찬 듯 보였다.

“물론이지. 꿀을 모으는 건 내 삶의 전부야. 하나라도 놓치면 안 돼. 이 꽃도, 저 꽃도… 전부 모아야 해. 피드백도 받아야 하고, 목표도 달성해야지. 그래야 내가 제대로 일했다는 보람이 생기니까.” 

 벌은 숨도 돌리지 않고 자신의 일에 몰두한 채 말했다.

루나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이렇게 열심히 해서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벌은 숨을 헐떡이며 잠시 생각했다.

 “더 많은 꿀을 모아야지. 그리고 더 좋은 평가를 받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거야. 매일이 경쟁이고, 매일이 도전이지.”

“그래, 넌 정말 멋지게 일하는 것 같네. 하지만… 그렇게 쉴 틈 없이 일하다 보면 언젠가는 무너지지 않을까?”

벌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쉴 틈? 쉴 틈을 주면 난 뒤처질 거야. 세상은 그런 걸 기다려주지 않아. 계속해서 나아가야 해. 그래야 살아남지.”

루나는 그 말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깐, 너는 계속 나아가고, 멈추지 않는 거네. 근데 그게 꼭 행복한 건지는 모르겠어.”

 벌은 고개를 저으며 다시 바쁘게 날아갔다. 루나는 그런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번엔 느긋한 벌에게 다가갔다. 이 벌은 한참 동안 꽃 위에 앉아있기만 했다. 날개를 천천히 움직이며 마치 바람결에 몸을 맡긴 것처럼 보였다.

“넌 꿀을 안 모아도 되는 거야?” 

루나가 물었다.

느긋한 벌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꿀을 모으긴 해. 하지만 꼭 그럴 필요가 있을 때만 하지. 세상은 너무 바쁘게 돌아가잖아. 난 그 흐름에 굳이 휘말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꽃도 많고, 시간도 많으니까.”

루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렇다는 건… 넌 그냥 시간을 흘려보낸다는 거야?”

벌은 천천히 날개를 움직이며 웃었다.

 “그렇지.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누구나 바쁘게 일한다고 해서 나도 똑같이 바쁘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 나는 느리게 가더라도 오래 남아 있을 거야. 중요한 건 그거야.”

루나는 그 말을 듣고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넌 그렇게 대충 해도 결국엔 오래 남는다고? 참 웃기네.”

느긋한 벌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사람들은 내가 대충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결국엔 오래 남는 건 나일지도 몰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너무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내 방식대로 살면 되는 거지.”

루나는 이 두 벌을 번갈아 바라보며 흥미롭다는 듯 입술을 오물거렸다.

 “한쪽은 끝없이 달려가고, 다른 쪽은 천천히 시간을 흘려보내고… 참 묘하네. 그런데, 둘 다 결국엔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거 아닌가?”

 열정적인 벌이 그 말을 듣고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 나는 훨씬 더 빨리 목적지에 도달할 거야. 세상은 나 같은 사람들을 필요로 해. 더 많은 꿀을 모으고, 더 많은 성과를 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어.”

반면 느긋한 벌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네가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무조건 더 나은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야. 중요한 건 내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느냐지. 결국 남는 건 나일 거야. 열정적으로 불타면 결국 자기까지 불타 버리 거든.”

루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생각에 잠겼다. 

“결국, 세상은 너희 둘 같은 사람들이 굴러가게 만드는 거겠지. 한쪽은 끝없이 달리고, 다른 쪽은 그저 흘려보내며… 어느 쪽이 더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살아남는 방법은 각자 다르다는 거네.”

 열정적인 벌은 루나의 말에 분노가 담긴 목소리로 외쳤다.

 “내 방식이 훨씬 더 나아! 세상은 내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을 거야. 모두 나처럼 열심히 일해야 성공할 수 있어.”

느긋한 벌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그럼 그렇게 열심히 달려봐. 나는 여기서 널 느긋하게 기다릴 테니까. 어차피 나도 여기 남아있을 거야. 네가 모아 온 꿀을 빨면서”

 시간이 흘러, 열정적인 벌은 결국 과도한 일과 스트레스로 지치기 시작했다. 그는 여왕벌에게서 좋은 피드백을 받기 위해 매일 더 많은 꿀을 모았지만, 점점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실망했고, 결국 무리해서 일한 결과 몸이 쇠약해졌다. 더는 날개를 펄럭일 힘조차 없어졌을 때, 그는 깨달았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했지만, 정작 나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구나.’

 반면, 느긋한 벌은 여전히 천천히 꿀을 모으며 자신만의 리듬으로 살았다. 누군가가 대충 한다고 비난해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그는 결국 더 많은 꿀을 모았고, 놀랍게도 그동안 지켜봤던 다른 벌들보다 오래 살아남아 있었다. 어느새 그는 다른 벌들을 관리하고 조정하는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마 지막으로 루나는 이 두 벌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결국 남는 건,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겠지. 착하게 살든, 대충 살든, 모두 자신의 선택일 뿐이야. 그렇지만 딱 두 방식의 중간이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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