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2: 사는 건 정치고 서로 질투하는 존재
루나는 고요한 초원에서 눈을 떴다. 꿈속을 걷는다는 건 언제나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현실 같이 느껴지지만, 현실이 아니라는 걸 느끼면서 오는 묘한 괴리감이 그것이다. 감정을 즐기며 걷다 보니 고요한 들판에 사자 한 마리가 앉아 있었는 것을 보았다. 사자는 웅장한 갈기를 휘날리며, 위엄 있는 모습으로 앉아 있었지만, 그 눈빛은 이상하게도 피곤해 보였다. 루나는 그에게 다가가 무심한 듯 말을 걸었다.
"왜 이렇게 피곤해 보이지? 사자가 피곤하면 안 어울리잖아."
루나가 가볍게 농담을 던지며 말을 건네자, 사자는 잠시 고개를 돌렸다. 그 눈 속에는 깊은 한숨이 담겨 있었다.
"살아가며 정치라는 것을 알게 됐지, "
사자가 무겁게 말을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나의 힘을 믿고 나아갔어. 내가 제일 강하다는 확신, 나를 따르는 무리들, 그리고 나를 도와주겠다는 이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달라지더군."
루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강한 네가 왜 피곤해? 힘이 있으면 그걸로 끝 아니야?"
사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힘이 있으면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기댔지.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모든 걸 쏟아부으면 그들은 나를 더 따랐고. 결국 왕의 신임까지 얻었어! 하지만 내가 너무 앞서가니 그들은 불안해하더군. 어느 순간 나의 존재가 위협으로 변하더라고. 함께 시작했던 동료들, 믿었던 자들이 나를 두려워했어. 그래서 결국 날 내몰더군."
루나는 입술을 비틀며 묻는다.
"너무 강해서 위협으로 느낀 거야?"
사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맞아. 내가 너무 잘 나갔어. 나를 도와줬던 자들은 어느새 등을 돌렸고, 나는 그들의 손에 의해 내쳐졌지. 나는 그저 우리 무리가 가장 강해지길 바랐을 뿐이야. 절대 누군가를 착취하거나 파괴할 생각이 없었어. 반역할 생각도 없었다고! 그저 무리만 생각했는데, 그들은 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
루나는 흥미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왕은 나를 버렸어, "
사자는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그의 권력을 위협한다고 느끼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는 나를 조금씩 멀리하기 시작했지. 어느 날 나는 왕의 신임을 완전히 잃었고, 왕은 내가 감히 그를 넘어서려고 한다는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렸어. 내가 그와 함께 이룩했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지."
"사람들이랑 똑같네. 마치 왕조를 건국하자마자 도와줬던 사람들부터 숙청하는 것처럼. 권력 앞에서는 아무도 믿을 수 없지."
사자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정확해, 그래서 이번엔 내가 왕이 되기로 했어. 왕에게 버림받은 사자지만 그래도 난 강했고, 나를 따르거나 뜻이 맞는 사자들과 세계를 바꾸자고 했지. 우리 모두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어. 실제로 나는 새로운 세력이 되었고 입지를 굳혔어. 하지만 권력의 중심에 서고 나니, 머리가 굵어진 사자들은 다시 자기들 이득을 취하게 됐지. 나를 도와준 이들 역시 나를 질투하기 시작했어. 내가 왕이 되기 전까지는 나와 함께 싸웠던 동료들이었지만, 이제 내가 왕이 되니 그들 역시 나를 경계하기 시작했지. 내가 그들을 믿고 맡긴 직위들, 그들이 나와 함께 세운 왕국의 모든 것이 그들에게는 내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버린 거야. 반항하기 시작했으며 내세운 대의명분을 잊곤 권력을 막 휘둘렀어. 결국엔 또, 나에게 화살을 돌려 나는 무리를 떠났어."
사자는 고개를 숙이며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나 역시 숙청을 제대로 하지 못했어. 그들이 나를 배신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으면서도, 한때 함께했던 동료들을 처단하기엔 마음이 약해졌지. 하지만 그 결과로 결국 나는 나의 왕국마저 잃게 됐어."
루나는 그 말을 듣고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결국 왕이든 뭐든 다 똑같은 거네. 누구든 힘을 가지면 그게 위협이 되고, 또 그걸 지키려고 하면 다시 배신당하고. 그래서 네가 이렇게 피곤해 보이는 거겠지."
"맞아, "
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게 정치였고, 나는 그 정치에 너무 지쳤어. 가족도, 친구도, 동료도, 그리고 내가 세운 왕조조차도 모두 나를 배신했어. 오직 나만 남았지. 나를 믿었던 사람들은 어느새 나를 질투했고, 나를 오해했으며, 결국에는 나를 떠나버렸어. 전혀 근거 없는 루머에 휘말리기도 했고, 그로 인해 나의 모든 신뢰는 무너졌지. 모든 과정에서 나는 너무 지쳤어. 이제는 더 이상 싸우고 싶지도, 무언가를 이뤄내고 싶지도 않아. 그냥 이렇게 혼자 남아서 조용히 살고 싶을 뿐이야."
루나는 사자의 피로함이 깊이 배어 있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열심히 살려고 하면 결국엔 지치게 되는 거지. 너처럼 말이야. 정치라는 게 결국 사람을 소모시키고, 그걸 다 알고 나면 피곤해지는 거고."
사자는 쓸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맞아. 난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 그저 이 들판에서 조용히 혼자 남아있을 뿐이야. 아무도 나를 찾아오지 않고, 아무도 나를 배신하지 않는 그날까지."
루나는 사자의 말을 듣고 자신의 경험을 떠올렸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입을 열었다.
"어디 조폭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 같네. 다들 보스를 믿고 따르지만, 머리 굵어지면 결국 배신하고, 자기편이었던 사람들마저도 죽여버리지."
사자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식이지. 내가 너무 강해지니, 그들은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어. 결국 나를 없애는 게 그들의 목표가 된 거지. 모든 게 정치였어. 심지어 내가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나도 그런 정치를 해야 했고, 그게 너무나도 지치더군."
루나는 이 말을 듣고 약간 조소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네가 이렇게 피곤해 보이는 거구나. 세상이란 게 원래 그렇지. 아무리 강해도 결국 다들 자기 이익만 생각하잖아."
사자는 고개를 숙였다
"정말 그래. 힘도, 권력도, 심지어 믿음마저도 모두 잠시뿐이야. 내가 누구를 도와주든, 그들은 결국 나를 버릴 준비를 하더군. 마치 처음부터 내가 필요 없었던 것처럼."
루나는 살짝 눈을 찡그리며 사자의 말에 한 마디 덧붙였다.
"참 허무하네.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아서 결국은 버림받고 피곤만 쌓이다니."
사자는 고개를 들며, 슬픈 눈으로 루나를 바라봤다.
"그런 게 세상이더군. 그래서 난 이제 더 이상 힘을 쓰지 않아. 너무 지쳤어. 이젠 그냥 가만히 있을 거야. 내 힘이 필요 없어진다면, 어쩌면 그들이 날 두려워하지도 않겠지."
루나는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말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국엔 토사구팽이지. 너무 잘하면 위협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무시당하고. 어느 쪽이든 결국엔 다 똑같아."
사자는 힘없이 웃음을 지었다.
"맞아. 그래서 나는 이제 그냥 이 들판에서 이렇게 앉아 있는 거야. 더 이상 달리고 싶지도, 싸우고 싶지도 않아."
루나는 그를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정치의 연속이구나, 사는 게."
그리고 그녀는 그를 두고 천천히 자리를 떠났다. 사자가 더 이상 뭔가를 원하지 않는 그 자리에, 밤이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