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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ㅏ Sep 15. 2024

찾아오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찾아가는 것

EP21: 땅을 파고 기다리는 두더지

 

루나는 몽환적인 숲에서 눈을 떴다. 꿈속 세계는 늘 변덕스러웠지만, 그날은 유난히 더 깊고 어두운 밤이었다. 하늘은 구름으로 덮여 달빛조차 내리지 않고, 사방에는 잔잔한 소리가 가득했다. 소리는 누군가가 무언가를 파내는 듯한 소리 었고, 루나는 소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소리가 나는 곳에는 커다란 구멍이 파져 있었고, 들여다보니 두더지가 있었다. 두더지는 땅을 파다 루나를 보고는 놀란 기색도 없이 그저 바라본다. 루나는 묘한 이상함을 느끼고 똑같이 두더지를 바라본다. 두더지는 원래 땅속에서 움직이는 존재인데, 이렇게 지상에서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뭘 하고 있어?” 

결국 루나가 침묵을 깨고 물었다. 두더지는 가만히 침묵하며 바라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기뻐하며 말한다.

 “드디어 말 걸 저 주는구나! 기다리고 있어.”

“기다리고 있다고?” 

루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두더지를 바라보았다.

 “뭘 기다리는데?”

두더지는 천천히 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를 찾아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어.”

루나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

“찾아줄 누군가? 너를? 왜?”

“난 혼자선 못 찾아.” 

두더지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내 꿈도, 내가 가야 할 길도, 심지어 나와 함께할 친구나 연인도... 나를 찾아주길 기다리고 있어. 내가 그들을 찾아가는 건 너무 어려워. 그래서 언젠가 누군가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었지!”

 루나는 살짝 한숨을 쉬며 두더지 곁에 앉았다.

“그러니까, 넌 지금 이 자리에 앉아서 누군가가 와서 ‘이게 네가 가야 할 길이야, 이게 네 친구야, 이게 네 꿈이야’라고 말해주길 바란다는 거야?”

두더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 참. 누가 너를 찾아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세상이 너한테 그렇게 친절할 거라고 믿는 거야? 갑자기 하늘에서 직업이 나오고 친구가 나오고, 꿈이 이뤄지는 기회가 올 거라 생각하는 거야? 아무것도 안 해도?”

두더지는 그 말에 대꾸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보며 루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번엔 조소가 아닌, 따뜻한 미소였다. 그녀도 언젠가는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다. 세상 속에서 길을 잃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을 때,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주길 바란 순간들이 분명 있었으니까. 루나가 부드럽게 말했다. 

“있잖아, 네가 기다린다고 해서 누군가가 너를 찾아주진 않아. 네 꿈도, 네 길도, 네가 찾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 찾아주지 않아.”

두더지는 조용히 루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난 모르겠어. 어디로 가야 할지도, 뭘 해야 할지도. 그냥 이곳에 남아서 누군가가 날 데려가줬으면 좋겠어. 너무 어려워 보이는 걸.”

루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두더지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네가 무서운 건 알겠어. 세상이 넓고, 갈 길은 많아 보이니까. 하지만 그 모든 길이 너를 기다리고 있진 않아. 네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널 위해 그 길을 열어주지 않을 거야.”

두더지는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루나를 쳐다보았다. 

“근데... 내가 선택하는 길이 틀리면 어떻게 해? 잘못된 선택을 하면 다시 돌아올 수도 없을 것 같아.”

“틀리면 어때?”

 루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실패한다고 해서 세상이 끝나는 게 아니야. 오히려 네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실패지.”

두더지는 입술을 꼭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 천천히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러면... 내가 찾아 나서야 하는 거네.”

“그렇지,” 루나는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 “너의 꿈도, 너의 길도, 네가 찾아야 해. 그리고 그 길에서 만나는 친구나 연인도 결국 네가 만나러 가는 거야. 기다린다고 그들이 널 찾아오진 않아.”

두더지는 여전히 불안한 기색이었지만, 이번엔 조금은 결심한 듯 보였다.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루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디서든 상관없어. 네가 첫걸음을 떼면 그다음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야. 길은 네가 걷기 시작할 때 비로소 나타나기 마련이니까.”

두더지는 잠시 생각하더니, 깊은숨을 내쉬며 땅을 파기 시작했다. 미약하나마 천천히 첫 발을 내디딘 거다. 루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속으로 작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시작하네,” 

루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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