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 뜨겁고 시끄러운 낯과 차갑고 고요한 밤
루나는 눈을 비비며 어둠 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바람 소리와 함께 은은하게 빛나는 달빛이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차가운 공기가 볼을 스치자, 그녀는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끝도 없이 펼쳐진 검은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기서 길을 잃은 건가…” 루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낮이 아닌 밤에 길을 잃는 건 꽤나 생소한 일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루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았다. 눈앞에는 커다란 나무의 가지 위에 앉아 있는 올빼미가 있었다. 눈이 커다랗고, 어둠 속에서도 그 노란 눈동자는 빛을 잃지 않았다. 루나는 올빼미와 시선을 마주쳤다.
“낮에 깨어 있을 줄이야. 그런 고생을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올빼미가 말을 건넸다. 그의 목소리는 낮은 톤에 어딘가 차분했다.루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낮이 문제라는 거지? 사람들이 보통 낮에 일하고, 움직이고, 생활하는 게 당연한 거잖아?”
올빼미는 눈을 반쯤 감으며 날개를 가볍게 폈다.
“그건 너희 인간들의 기준이지. 이 세상에서 낮은 눈부시고, 뜨겁고, 위험한 시간이야. 불필요한 빛에 노출되면 너의 감각은 마비되고, 마음의 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게 돼.”
루나는 반박하려 했지만, 한참을 생각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사실 그녀도 낮의 번잡함이 부담스러울 때가 많았다. 모든 것이 눈부시게 빛나고, 사람들은 끝없이 움직이고,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럼 너희는 언제 일을 해?”
루나는 궁금해졌다. 올빼미는 천천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밤에. 밤은 감각이 깨어나는 시간이거든. 모든 것이 조용해지고, 진짜 나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지. 벌레 소리가 들리고, 달빛은 은은하게 우리를 비춰주지. 너무나도 평온한 시간이야.”
루나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밤에 그런 매력이 있었나 싶었다. 항상 낮과 함께 살아왔던 그녀에게는 생소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밤에는 해도 없고, 뭐랄까, 우울할 수도 있잖아. 또, 사람들은 어둠을 두려워해.”
루나는 조금 더 따져묻고 싶었다. 그녀는 밤의 조용함을 사랑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휴식 시간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올빼미는 미소를 유지한 채,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건 어둠이 아니라, 그 어둠 속에서 자신을 마주하는 일이야. 낮에는 아무 생각 없이 눈부신 빛 속에서 살아가며 자신을 가리지만, 밤이 되면 모든 게 정지되고 진짜 모습을 볼 수 있거든.”
루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올빼미의 말이 어딘가 이상하게 끌렸다. 그녀도 밤에 혼자 있을 때면 가끔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생각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고는 했다.
“그럼 너희는 늘 밤에만 사는 거야?”
“그렇지. 우리는 밤의 생명들이니까. 낮은 우리에게 너무나 불편해. 눈을 제대로 뜨기도 힘들고, 따가운 햇살 아래서는 몸이 금세 지쳐버리지. 우리가 선택할 수 있었다면 아마 낮을 피해 밤을 택했을 거야.”
루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밤에는 아무도 없잖아. 낮처럼 활기차지 않고… 혼자 있는 기분이 들 텐데.”
올빼미는 고개를 저었다.
“혼자 있다고 생각하지 마. 밤에는 우리가 진정으로 연결될 수 있는 시간이야.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더 깊이 느끼고 교감할 수 있거든. 그리고 감성도 살아나지. 낮에선 절대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이 밤에 피어나.”
루나는 조용히 올빼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녀는 문득, 밤의 고요함이 올빼미가 말한 대로 감성을 자극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낮에는 너무 많은 소음과 방해 요소들이 가득했지만, 밤에는 모든 것이 멈춘 듯한 평온이 있었다.
“그러면… 사람들도 이렇게 살아야 할까?”
루나는 진지하게 물었다. 올빼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건 사람마다 다르겠지. 하지만 나는 밤에 사는 게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해. 밤은 모든 것의 본질을 드러내거든. 빛에 의해 가려지지 않은 진실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건, 어떤 의미에서 더 행복한 일일지도 몰라.”
루나는 고개를 숙이며 생각에 잠겼다. 밤에 사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는 말이 이상하게도 와 닿았다. 낮의 강렬한 빛 아래서는 보이지 않던 진짜 모습이, 어둠 속에서 더 명확하게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데… 네 말을 들으니 나도 밤에 살아보고 싶어졌어.”
루나는 중얼거렸다.올빼미는 미소를 지으며 날개를 한 번 더 펴고 말했다.
“언제든지 환영이야. 밤은 모든 이에게 열려 있으니까.”
루나는 고요한 밤공기를 마시며 올빼미와 함께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은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그곳엔 낮의 빛보다 훨씬 더 깊고 진한 무언가가 숨어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