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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ㅏ Sep 20. 2024

하고 싶은 걸 해야 해

EP 26: 큰 나무를 떠난 딱따구리

 루나는 작은 마을에서 눈을 떴다. 마을은 조용하고 안정되어 보였고, 나무마다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동물들이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대다수는 숲 속에서 가장 크고 튼튼한 나무들 주변에 모여 일하고 있었고, 그들의 움직임은 질서 정연하고 효율적이었다. 그들은 마치 모두 한 방향을 향해 움직이는 듯했다. 어디를 가든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같은 목표를 향해 일하는 모습이었다. 거기서 일하는 동물들은 자부심이 있어 보였고, 실제로 일하기 어려운 곳이라 마을 동물들의 존경 어린 시선도 받았다.


 루나는 이 광경이 눈길을 끌었지만, 마을 외곽 한 구석에서 홀로 나무를 쪼고 있는 딱따구리를 발견했다. 그는 마을의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조용히, 그리고 묵묵히 일을 하고 있었다. 그의 작업은 언뜻 보면 별다른 성과도 없고, 무의미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의 표정엔 다른 동물들과는 사뭇 다른 평온함이 감돌고 있었다.


루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안녕? 무슨 일을 하고 있어?” 루나가 물었다.


딱따구리는 멈추지 않고 나무를 쪼면서 대답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


루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다른 동물들은 숲에서 가장 크고 단단한 나무에 모여서 일을 하는데, 너는 왜 여기 혼자 있어?”


딱따구리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그 나무들이 얼마나 크고 멋진지,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나도 알아. 많은 동물들이 그 일을 꿈꾸고 있고, 그걸 자랑스러워하지. 하지만 난 그 나무들에서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않아.”


루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남들이 좋다고 하고, 보람 있는 일을 안 하려는 거야?"


딱따구리는 잠시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루나를 바라보았다.


 “동물들은 모두 큰 나무를 쪼고, 그걸 자랑스러워하지. 그 나무는 크고 튼튼하고, 모든 동물이 그 나무 아래에서 일하고 싶어 해. 마을에서도 그 일을 한다는 건 명예로운 일이니까. 그런데 나는 그 나무를 쪼을 때 느껴지는 무거움이 싫어. 거기서 일할 때의 압박감도. 대신 이렇게 작은 나무를 쪼는 게 나한텐 훨씬 즐거워. 누군가는 하찮다고 여길 수 있지만, 이게 나에겐 더 의미 있어.”



루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동물들은 너를 어떻게 생각해? 그들은 네가 혼자 다른 길을 가는 걸 이해하나?”


딱따구리는 씁쓸하게 웃었다. 


“이해할 리가 있겠어? 당장 우리 부모님도 왜 그 좋은 일을 그만뒀냐고 해. 심지어 내가 하는 일을 가치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왜 그들과 함께하지 않냐고 물어. ‘그 큰 나무는 정말 좋은 기회인데 왜 포기하냐’고. 처음엔 나도 흔들리기도 했어. 다들 그렇게 좋은 길이라는데, 왜 내가 거부하는지 나도 모를 때가 있었거든.”


“그런데 왜 계속 네 길을 선택했어?” 


루나가 물었다. 딱따구리는 다시 나무를 쪼기 시작하며 말했다. 


“남들이 보기에 좋은 길이 나에게도 좋은 길일 거라는 보장은 없더라고. 거기서 일하면 많은 이들이 날 인정해 주고,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내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뭘까 생각하다 보니,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들이 내겐 더 이상 의미 없더라고. 난 여기서 작은 나무를 쪼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더 만족스러워.”


루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가는 게 꼭 옳은 건 아니지. 너처럼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찾는 게 더 중요한 걸지도 몰라.”


딱따구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맞아. 그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난 내 마음을 따르고 있는 거니까.”


시간이 흘러, 마을에서 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동물들은 서로 힘을 합쳐 가장 튼튼한 나무를 쪼아내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딱따구리에게도 참여하라는 제안이 들어왔지만, 그는 여전히 조용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마을 동물들은 그를 이상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왜 저렇게 작은 일에만 매달리고 있는 걸까? 저러다 아무 성과도 못 내는 게 아닐까?”


하지만 딱따구리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고, 그의 작업은 느리지만 분명한 흔적을 남겼다.


어느 날, 큰 나무 프로젝트가 갑작스럽게 중단되었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다. 동물들은 당황하며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때 딱따구리가 조용히 다가와 말했다.


“내가 작은 나무를 쪼아서 만든 이 조각들을 사용해 보면 어떨까? 지금 당장 큰 나무를 다시 손볼 순 없겠지만, 내가 해놓은 일로 잠시 대처할 수 있을 거야.”


모두가 의아해하며 그를 바라봤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일이 없던 그들은 결국 딱따구리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의 조각들이 예상보다 훨씬 유용하게 쓰였다.


딱따구리는 자신의 일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된 것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보이지 않는 일이라도, 내가 진정으로 원하고 즐기는 일이라면 그 가치는 언젠가 드러나는 법이야.”


루나는 그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느꼈다. “모두가 가는 길이 답이 아니라, 내가 정말 가고 싶은 길을 찾는 것이 진짜 답이구나.”


그날 이후로도 딱따구리는 여전히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작은 흔적들은 마을 곳곳에서 자그마한 빛을 발하며, 각기 다른 빛깔로 사람들의 삶에 스며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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