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자전거도둑 -4-

오전 10시 20분의 햇살

by mupdayz

정확히 455만 5천원에 구입한 로드 바이크. 세계 최고의 기술력이 결집된 하이 테크놀로지의 결정체. 남은 돈은 당연하지만 나 자신을 이런 자전거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꾸미는데 할애하였다. 통기성과 안전성에서 이미 전국민적인 검증을 받은 헬멧과 스포츠 선글라스, 그리고 마치 방금 결승점을 돌아온 선수로 착각하게끔 만드는 저지까지. 이쯤되면 며칠 전 트루 드 프랑스에 다녀온 연륜 넘치는 바이커라고 해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가 아닐지! 밤새 어루만지던 자전거를 끌고 나온 오전 10시 20분의 햇살은 아름답다 못해 눈부시다.


아파트를 나와 몇 십미터만 달려 좌회전을 하면 공원이 펼쳐진다. 그 공원을 오른쪽에 두고 길 끝으로 달리는 삼거리 신호등이 나오고, 평소에도 그다지 차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한적한 횡단보도를 건너 계단 옆의 기다란 내리막길로 내려가면 한강둔치로 들어가는 터널이 나온다. 그 터널의 입구에서 한강을 바라보면, 한강 건너편 아파트 단지가 터널 천장에 가려 마치 그 강물이 끝없이 펼쳐진 바다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그것은 지금의 내가 머물고 있는 곳과는 아주 다른 미지의 어느 곳으로 향하는 것럼 느껴져 가끔 햇살이 좋은 날이면 터널 입구에서 그렇게 멍하니 저 검은 구멍 끝에 펼쳐진 나만의 바다를 감상하곤 하였다. 바로 거기로 갈 참이었다. 정확히 455만 5천원에 빛나는 티타늄 로드 바이크와 함께.


형이 회사에 출근 한 후, 오전의 라디오에서 아주머니의 눈물 없이는 듣기 힘든 따분한 사연들이 즐겁게 울려퍼지는 10시 20분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마치 나는 어떤 의식을 치르듯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며 두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다가 이윽고 아파트 현관 앞을 나와 바로 정문 옆에 붙어있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군인이 전쟁에 나가기 전에 총이 있어야하듯, 이런 날씨에 자전거를 타려면 차가운 물은 필수이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나의 로드 바이크 티타늄 바디에는 그에 걸맞는 매우 모던하고도 샤프한 보틀 케이지가 장착되어 있었다. 이 녀석에게도 곧 장착될 '차가운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힌 생수 한 병'이 첫 경험일 거라 생각하니 어쩐지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를 편의점 앞에 잠시 세워두고 한껏 멋을 낸 내 모습을 뽐내듯 어깨를 떡 벌리고 음료수 냉장고로 다가가 생수 한 병을 집어 들었다. 늘 만원에 4캔짜리 맥주만 사던 내가 알고보니 이런 럭셔리한 레저를 즐기는 문화인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듯 편의점 사장은 평소에 비해 5초 정도 나를 더 훑어보았다.


콧노래를 부르며 계산을 하고, 다시 편의점을 유리문을 열며 자전거로 다가갔다. 이제 이 생수를 보틀 케이지에 넣고 안장에 앉아 패달을 밟으면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된다, 라는 문장이 내 머릿속에서 다 끝나지도 않았을 때 나는 마치 백만볼트 고압전류에 맞은 듯 멍한 충격에 휩싸였다. 뭐지? 여기 있던 내 자전거... 내 자전거가 어디로 간 거지? 내 자전거가 사라져버렸다. 단 2분 30초 정도의 시간이었는데, 내 자전거가 없어졌다. 홀로 멀리 떠나버린 것이 아니라면, 누군가가 가져간 거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내 자전거를 도난 당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지금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만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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