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만남, 우리는 엄마를 이야기했다

-여고 동창생들이 추억해 낸 엄마 이야기

by 땡자랑

오랜만에 만난 여고 시절 우리들의 만남.

동화책 한 권에서 시작된 엄마 이야기에 우리는 그날 다시 딸이 되었다.


여고 동창생들이 12시부터 모였다. 올해 첫 만남이라 그런지 반가움에 얼싸안고 한참을 웃었다. 우리가 늘 만나던 장소라 더없이 편안했다. 회장님이 미리 준비한 쑥떡을 나누며 인사말로 모임이 시작됐다. 최근 아들을 결혼시킨 친구가 기쁜 마음으로 점심을 사고, " 우리 모임은 좋은 일이 이어져 밥 살 사람이 줄을 선다."는 말에 다 같이 웃음꽃이 피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어색함은 전혀 없었다. 파머를 하고,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인 것처럼 살아가는 친구들이다. 자식 이야기, 부모님 이야기를 나누며 분위기는 금세 깊어졌다. 조금 늦게 도착한 친구는 앞자리부터 손인사를 건네며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역시 식탁 위에 단골 화제는 건강이었다. 좋은 음식과 건강보조 식품 이야기로 서로를 챙긴다.


식사를 마친 뒤 회장님은 오늘 모임의 주제를 꺼냈다. 다양한 이벤트를 고민한 끝에 선택한 것은 '동화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기'였다. 각자에게 나눠준 책은 내용은 달랐지만 주제는 모두 '엄마'였다.


동화책을 한 권씩 나눠 들고 읽기 시작했는데,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우리는 모두 다시 딸이 되었다.


익산에 살았던 친구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의 엄마는 당시로는 드물게 예술적 감각을 중요하게 여긴 세련된 분이었다. 한글을 배우는 국민학교 대신 전통 무용을 가르치는 학원에 보냈고, 피아노를 가르쳤다. 덕분에 예술적 감각을 키웠고, 지금도 교회에서 피아노를 반주를 하고 있다. "엄마는 내 미래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아."라는 말이 여운으로 남았다.


'엄마 마중'을 읽은 시골에 자란 친구 이야기는 모두를 울렸다. 엄마는 매일 새벽 두 시에 일어나 채소를 다듬어 큰 보따리를 만들었다. 동이 트기도 전에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십리를 걸어 버스를 타고 새벽장에 나가 채소를 팔았다. 엄마가 집에 오면 일곱 형제들은 혹시라도 맛있는 것이 있을까를 기대하며 엄마의 보따리부터 들여다봤다. 그때는 아무것도 없는 빈보따리에 실망했지만, 이제는 자식들이 좋아하는 과자를 살 수 없었던 엄마의 마음을 이해했다. 자식들 입에 넣을 것 하나 사지 못했던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출근하는 엄마 이야기가 그려진 동화책을 읽은 친구는 워킹맘으로 아이를 두고 출근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울며 매달리는 아이에게 껌을 주고 출근했다는 기억과, 아들이 "학교 급식이 제일 맛있어."라고 말했을 때의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요즘 아이들이 급식을 남긴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 시절 밥 한 끼 따뜻하게 챙겨주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라 아직도 가슴이 아리다고 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는 주말마다 어르신께 동화책을 읽어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 시간이 오히려 자신에게 더 큰 기쁨이었다. 시골에 계신 엄마는 여전히 딸이 온다고 하면 시간을 물어 그 시간에 맞춰 밥을 새로 짓고 상을 차렸다. 멀리서 차 소리가 들리면 문을 나와 기다리다 맞이해 주고, 돌아갈 때는 냉이, 달래, 시래기, 무 말랭이를 한가득 챙겨준다. 다 먹지 못해 버릴 때도 있지만. 그 정성 때문에 늘 두 손 가득 안고 돌아온다고 했다. "엄마는 아직도 나를 딸로 키우고 있어"라는 말이 참 오래 남았다.

'꽃엄마'라는 위안부 이야기를 읽은 친구는 관련 업무를 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녀들은 결혼도, 가정도, 아이도 갖지 못한 채 홀로 살아내야 했던 고단한 삶이었다. 생존해 계신 분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결국 홀로 생을 마감해야 했으며, 무연고로 돌아가신 분의 장례를 치러드렸던 기억을 담담하게 전했다. 그 이야기에 모두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동화 속에서 엄마는 포근한 푸들, 요리사, 잔소리쟁이, 나무늘보, 헐크로 변신한다. 셋째를 임신한 채 대학원을 다녔던 친구는 늘 졸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무늘보 엄마'에 공감했다. "엄마는 잠만 자면서 공부는 어떻게 했어?"라고 묻던 첫째 아이의 말에 모두가 웃었다. 지금 그 친구는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또 다른 친구는 '100세 할머니의 인생조언'을 읽었다. '마음 상하면 말하지 말고, 자면 된다.'는 구절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그 말이 왜 맞는지 알 것 같다는 듯이.


엄마 이야기가 시작되자, 누구나 한 보따리씩 꺼내 놓는다. 울다가 웃다가,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엄마를 다시 불러낸 시간이었다. 동화를 통해 엄마를 떠올리는 이 시간이 참 따뜻하게 다가왔다.


이야기를 마친 우리는 카페 근처 수도산으로 산책을 나섰다. 미리 가벼운 옷차림과 운동화를 공지해 둔 덕분에 모두 편안하게 걸을 수 있었다. 버드나무에는 연초록 새순이 올라왔고, 산수유에는 노란 꽃이 피어 봄을 알리고 있었다. 다음 주면 벚꽃도 필 것 같다. 이 길을 매일 달린다는 친구는 다음 날 정읍 마라톤에 참가한다고 했다. 우리는 수도산에서 청렴공원까지 한 시간 남짓 걸으며 봄을 만끽했다.


산책을 마치고 모임도 끝을 향해 갔다. 맛있는 식사, 엄마 이야기로 울고 웃던 시간, 그리고 함께 걸은 봄날의 산책까지. 돌아가는 길에는 떡과 직접 만든 돈가스까지 나누며 마음을 더했다.


다음 만남까지 모두 건강하게 지내다가, 다시 반갑게 만나자 친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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