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간엔 정원과 사쿠라지마 활화산
가고시마 여행의 마지막 날 비가 내렸다.
일행은 차량을 렌트하여 센간엔 정원과 사쿠라지마 활화산을 관광하기로 했다. 우리가 묵었던 키리시마 캐슬호텔에서 한 시간 반쯤 달리자 가고시마 만에 도착했다. 그 너머에 사쿠라지마 화산이 구름 속에서 웅장하게 나타났다.
사쿠라지마 화산은 가고시마에서 4Km 떨어진 해상에 솟아 있는 화산섬이다.
1914년 대분화에 따른 분출물 퇴적으로 동쪽의 오스미반도와 육지로 연결되었다. 사쿠라지마는 기리시마 긴코완 국립공원의 일부이며 높이 1,117m에 달하는 산으로, 수천 미터 높이의 화산재를 내뿜으며 자주 폭발하는 활화산이다.
구름에 가려 정상은 보이지 않았지만, 완만하게 퍼져 내려오는 사면은 분명했다. 점성이 낮은 현무암질 용암이 반복적으로 흘러내리며 형성된 층. 그 부드러운 곡선 위로 마을이 자리하고, 지금도 사람들이 살아간다.
화산재가 쌓인 토양은 배수가 잘되고 미네랄이 풍부해 농업에도 유리하다. 실제로 이 지역에서는 커다란 무와 감귤이 재배된다. 위험과 혜택이 공존하는 땅, 그 위에서 사람들은 삶을 이어간다.
자연은 위협이면서 동시에 터전이다.
그 모순된 진실이 눈앞의 풍경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센간엔 정원은 1658년, 사쓰마 번의 영주였던 시마즈 미쓰히사가 조성한 장소이다. 에도 시대의 다이묘 정원으로, 권력과 미의식이 결합된 공간이다. 하지만 이곳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정원 자체가 아니라 ‘밖의 풍경’을 끌어들인 방식 즉 차경으로 설계되었다.
센간엔에서는 그 배경이 바로 사쿠라지마 화산이다. 정원 안의 연못과 돌, 나무는 전경이 되고, 바다와 화산은 배경이 된다. 가까운 것과 먼 것이 하나의 장면 안에서 연결되며, 정원은 물리적 경계를 넘어 확장된다.
비가 내려 공기는 더 맑아졌고, 풍경은 더 또렷해졌다. 나무와 연못, 멀리 보이는 바다와 화산이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이 한 장면 안에 겹쳐져 보였다.
우리는 ‘순행’이라는 화살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정원은 걷는 사람의 시선을 고려해 설계되어 있었다.
처음 시작지점에서는 사쿠라지마가 중심이 되고, 걷다 보면 연못과 소나무가 시선을 붙잡는다.
이곳은 자연을 단순히 모방한 공간이 아니라, 자연을 해석하고 재구성한 공간이었다. 지형을 읽고, 바람의 방향을 이해하고,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시선을 계산해 만들어낸 풍경이었다.
정원 안쪽의 일본식 저택은 나무로 지어진 집이다. 길게 이어진 마루와 다다미가 깔린 방이 연결되었다.
가고시마는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연중 온난하고 습도가 높은 지역이다. 이러한 기후에 맞춰 통풍이 잘되도록 바닥을 띄우고, 다다미를 깔아 습기를 조절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저택을 돌다 보니 옛날에 살던 고향 집이 떠올랐다. 양옥집을 새로 집을 지으며 엄마가 쓰던 자개농과 소반 등을 다 버려버렸다. 더 이상 쓸모없다며 병풍까지 정리해 버렸다.
그때는 낡은 물건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떠올려보니 우리의 추억과 삶이 만들어낸 소중한 자산이었는데 지켜내지 못해 아쉬웠다.
정원의 북쪽에 자리한 신사에 이르러 발걸음을 잠시 멈췄다.
신사는 바람을 피하고, 배수가 잘되며,
주변을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사찰이 그러하듯,
이곳 역시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는 최적의 장소에 위치하고 있었다.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자연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방식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다.
점심은 우리 팀의 회장님이 사전 예약한 회전초밥집이었다.
맛집으로 소문이 낫는지 열 두시도 안되었는데 대기가 많았다.
우리는 한 접시에 만원이나 하는 비싼 초밥은 그냥 스쳐 보내고 가성비 좋은 연어초밥을 주로 먹었다.
식사가 끝나고 회장님은 맛있게 먹었냐며 묻는데
비싼 초밥은 손도 못 댔다는 말을 못 해서 우리끼리 서로 웃었다.
점심 식사 후 가고시마 시내의 백화점을 방문하여 쇼핑을 했다. 쇼핑은 즐거움을 준다. 새로운 물건들이 소비욕을 자극하고 새로운 유행과 패션을 구경할 수 있었다. 백화점을 나와 작은 찻집에 들렀다.
차를 마시며 스킬자수를 배우는 공간인 듯하다.
벽면을 장식한 자수 작품들을 인상이 좋은 사장님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일본인들의 섬세함과 소박함을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
예고한 대로 비는 하루 종일 내렸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센간엔 정원과 사쿠라지마 화산을 바라볼 수 있었다.
센간엔 정원에서 바라본 사쿠라지마는 화산 활동이 만들어낸 지형 속에서 자리 잡은 인간들의 삶을 엿볼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 자연과 인간이 서로 이해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여행은 새로운 것을 보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그곳에 겹겹이 쌓인 시간을 읽어내는 즐거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