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혼을 정리하며-1
2020년 9월 어느 날, 운동 동호회에서 알고 지낸 한 분이 내게 선자리를 제안하셨다.
상대 부모님이 원하는 며느리감 조건은 키 크고, 똑똑하면 된다고 해서 이 분은 나를 소개해주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처음엔 얼떨떨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만날 여유도 없었기에 그저 '아니요. 괜찮습니다. 누굴 만날 상황이 아니여서요.'라며 거절했다. 11월의 갈대밭을 그 지인분과 함께 산책하고 있을 때 마침 상대 쪽에서 전화가 와 선자리를 다시 한번 마련해 달라는 통화내용이 들렸고, 내가 옆에서 불편한 기색을 보이자 다행스럽게도 지인 분은 정중하게 그분께 거절의사를 전달해 주셨다.
그렇게 흥미로우면서도 불편한 해프닝이 머릿속에서 지워져 갈 때쯤, 어느 평화로운 일요일 늦은 아침에 그 지인 분이 다급하게 전화해선 상대 쪽에서 정말 간절하게 보고 싶어 하니 한 번만 만나보게 해달라 한다고. 그래서 솔직하게 내가 결혼, 더 나아가서 연애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조곤조곤 말씀드렸다.
나의 결혼 단념사유-
1) 부모님과 거의 5년째 의절하고 살고 있기에 소위 ‘부모 없는 자식’의 포지션을 지니고 있고,
2) 내가 길에서 데려온 고양이가 생을 다할 때까지만 살고, 이후는 내 삶을 종료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지니고 있었고,
3) 한국사회에서 의례 따지는 결혼 배우자의 스펙이라 불리는 안정적인 직장, 연봉, 부모님 직업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은 독고다이 프리랜서였고,
4) 대개의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몸매나 얼굴의 소유자가 아니기에 딱히 소개팅과 같이 외적인 부분이 많이 차지하는 자리에서 잘될 리가 없다!
는 게 이유였다.
게다가 당시 새로 이사한 전셋집이 윗집 층간소음과 아랫집의 담배냄새라는 이중고에 신경쇠약과 더불어 갑작스럽게 줄어든 일로 삶에 대한 의욕이 바닥을 찍고 있던 상황이었다. 좋지 않은 상황들과 날 선 자기 객관화로 집안, 돈, 직업, 외모 등 모든 면에서 환장할 단점들로 채워져 있었기에 ‘결혼’은 애당초 내 인생사전에 실릴 수 없는 단어였다.
아마 소개를 받고 싶어 하는 쪽에서도 이런 얘기를 들으면 질려버려서 더 이상 덤비지 못할 테니 치명적인 내 결점이라는 패를 까고 성가심을 해결한 것이다.
그러다 이듬해 4월, 상대 쪽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꼭 한 번 만나고 싶다고 하셨다고, 지인분이 친구 만나는 자리에 그냥 차 한 잔 잠깐 마시고 온다는 생각으로 한 번만 자리에 나가주면 안 되겠냐고 하셨다. 중간에서 여러 번 곤란해하시는 게 보여 미안하기도 했기에(지금 생각해 보니 이건 상대편이 미안해해야 할 일이었다!) 결국 그러자고 하고 4월 말 그분들과 만나는 날을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