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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람 Apr 11. 2024

나는 평범하지도, 보통이지도 못한 사람.

학창 시절엔 항상 2등급의 학생이었던 것 같다. 친한 친구들이 100점, 95점을 받을 때 난 항상 턱걸이 90점이었고, 선생님의 칭찬을 받으며 촉망받는 미래를 가진 친구 옆에서 속으로 열등감을 삭히며 멀뚱히 있는 그런 아이. 최고가 되기엔 한 발자국 경계 밖에 있는. 그렇지만 학창 시절까진 평범과 보통의 범주에는 속했었다.


나의 본격적인 불행은 모 명문대 분교에 입학하면서 시작되었다. 아주 안일한 생각으로, 학교 간판만 보고서는 나도 그럴싸한 사람이 되겠지 싶어 듣도 보도 못한 동네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학교에 입학하던 날, 나는 그곳으로 향하는 기차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아랑곳 않고 한 시간 반 동안 울어댔다. 얼마나 안일하고, 한심하고, 비겁한 선택을 했는지를 그제야 깨달았다.


대학생활은 마음에 안 드는 것 투성이었다. 울보 대학생으로 시작했으니 당연하게도 우울은 대학생활의 동반자가 되었고, 학교 수업도, 친구들도, 뭐 재미있는 것 하나가 없었기에 정이 도저히 생길 기미가 없었다. 게다가 영문과 전공수업은 고등학교 때 그나마 애정을 가졌던 영어에 대한 증오심을 키우게 했고, 오히려 영어와 멀어지게 되어 결국 '영문과를 영문도 모른 채 졸업하게 되는' 비극으로 치닫게 됐다.


심리적으로 기댈 수 있는 가족이라는 존재는 되려 나를 비난하기 일쑤고, 엄마는 아버지의 지난날 불륜사실을 알게 되어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내게 더러운 아버지의 행적들을 매일 쏟아내었고, 난 톡톡히 감정의 쓰레기통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에 대한 혐오감으로 가득 차 명절에 집에 내려가 어색하게 그를 마주하면 엄마는 '그래도 너 낳아준 아버지인데 효도는 하고 살아야지.'라는 이상한 말을 해댔다. 동생은 내게 돈이 필요할 때만 연락했다. N사에 다니다 상사들의 괴롭힘과 조리돌림의 희생양이 되어 온갖 마음의 상처를 안고 그만두고선 반년 넘게 친구네 집에서 기생충처럼 지내며 깊은 우울에 허덕이던 내게 아버지는 '그렇게 할 짓 없으면 공장에나 가서 돈이나 벌어라!'라고 쏘아붙이곤 전화를 끊었다. 도무지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대학교는 학자금 융자로 시작해 원금과 이자를 쪽쪽 빨아간 사채업자처럼 기억에 남아있다. 일 년을 다니고, 휴학하고 돈 벌고, 학기 중에는 교내 근로장학생, 도넛 가게 아르바이트 그리고 주말에는 방과 후 강사 일을 하면서 근근이 빚을 갚고, 생활비를 벌었다. 물론 집에서 약간의 돈을 보내주긴 했지만 학자금 융자와 집세, 생활비, 교재비, 통신비, 교통비 등등을 빼고 나면 늘 부족했기에 무슨 일이든 더 해서 닥치는 대로 통장에 넣어두어야만 겨우 신용불량자 신세는 면할 수 있었다.


재학-휴학을 몇 번을 반복하고 나니 군대를 다녀온 남자 동기들과 같이 졸업을 하게 되었다. 다들 이제 그럴싸한 사회인으로서 첫 발을 내딛을 직장을 찾아 설렘과 긴장감을 갖고 '시작'을 할 시기이건만 나는 그간의 생계전선에서 이미 지쳐버린 패잔병이 된 상태였다. 듣기만 해도 푸릇푸릇한 스물다섯이라는 나이였지만, 나는 더 이상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그래도 안 하면 당장에 굶어 죽으니 또 무슨 일인가를 시작했을 것이다. 기억이 흐려져 잘 생각나지 않지만.


회사에 들어가도 몇 번인가 중도 퇴사를 했고, 이력서에 무엇 하나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소위 계약직 또는 파견직 일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내 삶이 거지 같았고 이대로 끝장났으면 싶었다.


돈은 늘 벌어도 내 손에 남는 건 없었다. 주거도 불안정했다. 누우면 머리와 발끝이 벽에 닿는 고시원에서 콩벌레처럼 웅크린 채 2년을 보냈고, 친구의 집에서 더부살이도 하고, 신림동 고시촌의 한 건물 계단 층간에 있는 창고를 개조한 아주 조잡하고 외풍이 심한, 바닥에 누워 발을 뻗으면 현관문에 닿는, 그런 말도 안 되는 곳에서 월세 30만원을 내고 살았다. 불시의 교통사고나 퍽치기 등으로 허망하게 인생이 끝나지 않는 게 참으로 애석했다. 전생에 지은 죄가 많아 이 고단한 삶을 오체투지 하듯 살아내고 있는 건가 싶었다.


그렇게 내 삶은 보통도 아니고 2등급은 더더군다나 아닌, 그저 세상에서 밀려난 잉여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너무 늦게 자각했다. 인생은 '너에겐 죽음마저 사치일 뿐'이라고 비웃는 듯 계속 나를 살려두었다. 살아있는 지옥이 바로 나의 삶이었다. 살아도 희망은 보이지 않고 빚만 늘어가고, 생의 쳇바퀴 위에 내가 있는게 아니라 내가 쳇바퀴가 되어 타인을 생을 위해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헨젤과 그레텔이 집에서 쫓겨났지만 그래도 집으로 돌아갈 길을 찾아보겠다고 작은 돌들을 놓아둔 것처럼, 내가 걸어온 실패의 길에 돌멩이를 놓듯 내 이야기를 써 내려가보려 한다. 그 돌들을 다 놓으면 나도 따스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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