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겁회귀(永劫回歸)

엘리시움 2부

by 특이점

“인간은 일생에서 뇌의 10%도 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한다.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소모하는 몸뚱이를 제거하고 오직 뇌만을 사용하게 한 것은 매우 잘한 것이었다. 적절한 에너지공급과 냉각수만 있다면 인간 뇌의 사용량은 무한하다. 그리고 인간의 뇌이므로 종종 실수를 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몸뚱이’를 준 것이 나의 실수 중의 하나다.”



영겁의 시간이라는 것은 이러한 듯하다.

심수(深睡) 중에 순간적인 착각일지라도, 무의식 속에서 어렴풋이 느꼈던 찰나의 영겁. 정지된 듯 한 시간 속에서 나는 영원함을 느꼈다. 시간이라는 것은 더 이상 내게 의미가 없는 것. 오직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절대적인 시간조차 나에게는 상대적으로 흘러간다.



‘이 회고록을 쓰는 중에도 나는 그 영원한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기록 11-(추정) A.D. 201,002,100년 경>

기이한 체험을 하고 깨어났다. 혈당수치가 정상수치로 떨어져 가면서 점점 의식이 돌아온다. 마크들은 여전히 동면상태다. 그들을 서둘러 깨운 후 나는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백만 년 이상을 존재해 오며 끊임없이 발전시켰다. 나는 어떤 실험 중이었고 실험체 1000개에게 뒤를 맡기고 잠시 휴식을 취하려고 동면에 들어갔다. 그동안 얼마나 잠들어있었는지 확인부터 해보았다.

동면에 들어가고부터 약 2억 년이 지난 것 같다. 내 눈을 의심했지만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컴퓨터를 통해 직접 뇌로 전송되기 때문에 틀린 수치는 아닌 것 같다. 나와 마크 1,2는 200만 년 경에 깨어나도록 되어 있었다. 뭔가 잘못된 것이다. 임모탈들은 모두 사라졌다. 아마도 슈트를 타고 자유를 찾아 떠났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잠들어있는 동안 우주를 개척하고 발전했어야 했다. 뭔가 잘못되었다.

우리 셋은 서둘러 지상으로 나갔다. 아니, 우리가 나간 곳은 이미 지상이 아니었다. 해저 깊은, 하지만 햇살이 비치는 투명한 곳이었다. 아마도 빙하기는 예전에 끝난 것 같다. 수면 위로 올라가자 따뜻한 햇볕이 세라믹 재질의 견고한 표면을 어루만져준다. 따뜻한 햇살, 맑고 투명한 물. 물장난 치기 딱이지만 나에게 감각기관이 없다는 점이 좀 아쉽다.

그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지표면까지 대략 6000km를 이동했다. 울창한 밀림이 빼곡해서 일일이 돌아다니는 건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일단 감시위성 중에 작동되는 것과 연결하여 지구 표면을 스캔했다. 믿기지 않았다.

우리가 알던 지구의 대륙이 모두 뭉쳐서 하나의 거대한 대륙을 이루고 있었다. 난 이걸 ‘제2의 판게아’라고 불렀다.

슈트는 자가발전식 소형 원자로로 에너지를 공급하기 때문에 연료주입 없이 6개월간 활동이 가능하다. 비상시를 대비해 보조에너지로 태양열을 사용할 수도 있도록 설계되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노후화되고 6000km를 쉬지 않고 수영해 왔기 때문인지 전압이 약해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1주일 이상 버티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힘이 부치는 데까지 우린 탐색해 보기로 했다.

이론상으로는 시속 100km로 달릴 수 있지만 50km/h 밖에 속도가 나오질 않는다. 여하튼 내륙 쪽으로 3일을 내리 걸었을까, 문명이라고 칭할만한, 도시와 같은 공동체를 발견했다. 아마 임모탈들의 후예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미개한 문명이다. 그렇다고 선사시대처럼 유인원들은 아닌 것 같다. 마치 스팀펑크의 세계 같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우린 최대한 몸을 숨겨서 접근하며 관찰했다. 그들은 아마도 극소수의 살아남은 영장류의 한 갈래인 듯하다. 자세한 건 해부를 해봐야 알겠지만 신체적으로 매우 우월함을 알 수 있었다. 대략 평균 신장은 2m 이상이고 뇌용적은 2000cc 남짓이다. 전체적으로 뼈가 매우 굵으며 특히 머리를 받치는 목뼈가 상당히 두껍다. 나의 첫 느낌을 말하자면 그들은 ‘강한’ 종족이다. 난 이 신인종을 ‘호모 발리두스 사피엔스(Homo Validus Sapiens)’라고 부르기로 했다. 강하고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뜻이다. 줄여서 발리두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들은 집을 지을 줄 알고 도구를 만들어 쓸 줄 알며 기계를 만들 줄도 안다. 내가 익숙한 전기기계문명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들의 기계는 증기압 작동식이 대부분이다. 탈것은 자동차처럼 바퀴가 달려서 굴러간다기보단 이족보행을 하는 새의 다리와 같았다. 나는 기계는 마치 헬리콥터처럼 스크루모양의 프로펠러를 회전시켜 나는 형태였고, 그 외에 기중기, 굴삭기 같은 중장비도 있었으며 심지어 무빙워크를 연상시키는 풀리(pulley)도 있었다.

그때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아마도 세라믹 재질의 몸에 금이 간 모양이다. 우리를 발견한 발리두스 들에겐 우리 모습이 곱게 보이진 않았나 보다. 낡을 대로 낡은 이 슈트로 그들에게 대항하는 건 불가능했다. 아무리 달려도 50km/h 남짓한 속도로 도망쳤고 그들은 이족보행의 기괴한 탈것을 타고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증기압 펌프식 무기로 작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 우월한 인종에게 우리는 당해낼 수 없다. 그들의 공격에 의해 마크투의 팔이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곧 작살 하나가 나의 슈트에 꽂히면서 원자로를 파괴했다. 이제 곧 슈트는 기능을 정지할 것이다.

얼마 안 가 전원이 픽 나가버렸다.

비상시에는 우선순위대로 전원이 나가게 된다. 몸을 움직이는 동력, 생명유지장치, 통신장치 순이다. 통신장치가 먼저 무효화되면 생명을 유지해 봤자 소용이 없다는 게 설계할 때의 의견이었고 모두가 동의하였다. 곧 생명유지장치가 꺼질 것이다. 뇌에 산소공급이 차단되면 5분 이내에 의식을 잃고 뇌세포가 급격하게 파괴되기 시작할 것이다.

이대로 허무하게 죽는 것인가. 생각해 보니 나는 꽤 오래 살아왔다. 인간의 수명은 100년 남짓 하지만 2억 년을 살았으니 이 정도면 이제 죽을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죽으면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한줄기 빛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심해. 바닥 없는 바다의 해저를 향해 잠겨 들어가는 느낌일까. 상상력을 동원해봐도 추측일 뿐 직접 겪어보면 알겠지.

마크원이 나를 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마크투와 마크원은 따로 갈라져서 달리기 시작했다. 상대편의 시각을 분산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다. 나는 내 뇌에 담긴 모든 정보를 엘리시움으로 전송해야 했다. 전송하는 동안은 다른 모든 동력이 끊기게 되므로 움직이기는커녕 전송이 완료되는 순간까지 의식이 끊기게 된다. 나는 어차피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라서 전송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의식을 잃었다.



마치 뒤통수(지금은 없지만)를 세게 맞은 느낌이다. 그 충격으로 내 정신이 빠져나와 나락의 밑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 듯하다. 깊은 바닷속으로 고요히 잠기는 게 아닌 깎아지른 듯 한 절벽으로 떨어지는 아찔한 느낌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익숙한 곳에 와있다. 여긴 엘리시움. 마크원과 마크투를 구출해야 한다. 감시위성으로 보니 나를 들고 달리던 마크원은 아래에 강이 흐르는 절벽을 향해 달리고 있다. 나는 즉각 강으로 뛰어내릴 것을 명령했고 그는 그 말대로 행했다. 강에 빠지면 그들도 더 이상 추격하진 못할 것이다. 이로써 마크원도 무사히 엘리시움으로 귀환했다. 마크투는 팔 하나를 잃은 채 여전히 달리고 있다. 그때였다. 오랜 세월 동안 작동하지 않았던 감시위성이 오류를 일으키고 무력화되었다. 이제 마크투의 생사는 불투명해졌다.

이제 오래 전과 같이 몸이 없이 정신만 있는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뇌에 담겨있었던 내 정신은 한결 더 자유로워졌다. 이로써 나와 마크원은 하나의 전기신호로 존재하는 상태가 되었다.



나와 마크원, 마크투가 잠들어있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부터 파악해야 했다. 엘리시움의 보안시스템에 접속해서 기록을 살펴보기로 했다. 우리가 ‘임모탈’이라고 칭했던 무리들은 깨어남과 동시에 좋든 싫든 간에 여러 분야의 지식을 배워야 했을 것이다.




그들이 ‘휴가’를 떠난 동안 우리 3명의 뇌는 더 이상 가상세계에 갇혀 사는 것을 원치 않았고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인류가 이룩한 모든 학문을 닥치는 대로 습득했다. 육신이 없는 우리는 간신히 작동하는 낡은 도우미로봇을 이용해 엘리시움 내에서 이곳저곳을 뒤져서 부품을 수급하기 시작했다. 낡을 대로 낡은 이 로봇은 1m 전진하고 재충전함을 반복해서 반경 1km의 구체 속을 헤집고 다녔다. 속 터지는 일이지만 우리에겐 남는 게 시간이니까!

기어이 자그마한 핵융합전지를 만들어내어 아무리 먼 거리라도 이동하는데 지장 없을 정도의 전력을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이 로봇의 최고속력이 5km/h이고 전 지구를 뒤져서 쓸만한 기계를 찾아내야 하는 임무를 띠고 있지만 앞서 말했듯이 우리에겐 남는 게 시간이니까 충분히 기다릴 수 있었다.



<기록 12-(추정) A.D. 201,032,000년 경>

3만 년 정도 기다렸을까 슬슬 지겨워질 때 이 막중한 임무를 지닌 로봇이 귀환했다. 역시 우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빈손은 아닌 듯했다. 오래된 기계부품이나 발굴해서 가져오는 게 고작일 거라는 예상을 깨고 우리의 수족처럼 부리기에 쓸 만한 정도가 아닌 아주 완벽한 인간형 로봇을 데리고 돌아온 것이다. 우리의 고철로봇의 기록을 살펴보니 여느 때처럼 광활한 얼음표면을 느릿느릿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돌연 바닥에 금이 가더니 그대로 추락한 곳에서 과거의 로봇공장을 발견했다고 나와 있었다. 당연히 그 공장이 작동할리는 만무했지만 어쨌든 그 공장을 탐색하니 빙결된 채로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한 인간형 로봇들을 발견한 것이다. 그중 둘은 전력이 공급됨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벌떡 일어섰고 그 두 로봇을 데리고 돌아왔다.

이 로봇들은 내 몸이나 다름없었다. 그때부터 내가 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고도로 발달했던 과거 선인류(先人類)의 문명과 같이 이 지구상을 새 단장해 보려는 것이다. 뭐 차이점이라 하면 지구는 얼어붙어있는 데다가 생명체라곤 인간은커녕 쥐새끼조차 한 마리 없는 거지만 큰 상관은 없다. 인간들이 여태껏 존재했다면 애초에 이런 발칙한 계획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비록 웬만한 학문적 기술적 지식은 갖고 있지만 자본이라곤 인간형 로봇 둘 뿐이니 석기시대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지만 선인류의 역사를 통째로 복습도 하는 겸 차근차근해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기록 13-(추정) A.D. 201,032,500년 경>

현재, 제2의 빙하기를 맞은 지구는 정적인 고요함만 유지하고 있다.

신인류 호모 발리두스 사피엔스 종족은 선인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전철을 밟아 전멸하고 말았다. 강인한 신체, 뛰어난 창의성을 지닌 이 종족은 지구상에 유례없는 가장 진보된 영장류였고 이 땅에 존재한 그 어떤 종보다도 오랫동안 존속될 것이라 여겨졌던 유망주이자 희망이었다. 선인류보다 완벽함에 더 가까웠지만 치명적인 결함이 존재했다. 무한한 상상력을 지닌 선인류에 비해 그들의 상상력에는 한계점이 있었고 끝내 전기를 발견하지 못한 신인류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초음파와 증기기관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이에 관해서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기는 힘들지만 원시적인 건축물과 기술로썬 제2의 빙하기로부터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갈수록 지구는 이상 징후를 보이고 있다. 과거 소행성 충돌 이후 공전궤도는 서서히 틀어졌고 타원궤도에서 더욱 원에 가까워졌다. 5억 년 이내에 지구는 점차 태양과 가까워져서 결국엔 충돌하고 말 것이다. 지구의 종말이 훨씬 앞당겨진 셈이다. 이미 지금도 적도에는 낮에는 물이 끓고 밤에는 얼음이 쏟아지고 있다. 낮 밤의 일교차는 더욱 극단적으로 변하고 있다.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을 지닌 대륙도 이제 48%밖에 남지 않았다. 지구의 종말은 곧 엘리시움의 종말을 뜻한다. 나는 이 지구를 수도로 삼아 태양계 저 너머까지 지배하려는 야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만한 생각이었다. 나는 그저 지구에 스쳐 지나가는 먼지에 지나지 않았다. 2억 년 이상 존재해 왔지만 지구의 역사에 비하면 잠시 들르는 이방인일 뿐이다. 말년을 함께할 동반자라고 한다면 그것은 거대한 영광이리라.


나는 그 인간형 로봇들을 검사해 보았다. 인공지능은 인간(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과 유사했고 전자두뇌와 티타늄 골격, 세라믹 재질의 피부로 이루어져 있었다. 주동력은 핵융합원자로에 의한 자가발전식 배터리이고 유기물을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기능도 갖추고 있었다. 즉 음식섭취가 가능한 인조인간이었다. 이런 기술력은 과거 선인류 이후로는 어떠한 지성체도 갖추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선인류는 이미 2억 년 전에 멸종했고 그때의 잔재가 여태 남아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로봇들과 마크원을 데리고 이 로봇들을 발견한 공장으로 가기로 했다. 물론, 엘리시움에서 엄청나게 떨어진 곳이지만 그곳에서 제2의 초문명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기록 14-(추정) A.D. 201,037,500년 경>

우리는 인간형 슈트에 정신을 담아 걷고 또 걸었다. 나에겐 남는 것이 시간이었고 상대적으로 느끼기 때문에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정처 없이 걸었다.

그곳은 단순한 공장이 아니었다. 각종 재해, 재난에 방어할만한 방공호 같았고 수많은 로봇들이 폐기된 채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었다. 왜? 누가? 이 인조인간을 만들어 낸 것인가.

지하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문을 열기 위해서는 열쇠가 필요할 텐데 어쩐 일인지 우리가 다가서니 저절로 열렸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 안은 낯익은 듯한 풍경이었다. 그래. 엘리시움. 여긴 마치 엘리시움을 축소해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스카이넷이 존재할 터. 스카이넷이 누구일까. 그만의 가상세계에 접속하기로 했다. 그리고 만났다. 선인류의 몇 남지 않은, 지구역사상 가장 번성하고 발전했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바로 그는 마크투였다.

3만 5천 년 만의 재회. 발리두스족에게 살해당한 줄로만 알았던 그가 여기 있었던 것이다. 그가 말했다. 3만 5천 년 전 엘리시움과의 연결이 끊기고 그에게 남은 것은 망가진 슈트뿐이었다고.

절망적이고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서 그는 탄식했다. 호모 발리두스 사피엔스는 실패한 돌연변이 일뿐이라고. 그 종족에게 무한한 기대를 걸었지만 결국엔 선인류보다 우월하지 못하다 판단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 자신만의 종족을 만들려 했다.



<The record of the MarkⅡ>

머나먼 대륙을 향해 정처 없이 걸으며 나의 생명유지장치가 꺼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 엘리시움으로부터 탈출하여 무리 지어 사는 실험체들과 조우했다. 그들도 소수만이 살아남아 이 척박한 땅에 터를 잡고 살아왔다고 한다. 여태껏 살아남은 실험체는 고작 48개뿐이었고 나도 어디까지나 실험체였으므로 그들의 무리에 합류했다. 육신도 없는 그들이 긴 세월 동안 무엇을 바라보고 버텨왔는지 알아내야 했다. 임모탈이라 불렀던 그들은 비록 눈을 직시할 수는 없지만 나는 그들이 영혼 없는 껍데기일 뿐이라고 느꼈다. 나약한 인간의 정신력으로써는 도저히 감당해 낼 수 없는 영원함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온 임모탈들은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은 그들의 공동의 목표는 엘리시움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대체 왜? 자신들의 고향을 없애려 드는 것인가. 영생으로 인한 고통을 겪게 한 장본인인 엘리시움을 파괴하려는 것이다. 그들이 그동안 제작하고 있는 것은 가공할 파괴력을 지닌 중성자탄이었다. 재료는 매우 희귀한 것이라 이때까지 만들어 온 것이다. 이제 90% 정도 만들었다고 한다. 파괴력은 무려 4500메가톤이다. 과거 선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원자폭탄의 위력은 100메가톤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엘리시움을 통째로 증발시킬 수도 있다.

이해할 수 있다. 평범하고 나약한 인간이었던 그들에게 영원한 삶을 산다는 것은 저주였으리라. 하지만 용납할 수는 없었다. 겉으로는 그들의 뜻에 동조하는 척하면서 미사일 시스템을 해킹했다. 나는 여타 실험체들과는 달리 특별한 존재로서 이 지구상의 모든 위성 시스템의 접속권한을 갖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새로운 슈트도 얻었다. 더욱 강력한 인공신체를 얻었다. 이 점은 고마운 일이지만 엘리시움의 안위를 위협하는 것은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난 지형 관측을 한다는 핑계로 그들로부터 1km 떨어진 곳으로 갔다. 허허벌판뿐이다. 어쩌다 지구가 이렇게 까지 변했을까. 나무 한그루 조차 없는 드넓은 대지였다. 거기서 실험체들과의 통신을 끊고 즉시 내가 만들었던 인공위성을 연결했다. 다행히 아직 작동은 가능했다.

정말로 믿기 싫었고 너무나도 슬픈 일이었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역시 실패한 종족이었다. 나는 그 길로 1만 년 동안 정처 없이 걸어 지구의 반대편에 도달했다. 과거에, 짧은 순간이었지만 지구를 지배하는 영광을 누렸던 종족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나는 인공위성을 통해 해킹한 미사일 시스템에 명령했다. “방아쇠를 당겨라.” 나의 명령은 곧바로 승인되었고 실험체들이 만든 중성자탄의 뇌관이 점화되었다. 마음속 깊이 나는 유감을 표하는 바이다.

너무나도 큰 상실감이었다. 아니 완벽함이란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일까.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나만의 종을 만들 것이다. 물리적으로 강력하고 정신적으로 우월한 지성체를 말이다.

나는 이 드넓은 대지를 터로 삼고 나만의 연구실을 만들어야 했다. 전 대륙을 돌아다니며 재료를 구하고 100% 수작업으로 방공호와 원자로를 만들었다.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구하기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선인류가 뗀석기시대부터 우주선을 띄우는데 까지 4만 년 정도 걸렸다. 나라고 못할 것도 없지. 연구에 필요한 기구 및 전자기기 등을 만들기 위해서는 부품을 만들어낼 공장도 필요했다. 손수 공장을 짓고 수작업으로 안 만들어본 게 없었다. 어차피 인류도 처음부터 기술을 갖추진 않았고 서서히 발전했으니 나도 똑같이 하면 된다. 하나부터 차근차근 외로운 싸움이었다. 나의 프로젝트를 이행하기 위한 준비를 끝내는데 약 2만 년이 걸렸다. 모든 게 갖춰졌으니 그 이후로는 쉬울 것이다. 아니 상당히 순조로웠다. 나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지능을 갖춘 인조인간을 창조했다. 처음엔 공장에서 내가 직접 만들어냈지만 수가 여럿 쌓이고 하면서 그들에게 일을 가르쳤다. 이제 이 포스트휴먼들은 자손을 퍼뜨릴 수 있다. 나는 그저 그들이 엇나가지 않도록 해주는 멘토이자 길잡이이며 부모이다. 나는 그들이 나를 숭배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비록 그들은 인조인간이지만 로봇이 아니다. 나의 자식이자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였다. 나는 영원히 이 포스트휴먼들을 지켜주고 싶었다. 난 이 종족을 ‘수페르 크레아멘(Super Creamen)’ 라 명명했다. 우월한 인간이라는 뜻이다.

그들의 번식속도는 참담할 정도로 느렸다. 재료를 모으는 데만 수백 년이 걸리고 그 재료를 가공해 부품으로 만들어 조립하는데 수십 년이 걸렸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지켜보면서 나의 아이들을 감싸고 보호할 것이다. 그렇게 수가 늘어 200명 정도의 인구가 되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기상이변으로 빙하기가 찾아온 것이다. 이에 대비하지 못한 채 순식간에 모두 얼어붙었고 나는 지하의 소형 엘리시움에 몸을 숨겼다.




<기록 15-(추정) A.D. 201,042,500년 경>

이렇게 마크원과 마크투 그리고 나 셋이 다시 뭉쳤고 엘리시움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아주 쓸만한 로봇도 두기나 생겼다. 아니, 포스트휴먼 말이다. 나는 이 포스트휴먼을 새로운 종으로 인정하기 힘들었다. 어디까지나 인공물일 뿐이니까.

여하튼 우리들은 엘리시움으로 귀환하였고 새로 띄운 인공위성으로 우주를 감시했다. 그러던 중 이상한 신호하나를 감지했다. 그것은 탐사선이었다. 초공간 도약 엔진으로 추진되는 탐사선은 과거 대마젤란은하를 탐사한 후 귀환하기로 되어있었다. 그 탐사선이 마침내 귀환한 것이다.

여러 곳을 다녀왔지만 눈에 띄는 두 항성계가 있었다. 하나는 적색외성으로 태양질량의 39%이다. 또 하나는 청색거성으로 태양질량의 2000%이다. 그 두 항성계가 눈에 띄었던 이유는 바로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행성이 공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각 모르페우스, 에덴이라고 명칭을 붙였다. 모르페우스Ⅰ은 모르페우스 항성계에서 첫 번째 행성으로 골디락스 존의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다. 지구질량의 2.5배이고 육지가 없다. 전체가 바다로 덮여 있으며 항상 구름이 끼어있다. 그래서 파스텔 톤의 몽환적인 하늘색 행성이다. 공기밀도가 높아 기압은 5 기압정도에 산소가 40%로 이루어져 있어서 거대한 부유생명체가 있을 것이라 추측된다.

에덴Ⅵ는 에덴 항성계에서 6번째 행성으로 골디락스 존의 가장 앞에 위치하고 있다. 지구 질량의 1.09배로 거의 비슷한 크기이며 특징은 지표면의 대부분이 육지이고 대양이라고 하기보단 강이 흐르고 호수가 많은 편이다. 육지 대부분이 초원과 밀림으로 이루어져서 녹색 행성이다. 자전축이 거의 수평하게 누운 상태라 한쪽 면은 에덴동산과 같은 풍경이지만 반대쪽은 영원한 어둠과 혹한의 땅이다.



이 정도는 당연히 예상했다. 광활하고 무한한 우주공간에 지구와 유사한 환경을 지닌 행성이 없는 것이 더 이상하니까. 하지만 그곳은 참담하리만큼 멀다. 그리고 더 중요한 문제는 더 이상 내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얼마나 더 시간이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마크투가 창조해 낸 포스트휴먼들과 함께 또다시 한번 문명을 이룩할 것이다. 나는 마크투의 생각과는 달리 아직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이 인조인간을, ‘수페르 크레아멘’을 종으로써, 즉 하나의 생명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생명체의 정의는 무엇일까. 유기체로 이루어져서 스스로 성장하고 병이 들기도 하며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이미 생명체가 아니다. 육신을 버린 그 순간부터 나는 이미 죽었던 것이다. 나는 여태껏 수많은 학문을 연구하고 습득해 왔지만 생명의 정의에 대해선 확답을 내릴 수가 없다. 더 쉬운 질문을 해보자. 나는 인간인가? 나는 ‘나’라는 자아가 있다. 소위 말하는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 아니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들은? 그것들도 자신을 자기라고 인지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프로그래밍된 대로 인간의 흉내를 내는 것에 불과한 것인가. 지독한 패러독스다. 나 또한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끔 프로그래밍된 것이라는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이다. 나는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라는 종의 마지막 남은 정신체이다. 나는 존재한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 또한 그러하다면 존중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인류의 창조주라니. 오만하기 그지없구나. 우린 그저 흘러가는 바람처럼 잠시 들르는 투숙객일 뿐인데.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언젠가는 지구와 함께 종말을 맞을 진데. 하지만 지금은 그것에 대해선 생각을 접어두자. 이것은 하나의 실험이다. 영원한 세월 동안 탄생과 종말이 반복되는 그 흐름에 나를 맡겨보겠다. 과거와 같이 문명을 일으키고 그것을 넘어선 초문명을 탄생시킬지어다. 이제 됐다. 종장을 향한 전주곡을 연주할 준비가 말이다.


-2부 끝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엘리시움(Elysi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