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해철 : "영원한 우리의 마왕"
우연히 SBS 과몰입 인생사를 보며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의 그를 소환한다.
■ ‘날아라 병아리’와 10살의 눈물
늦가을 어느 날, 국민학교 4학년 때였다.
연습장까지 가는 차 안, 선배 오빠가 코치님께 슬쩍 부탁해 틀었던 카세트테이프. 그 안에서 흐르던 ‘날아라 병아리’ 그 노래가 흘러나오던 순간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울고 있었다.
결손가정에서 오는 헛헛함. 처음 운동을 시작한 나. 또래보다 먼저 시합에 나가게 된 10살의 아이. 차창 밖으로 스치던 쓸쓸한 초겨울 풍경. 따뜻한 히터 바람에 묻혔던 울컥한 마음.
그땐 정말 몰랐다. 왜 그 노래에 울었는지.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 노래 속 슬픔을 본능처럼 깨닫고 있었다는 걸.
신해철
그는 단순한 가수를 넘어 세상을 꿰뚫어 보던 사람이었다.
20대 초반부터 만들고 부른 그의 노래 하나하나에는 날카로운 시선과 깊은 철학이 깃들어 있다.
'라젠카', '그대에게', '민물장어의 꿈'... 그의 노래는 늘 끝나지 않았다. 음악 그 이상이었다.
1988년, 스무 살. 무한궤도 ‘그대에게’로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았다. 당시 그는, 아버지의 반대에 문방구에서 멜로디언을 사서 이불속에서 몰래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세상과 맞서는 법을 배워가기 시작한 건
그 시절부터였는지도 모른다.
화려한 사운드와 단순한 가사였지만 그 안에는 세상을 향한 날카로운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무한궤도 이후, 솔로 활동과 넥스트를 통해 그는 음악장르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랩, 록, 테크노, 재즈, 국악, 일렉트로닉까지. 다양한 음악 장르를 선보이고 철학적 가사와 접목시키며 한국 음악의 새 지평을 열었다. 단순한 장르 실험이 아닌 메시지를 담기 위한 탐색이었다.
하나하나 떠올리기도 벅찬 그의 수많은 노래를 생각하면 때로는 시대에 말을 걸었고 바닥에 주저앉은 절망도 가만두지 않았고 눈 돌리던 현실을 끝내 다시 보게 만들었다.
백분토론에서 '국민 논객'으로서 보여준 날카로운 논리. 라디오를 통해 전해진 동네 형 같은 친근한 어록. 말은 세상을 바꿀 무기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를 쓰다듬는 손길이 되기도 한다. 그는 둘 다였다.
정확하게, 따뜻하게, 그리고 날카롭게.
그는 무대 위에서만 빛나지 않았고 입을 열어야 할 때는 망설이지 않았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당시에는 “국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지 말라”며 라디오에서 정부를 공개 비판했고 그 결과 방송에서 하차했으며 광고도 모두 끊겼다. 그러나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동성동본 혼인금지 폐지와 병역 문제 같은 민감한 주제에도 일관된 목소리를 냈다.
"사랑하는 사람이 같은 성이면 안 되냐.같은 성씨면 안 되냐. 그게 나라를 망치냐.”
사회가 불편해하는 질문들을 그는 기꺼이 세상에 던지던 사람이었다.
그의 노래가 마음을 울렸다면
그의 말은 세상을 향해 정확히 돌을 던졌다.
그냥 노래만 부르는 가수가 아닌 곡을 쓰고, 편곡하고, 소리를 다듬었다. 녹음 장비까지 손수 다루었고 음악 만들겠다고 컴퓨터 프로그램까지 직접 짜던 사람. 한국 디지털 음악 제작의 선구자로 우리가 알만한 사람들이
신해철한테 장비 쓰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신해철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꿈을 이루는 게 다가 아니에요.
그 과정에서 잃지 말아야 할 게 있고,
이루는 순간이 꼭 행복을 보장하진 않죠."
그의 음악적 실험은 끊임없었다. 2006년에는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공연하며 당시 한국에서 거의 시도되지 않았던 록밴드와 오케스트라의 협연을 시도했고 이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14년 10월 27일 그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말과 노래는 더욱 선명해진다. 세상은 여전히 복잡하고, 그의 메시지가 더 자주 그리워진다.
그가 우리 곁에 있었다면 아마도 한 발 앞서 시대를 꿰뚫어 보며 우리를 깨우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노래는 지금도 누군가의 오늘을 붙잡고 있다.
가끔 그의 노래를 듣다 보면 국민학교 4학년 그 늦가을로 돌아간다. 그때는 몰랐던 마음을 이제는 분명히 안다. 왜 그의 노래가 그토록 아프게 다가왔는지. 그리고 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는지.
대학 축제나 운동회에서 응원가로 불리며 3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가슴에 울려 퍼지는 "그대에게" 많은 앨범과 활동이 있었지만 그는 특히 이 노래에 애착을 가졌다.
대부분의 콘서트 마지막을 이 노래로 장식했을 정도로.
그리고 그날, 코치님 차 안에서 흘렀던 '날아라 병아리'는 지금도 내 마음 한쪽에서 조용히 울리고 있다.
누군가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삶의 끝자락에서 다시 한 걸음을 내디뎠다고 했다.
그의 노래 속 이야기는 종종 염세적으로 끝나곤 했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냥 좋은 노래가 아닌 누군가의 삶을 붙잡아 주는 손길이었다.
그의 대표곡들 -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는 위로 대신 다정한 동행처럼 다가왔고 '그대에게', '일상으로 초대', '단 하나의 약속', '재즈 카페',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그리고 ‘나에게 쓰는 편지’는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가슴을 흔든다. 이 노래들은 단순한 히트곡이 아니라 한 시대의 청춘들을 위로하고 일으켜 세운 희망의 메시지였다.
음악 프로그램 '음악도시'를 진행하며 신인들을 발굴하고 응원했던 그는 전람회와 장기하 같은 후배 아티스트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마왕의 노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쓸쓸함도 아픔도 정면으로 보게 했고 그 와중에도 끝끝내 희망을 붙잡던 사람.
그래서 지금, 더 생각난다.
어린 시절 눈물 흘렸던 그 순간처럼 나는 여전히 그의 노래에 슬픔과 희망을 동시에 느낀다.
울면서도 끝내 걸어가게 해 준 건 그의 노래였다.
그것은 마치 계절이 바뀌듯 자연스럽게 내 안에 스며들어 있다.
그의 음악은 끝났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의 노래로 살아간다.
https://youtu.be/_rAjZuTC6J0?si=iC5xxKLUXdxGMXt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