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업(口業)과 사이다
세상은 참 쉽게 사이다를 외친다.
못되게 굴던 상사가 암에 걸렸다거나 망했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거봐, 인과응보야"라며 손뼉을 친다. 그 통쾌한 권선징악의 결말 앞에서 나는 홀로 서늘해진다. 그 '벌 받았다'는 말이 내게는 칼날처럼 아프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평생이 희생이었다. 철없는 오빠가 사고 치고 떠넘긴 조카들을 당신 나이 고작 열세 살 때부터 친자식처럼 거둬 키워낸 분이다. 남에게 해 한번 끼치지 않고 평생 묵묵히 헌신만 하던 엄마는 마흔다섯. 그 젊은 나이에 난소암으로 눈을 감으셨다.
사람들의 말대로 병이 죄의 대가라면 우리 엄마는 대체 무슨 죽을 죄를 지었길래 그런 벌을 받았단 말인가.
누군가의 불행을 보며 벌 받았다고 믿고 싶은 심정.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편리한 인과응보의 틀에 세상을 끼워 맞추다 보면 성실히 살다 병마와 싸우는 수많은 천사들까지 졸지에 죄인으로 만들게 된다. 착하게 살아도 아플 수 있고 악하게 살아도 천수를 누리는 것.
그 불공평함이 삶의 진짜 민낯이다.
그래서 나는 타인의 불행을 내 입으로 재단하지 않기로 했다. 남의 아픔을 안주 삼아 뱉어낸 말은 결국 돌고 돌아 구업(口業)이 되어 나에게 박힌다고 믿기 때문이다. 비겁한 승리에 취해 떠들기보다 차라리 침묵하는 것. 내 입을 깨끗하게 지키며 삶의 품위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평생 묵묵히 의를 행하셨던 어머니가 내게 남긴 마지막 유산이자
어머니의 삶을 욕되게 하지 않으려는 나의 간절한 기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