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2학년부터 5학년까지 내 운동회 날엔 항상 큰 고모가 계셨다.
이미 자식들 다 출가시키고 손주 재롱이나 보셔야 할 나이에 덜컥 조카들을 떠안은 우리 큰 고모. 외할머니보다도 연세가 많으셨던 큰 고모는 일찍 출가하셨었고 조실부모한 막둥이 동생도 자신의 자식들과 같이 돌보셨으며 말년엔 손주뻘인 조카 남매까지 떠안으셨다. 그리고 내게는 늘 잔소리에 퉁명스러우셨다.
"아이고, 내 팔자야. 늙어서 이게 무슨 고생이야"
입버릇처럼 험한 소리를 하시면서도, 운동회 날만 되면 고모는 귀신같이 일을 빠지셨다. 빠듯한 살림에 근처 농장 일삯도 포기하고 새벽부터 투박한 손으로 김밥을 말아 동네 할머니들을 이끌고 운동장에 나타나셨다.
부모님 이혼으로 눈칫밥 먹던 시절이었지만 운동회 날만큼은 달랐다.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 저 멀리 돗자리를 깔고 앉은 고모와 할머니 부대가 보이면 나는 달리기 출발선에서부터 어깨가 으쓱해졌고 세상 든든했다.
'나도 보러 온 사람 있다! 우리 고모 왔다!'
당시 환갑을 바라보시던 연세에 새벽부터 김밥을 싸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 하루 일당을 포기하는 게 얼마나 큰 결심인지 철없던 나는 몰랐었다. 그저 묵묵히 잊지 않고 매번 와주시는 무뚝뚝한 고모가 건네는 옆구리 터진 김밥이 좋았고 우리 남매 이름을 부르는 그 걸걸한 목소리가 좋았다.
바쁜 아빠의 빈자리, 엄마의 부재... 그 뻥 뚫린 구멍을 고모가 돗자리를 펴고 꽉 채워주고 계셨으니까. 나는 그날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든든한 '내 가족' 안에 있었다.
세월이 흘러 아흔을 바라보는 고모는 이제 기력이 쇠해져 가신다. 가끔 기억이 가물가물하시지만 내 마음속 고모는 여전히 만국기가 펄럭이던 운동장에 꼿꼿하게 앉아 계신다. 점점 작아지는 고모를 볼 때마다 그 시절 운동장을 쩌렁쩌렁 울리던 그 목소리가 사무치게 그립다.
나의 유일하고 온전했던 보호자
나의 늙은 엄마, 우리 고모...
먼지 풀풀 날리던 그곳에서 고모가 싸준 김밥을 먹던 시간이 부모 잃은 조카가 아니라 사랑받는 아이로 살게 해 준 시간이었다. 나의 가장 화려했던 봄날은 고모가 지켜준 그 운동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