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넘어가던 그해 겨울
고모네 1남 5녀 중 셋째 언니가 첫 아이를 낳고 친정으로 몸을 풀러 왔을 때다. 방 안에 퍼지는 아기 냄새도 좋았지만 엄마 정이 고팠던 나에게 셋째 언니는 무뚝뚝한 고모와 달리 빈틈을 살뜰히 메워주던 유독 살가운 사람이었다.
그해 겨울엔 목도리 뜨기가 유행이었다. 음식 솜씨는 좋지만 손재주는 꽝인 고모 대신, 친구들 어깨너머로 배운 솜씨로 털실과 씨름했다. 주황색이던 털실은 내 손때를 타서 어느새 꼬질꼬질한 회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걸 본 셋째 언니가 나를 불렀다.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언니가 알려줄까?"
언니는 코뜨기부터 겉뜨기, 안뜨기까지 기계처럼 척척 해냈다. 자꾸 틀려 속상해하는 나를 보던 언니는 내 등 뒤로 와서 나를 포근하게 안았다. 그러곤 내 손을 겹쳐 잡고 한 코 한 코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그때 내 등 뒤로 느껴지던 언니의 온기와 은은한 분유 냄새. 엄마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어 나는 뜨개질을 배우는 것보다 그 포옹이 더 좋아서 가만히 안겨 있었던 것 같다.
결국 똥손인 나는 뜨개질을 포기했고 산후조리 기간 내내 언니가 대신 떠준 목도리를 선물 받았다. 다 뜬 목도리를 빨면서 "얘~ 꾸정물 나오는 것 좀 봐라"며 웃던 언니
그때 그 갓난쟁이 꼬물이 조카가 벌써 서른이 다 되어 조만간 식을 올린다고 한다. 엄마의 애물단지인 사촌 동생인 나에게도 그렇게 따뜻했던 언니였으니 자기 딸은 또 얼마나 많은 사랑으로 키웠을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꼬물이는 분명 결혼 생활도 예쁘게 잘해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