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자국

by 머머씨

내 왼쪽 팔뚝엔 희미한 화상 자국이 있다.


시골 고모 댁에 살던 9살

그 유난히 추웠던 겨울의 흔적이다.

나는 배고픔보다 눈치를 먼저 배운 아이였다.

하루는 고모 심부름으로 고구마와 감자를 찌던 솥의 불을 끄러 부엌에 갔다. 동네 할머니의 보라색 슬리퍼를 질질 끌고 간 그 곳. 가스레인지를 끄려다 고소한 냄새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솥뚜껑을 바깥쪽으로 열었고 그만 뜨거운 김에 팔을 데고 말았다.

살갗이 벗겨지는 쓰라림보다 무서웠던 건 고모의 불호령

"조심성 없는 기집애"

그 소리를 들을까 봐 나는 빨갛게 부어오른 팔을 부여잡고 방구석 이불 속으로 숨어들었다. 아픈 줄도 모르고 잠이 들 만큼 나는 긴장 속에 살았나보다.



나를 깨운 건 고스톱을 다 치고 정리하던 동네 할머니들이었다.

그 때, 내 팔을 보고 기겁하며 광으로 달려간 건 동네에서 소 키우는 집 우유할매. 할매는 광에서 헐레벌떡 감자를 꺼내와서는 숟가락으로 벅벅 갈아서 화기 가득한 내 팔뚝에 척 얹어주셨다.

"아이고, 이 미련한 것. 아프단 소리도 못 하고..."

화끈거리던 팔 위로 퍼지던 그 시원한 감자 물의 느낌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투박한 손길과 차가운 으깬 감자가 닿는 순간. 꾹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팔이 아파서가 아니었다. 아무도 몰라주던 내 아픔을 들킨 게 서러워서 그리고 그게 너무 고마워서.

내 상처를 식혀준 건 감자였지만 얼어붙은 내 마음을 녹여준 건 할매의 그 걱정스러운 잔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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