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 사 줘

by 머머씨

인터넷을 하다 우연히 본 촌스러운 바느질함 사진 하나에 30년도 더 된 기억이 실타래처럼 딸려 나왔다. 아마 1988년 즈음? 엄마가 옷가게 하기 전이니 내가 서너 살쯤 되었을 때다.


그 시절 나는 유독 잘 체하곤 했다.


엄마가 워낙 잘 먹이기도 했고 어린 나도 주는 대로 넙죽넙죽 잘 받아먹던 시절. 그날도 나는 심하게 체해 정신을 못차렸던 것 같다. 손을 따고 활명수를 먹여도 소용이 없자 엄마는 나를 들쳐업고 캄캄한 밤거리로 뛰쳐나오셨다.


하지만 저녁 8시가 넘어 문을 연 동네 의원은 없었다.


당시엔 면허도 없던 엄마는 닫힌 병원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다 급하게 아빠를 찾았다. 당시 아이스크림 납품 대리점을 하셨던 아빠는 겨울엔 비수기라 일찍 퇴근해 동네 아저씨들과 포커를 치며 시간을 보내고 계셨는데 엄마의 다급한 호출에 한달음에 달려오셨다.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이다. 엄마가 안절부절못하며 나를 업었다 내렸다 하는 그 움직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저 멀리서 아빠가 나타났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거짓말처럼 꽉 막혔던 체기가 쑥 내려가 버렸다. 아빠 얼굴을 보자마자 위장이 편안해진 나는 대뜸 말했다.


"아빠 배고파. 만두 사줘"


방금까지 죽어가던 애가 아빠 등을 타고 뻔뻔하게 만두를 찾으니 엄마는 얼마나 황당하셨을까.아빠는 껄껄 웃으며 오늘은 아프니까 내일 먹자고 하셨고 업혀있던 나는 불편하다며 양 손에 아빠 손, 엄마 손을 잡고 우리 셋은 그렇게 만두 대신 차가운 밤공기를 마시며 두런두런 집으로 걸어왔다.


그 이후 엄마는 면허를 따셨고 첫 차는 프라이드였다.


먼 훗날 이 이야기를 꺼냈더니 아빠는 깜짝 놀라셨다. 네가 그 때 일을 어떻게 기억하냐고.. 그때 알았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도 그날의 공기, 엄마의 등 온도, 아빠가 달려왔을 때의 안도감을 온몸으로 기억한다.


나는 비록 아이가 없지만 조카에게 만큼은 늘 좋은 표정과 따뜻한 말을 건네려 노력한다. 내가 무심코 건넨 순간들이 아이에겐 평생을 살아갈 힘이 되는 선물이 될 수도 혹은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그 겨울밤의 내가 증명하고 있으니까.


내 조카가 먼 훗날 혹시라도 기억할 나의 모습이 이처럼 따뜻한 겨울밤이었으면 좋겠다.


3.png
2.png
사진출처: 6080 추억상회


이전 07화화상자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