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릇의 라면, 한 장의 천 원, 그리고 여덟 정거장

by 머머씨

우웅- 웅웅

그날 아침 파란 봉고 트럭은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벌써 1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날 아침의 풍경은 내 마음속에 박혀 생생하다.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아빠와 나는 달방이라 불리는 여관에서 살았다. 당시 아빠는 동업자 홍씨 아저씨와 고물상을 하셨다.


매일 아침 7시, 푸르릉, 그 소리가 우리 일상의 시작이었고 나는 트럭 시동 소리에 눈을 뜨다가 다시 잠들곤 했다.


그런데 그날 아침은 달랐다.


우웅- 웅웅. 차가 앓는 소리만 낼 뿐 깨어나질 않았다. 낡은 파란색 봉고 트럭은 마치 겨울 추위에 얼어버린 것 같았다. 완전히 얼어붙었다며 이어지는 아빠의 대화와 긴 한숨 소리. 추운 날씨에 엔진이 얼어버린 건지 시동 걸리지 않는 차를 뒤로하고 방으로 돌아오시는 아빠의 발걸음 소리가 유독 무겁게 들렸다. 쿵, 쿵. 마치 세상의 무게를 다 짊어진 것처럼.


“머→머↗야↘ 일어나. 밥 먹으러 가자.” 다정하게 부르시던 아빠 특유의 리듬 있는 톤. 짐짓 밝게 말하려 애쓰셨지만 수심 가득한 낯빛은 감출 수 없었다.


낡은 잠바를 입으시며 주머니 속 이천 원을 만지작거리시던 그 손길. 8살이었지만 나는 그게 우리가 가진 전부라는 걸 알고 있었고, 그리고 오늘 하루가 평범하지 않을 거라는 예감도 들었다.


평소엔 마트에서 빵이랑 우유를 사다 먹었는데 그날은 분식집으로 향했다. 오늘 추우니깐 뜨끈한 거 먹어야 한다며 아빠가 내 작은 손을 꼭 잡고 걸었다.


손톱 밑에는 기름때가 끼어 있었고 매일 고철을 만져 거칠게 터 있었지만 내겐 그 어떤 핫팩보다 그 손에 담긴 온기가 따뜻하게 남아 있다.


골목을 돌아 찾아간 작은 분식집. 새벽 공기가 뺨을 때렸다. 아주머니는 이제 막 가게 불을 켜며 난로를 준비하고 계셨고 가게 안에서 풍겨오는 석유 냄새와 섞인 묘한 기름 냄새. 그래도 바깥보다는 훈훈했다.


아직 가스 불도 제대로 안 들어왔는데 잠시만 기다리라는 아주머니의 말을 들으며 우리는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뭐 먹고 싶냐는 아빠의 물음에 나는 메뉴판을 보았지만 가격표를 보는 아빠의 눈길이 흔들리는 게 어린 내 눈에도 보였다. 라면, 김밥, 떡볶이. 이천 원에서 얼마가 남을까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는 듯한 아빠의 눈빛이 지금도 선명하다.


아빠는 라면 하나를 주문하며 둘이서 먹겠노라고 멋쩍게 웃으며 대답하셨다. 아주머니는 무언가 느끼셨는지 평소보다 물을 넉넉히 붓고 계란 노른자도 두 개나 터뜨려 주셨다. 고봉으로 담은 공기밥은 덤이었다. 추우니까 든든하게 잡수라는 말에 아빠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주방 쪽으로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 모습을 짐짓 못 본 척했다.


라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자 아빠는 젓가락을 내밀며 아빠는 배부르니 너 다 먹으라고 하셨다. 아침을 안 드신 아빠가 배가 부를 리 없었지만 나는 먹기 시작했다.


아빠는 단무지와 김치에만 젓가락질을 하셨다. 그릇은 내 쪽으로 계속 밀어주며 웃으시는데 어린 마음에 그 미소가 왜 그렇게 처량해 보였을까. 국민학교 1학년, 지금 보면 그냥 아가 같은 나이인데 그때의 나는 그 상황을 다 이해하고 있었다.


공기밥 하나를 두고 아빠는 숟가락으로 조심스레 반을 나누더니 더 많은 양을 내 앞에 놓으셨다. 아빠는 많이 안 먹어도 된다며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나에게 넘기시는 모습이 지금도 가슴 한구석을 찌른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와 보니 조금 남았던 라면 국물이 확실히 줄어 있었다. 국물이 줄었다는 내 말에 아빠는 네가 많이 먹어서 그렇다며 당황하셨다. 아빠가 먹었냐고 물어도 안 먹었다고 잡아떼셨지만 나는 알고 있어도 모르는 척했다. 그저 능청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공복에 라면 냄새를 참기는 어려우셨을 거다. 그게 배고픔을 달래는 방법이란 걸, 그리고 아빠의 자존심을 지켜드리는 일이라는 걸 어린 나도 눈치채고 있었으니까. 남은 국물에 공기밥 절반을 말아주시며 이렇게 먹으면 더 맛있다고 웃으시던 아빠의 얼굴이 떠오른다.


분식집을 나서며 아빠가 나머지 천 원을 내 손에 쥐여줬다. 그 천 원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모른다. 그게 아빠의 마지막 돈이란 걸 알았으니까.


이따 점심에 와서 라면 사 먹으라는 말에 아빠는 어쩌냐고 물으니 아빠는 괜찮다며 일하면 배고픈 줄도 모른다고 하셨다.


분식집 앞 정류장에서 아빠는 밝게 말씀하셨다. 오늘은 운동할 겸 걸어갈 거라고, 여덟 정거장 정도는 금방이라고. 얼마나 먼 거리인지 나는 알았다. 하지만 아빠는 이건 추운 것도 아니며 군대에서는 이거보다 더 추웠다며 의기양양하게 덧붙이셨다.


길가에 서서 아빠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봤다.


점점 멀어지는 뒷모습. 버스가 올 때마다 아빠가 타시길 바랐는데 그럴 때마다 아빠는 더 빨리 걸음을 재촉하셨다. 버스 다섯 대가 지나가는 동안 아빠는 계속 걸어가셨다. 매연 가득한 도로변을 따라 때론 뛰다시피 걸으면서 나에겐 참 커다랗게 느껴졌던 아빠의 등이 그날따라 그렇게 작아 보일 수 없었다.


묵묵히 걸어가던 아빠가 잠시 멈춰 주머니 한 곳을 만지작거리며 마지막 남은 담배 한 개비를 피우셨다. 하얗게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서, 서른다섯 살의 젊은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훗날 아빠는 그 길을 걸으면서 계속 계산을 했다고 하셨다. 버스비를 아끼면 딸 점심값은 될 테고 내일도 트럭 시동이 안 걸리면 고철은 어떻게 하나, 이번 달 여관비는 또 어떻게 할까. 35살의 가장은 걸어가는 내내 그런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양복 입은 회사원들과 마주치면 고개를 숙이고 걸음을 더 재촉하셨다는 이야기. 빨간 신호등에 멈춰 설 때면 얼어붙은 손을 녹이며 늦으면 안 된다는 듯 발을 구르며 두 시간은 족히 걸으셨을 거다.


오후 반 수업을 위해 학교에 가는 길, 문방구 앞에는 불량식품을 사 먹는 친구들이 보였다. 뽑기 하는 친구 옆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주워 먹기도 했다. 뽑기 할아버지가 쳐다보면 짐짓 딴청을 피웠다. 아빠가 준 천 원으로 나도 과자를 살 수 있었지만 그 돈으로 아빠가 버스라도 타셨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자가 목에 걸릴 것만 같아 안 먹어도 된다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교실에 들어서자 친구들이 아침에 뭐 했느냐며 재잘거렸지만 나는 그저 웃기만 했다. 아빠가 이백 원을 아끼려 여덟 정거장을 걸어가셨다고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산수 시간, 칠판에 적힌 숫자 '2'만 봐도 아빠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빠가 도착은 하셨을지 발은 얼지 않으셨을지 수업 내내 그 생각뿐이었다. 짝꿍이 아침에 울었느냐고 물을 때도 고개를 저으며 창밖만 바라봤다.


천 원으로 하루를 버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할 거다. 배고픔보다 더 아픈 게 아빠를 향한 걱정이라는 걸 여덟 살의 내가 뼈저리게 느꼈기에 마음이 더 아팠다.


결국 수업 도중 엉엉 울어버렸다.


눈물을 참으려 해도 소리까지 새어 나왔다. 선생님이 다가와 어디 아프냐며 집에 무슨 일 있느냐고 물으셨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픈 건 몸이 아니었다. 라면 한 그릇을 거의 드시지 못한 채 이백 원을 아끼려 추운 길을 걷고 계신 아빠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보건실에 가서도 주머니 속 지폐를 만지작거리며 아빠가 따뜻한 버스에 앉아 가셨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수업이 끝나고 학원으로 향하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곧장 여관으로 돌아왔다. 학원은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이었기에 텅 빈 달방에서 째깍거리는 시계만 보며 아빠를 기다렸다.


옆방의 김치찌개 냄새가 코를 찌르자 침이 고였지만 주전자 물을 마시며 배고픔을 달랬다. 남은 돈을 만지작거리며 9시까지 참아야 했다.


점심은 드셨을까, 저녁은 드셨을까. 이백 원이면 버스를 타실 수 있었을 텐데. 그 생각에 주머니 속 천 원이 천근만근 무거웠고 나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밤 9시면 오시던 아빠가 그날은 자정이 넘어서야 오셨다.


자다 깼는데 TV에선 '삐-' 소리가 나는 화면조정 시간이었다. “머→머↗야↘ 아빠 왔다.” 작은 목소리에 벌떡 일어나니 먼지투성이 작업복을 입은 아빠가 환하게 웃고 계셨다.


양말을 벗으시는 발바닥에는 물집이 잡혀 있었다. 여덟 정거장을 왕복한 훈장이었다. 아빠는 실과 바늘로 물집을 톡 터뜨리며 군대 이야기를 꺼내셨고, 홍씨 아저씨가 줬다며 가나 초콜릿 두 개를 내미셨다. 버스비 대신 딸 주려고 사 오신 거짓말인 걸 알면서도 나는 행복한 척 웃었다.


가난했지만 아빠는 늘 당당하셨다. 작업복을 매일 깨끗이 빨아 입으시고 늦은 시간에도 내 옷과 양말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빨아주셨다. 빨래판에 하얀 비누 거품을 일으키던 그 손길이 눈에 선하다.


이제 나는 그때 아빠의 나이를 훌쩍 넘겼다. 35살, 아빠는 세상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지고 계셨다. 조실부모하여 의지할 곳 없이 홀로 딸을 키우던 책임감. 고된 일을 하면서도 내가 웃는 모습 하나면 견딜 만하다고 하셨던 아빠.


지금도 버스를 타면 창밖으로 어깨가 처진 채 앞만 보고 걷는 남자들의 뒷모습에 시선이 멈춘다.



30여 년 전 그 겨울 아침, 버스 옆을 지나가며 작아져 가던 아빠의 뒷모습이 겹쳐지며 가슴 한쪽이 저려온다. 이백 원. 그 작은 숫자가 한 사람의 하루를 어떻게 바꿀 수 있었는지. 이제는 안다. 그 길이 어떤 의미였는지.


살아가며 힘들 때마다 그날의 아빠를 떠올리면 내 앞의 어려움은 작아진다. 이백 원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아빠의 사랑 그 자체였다.


젊은 아빠가 보여주신 그날의 선택은 내 인생의 가장 값진 교훈이 되었다. 사랑은 때로 라면 한 그릇이고, 여덟 정거장의 발걸음이며, 이백 원으로 표현되는 아낌없는 마음이었다. 아빠의 모든 순간이 가슴 한편에 살아 숨 쉰다.


“머→머↗야↘” 하고 다정하게 부르시던 아빠


나는 그해 겨울

사랑이라는 이름의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어른의 거짓말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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