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오래 머무는 일
매운 음식을 먹을 때 우리 몸은 통증을 느끼고, 뇌는 그 고통을 잊으려 엔도르핀을 뿜어낸다고 한다. 고통과 쾌감이 뒤섞이는 그 기이하고 자극적인 아이러니.
어쩌면 우리는 인간관계에서도 비슷한 화학작용을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상처를 주는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끌리는 이유, 다시는 안 보겠다고 다짐하고도 결국 연락 버튼을 누르는 그 패턴. 혹시 우리는 아픔 뒤에 찾아오는 그 짧고 달콤한 화해의 순간, 그 치명적인 중독성에 빠져 있었던 건 아닐까.
눈물 콧물 흘리면서도 자꾸 손이 가는 이 매운맛 같은 관계 말이다.
나의 20대, 첫사랑이었던 4살 연상의 그는 거부할 수 없는 뜨거운 '불'이었다. 손끝에서 타오르는 열기가 내 피부를 데웠고, 나는 그 선명한 화상의 흔적을 사랑이라 불렀다.
밤마다 걸려오는 전화 한 통에 심장은 요동쳤고 그와의 만남에 평범함이란 없었다. 갑작스러운 여행, 새벽을 가르는 드라이브, 비 오는 날 무작정 떠난 가평 레저까지. 그와의 삶은 밤하늘의 불꽃놀이처럼 언제나 즉홍적이고 화려했다. 나는 그 위태로운 불빛 아래 서서 파편이 내게 쏟아지길 기다리곤 했다.
"사랑해." 폭발처럼 쏟아지는 그 한 마디를 듣기 위해 나는 수없이 울어야 했다. 싸움은 늘 사소한 곳에서 시작됐으니까. 약속 시간 30분 지각, 답장 없는 메시지, 낯선 여자에게 머무는 시선, 그리고 친구들과의 잦은 술자리.
"다신 연락하지 마." "헤어져." 일주일에 한 번씩 밥 먹듯이 퍼붓던 말들. 홧김에 헬스장에서 씩씩거리며 그의 번호를 지웠다가 며칠 뒤 수영장 샤워실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다시 저장 버튼을 누르던 그 찌질하고도 처절했던 반복.
화해는 늘 달콤했고 동시에 비겁했다. "우는 모습도 예쁘다"던 그 말도 안 되는 위로에 나는 또 바보처럼 무너졌었다. 우리의 관계는 딱 중독성 강한 매운 떡볶이 같았다. 속이 쓰려 눈물을 흘리면서도 자꾸 포크를 가져다 대는.
"너랑은 평생 못 살 것 같아." 마지막으로 그가 던진 말은 내 가슴에 칼처럼 박혔다. 그리고 아프게도 그건 진실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태우는 불이었고 결국 남은 건 하얀 재뿐이었으니까.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 서로를 보듬는 게 서툴렀던 우리.
26살, 나의 미숙했던 첫사랑은 그렇게 5년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렇게 여러 해가 흘러 만난 지금의 남편은, 처음엔 평화로운 저수지 같은 사람이었다. 나이 차이에서 오는 어른스러운 든든함. 잔잔하고, 깊고, 때론 심심할 만큼 평화로운 사람.
그러나 10년을 살고 보니 어른들이 말한 "남자는 나이 먹어도 애다"라는 말을 몸소 체험 중이다. 그는 그저 물처럼 썰렁한 아재 개그로 내 일상을 잔잔히 적시고 나도 못하는 애교를 부리며 되려 나를 무장해제 시킨다.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들어 이젠 개그 코드마저 제법 잘 맞는 사이. 언제나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주고 과분할 만큼 사랑을 표현해 주는 세상에 하나뿐인 내 편.
가끔 꿈에 옛 연인이 불현듯 나타날 때가 있다. 당시의 타오르던 열정과 마음고생으로 욱신거렸던 통증이 생생하게 느껴져 화들짝 놀라 눈을 뜬다. 그러면 귓가엔 남편의 우렁찬 코골이가 들려온다.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언제나 나를 지키고 있을 현실의 소음.
헬스장에서 땀을 흘리며 문득 생각했다. 매운 음식은 입엔 즐거워도 결국 화장실에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지만 순한 음식은 속을 편안하게 하고 마음을 든든히 채운다는 것을
지금의 이 순한 맛 사랑이 가끔은 너무 심심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다 옛 기억의 자극적인 매운맛이 혀끝에 어렴풋이 감돌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이 편안함이 얼마나 귀한 감정인지. 매일 밤 전쟁 없이 평화롭게 잠든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 선물인지.
인생은 결국 불꽃놀이처럼 화려하게 타오르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잔잔한 저수지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천천히 곁에 오래 머무는 낚시꾼의 마음과 같다는 걸. 나는 이제야 뒤늦게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