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기로 한 그날의 이야기

죽음은 우아하지 않았다

by 머머씨


이건 좀 위험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삶의 끝자락을 상상해 보았을 것입니다. 이 글은 우연히 세상을 비관하는 누군가의 글을 보고 남기는 저의 참회록이자, 23살의 나에게 보내는 뒤늦은 반성문입니다.


20살에 멈춘 엄마의 약봉지 스무 살, 엄마를 떠나보내고 창고를 정리하다 낡은 상자를 발견했다. 먼지 쌓인 약봉지들. 암 환자였던 엄마가 마지막까지 붙들었던 독한 항암제와 항생제들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엄마가 살기 위해, 단 하루라도 더 우리 곁에 있기 위해 그 독한 약들을 삼키며 얼마나 치열하게 버티셨는지.


23살, 세상에 혼자였던 시간 뒤늦은 사춘기가 스물셋에 찾아왔다. 대학과 사회생활을 병행하며 겪은 인간관계의 환멸. 지금 보면 별것 아닌 일들이 그때는 왜 그리 태산처럼 무거웠는지. 엄마 없는 집은 적막했다. "밥 먹었니?" 묻는 이 하나 없었고, 아빠와 동생은 각자의 삶을 버티느라 바빴다. 그 고요한 집에서 나의 고독은 소리 없이 나를 갉아먹었고 결국 나는 엄마가 남긴 그 약들에 손을 대고 말았다.


살려달라는 모순 약을 삼키고 찾아온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속이 뒤틀리고 내장이 타들어 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신은 너무나 또렷했다. 죽고 싶어서 한 일인데, 죽음이 이렇게나 아픈 줄은 몰랐다. 뒤늦게 귀가한 동생을 보자마자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충격적이게도 "나 좀 살려줘"였다. 죽으려고 약을 먹어놓고 살려달라니. 동생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떨며 119를 불렀다.


사이렌 소리와 수치심 조용한 주택가에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들것에 실려 나가던 그 순간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놀라서 뛰쳐나온 동네 사람들, 웅성거리는 아주머니들의 목소리 "저 집 큰딸이네", "세상에 무슨 일이래"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건 쪽팔림이었다. 담요를 얼굴 끝까지 끌어올리고 싶었지만 의식을 잃으면 안 된다며 계속 말을 시키는 구급 대원님 때문에 그마저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온 동네에 내 치부를 전시하며 실려 갔다.


지옥 같았던 위세척 드라마에서 보던 평온한 죽음은 없었다. 코로 들어오는 굵은 호스를 꿀떡꿀떡 삼켜야 했던 위세척의 고통, 약 기운에 온몸이 퉁퉁 부어 혈관을 찾지 못해 사타구니와 발가락에 억지로 꽂아 넣은 주사 바늘들. 내장은 뒤집어지고 몸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고통 덩어리가 된 기분. 그것은 지옥이었다.


40살의 내가 23살의 나에게 그날의 고통과 수치심 덕분에 나는 다짐했다. 다시는 내 몸을 해치지 않겠다고. 엄마가 그토록 살고 싶어서 드셨던 약으로, 삶을 버리려 했던 불효를 뼈저리게 후회했다.


혹시 지금 죽음을 생각하는 당신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그 순간엔 그게 최선 같죠? 겪어보니 그건 최악 중의 최악이었습니다. 죽음은 결코 아름답지 않아요. 더럽고, 아프고, 수치스럽습니다. 내가 그 증인입니다.


마흔이 넘은 지금, 그때의 저를 안아주며 말하고 싶다.


"그때의 아픔은 다 지나간다. 네가 견딜 수 있는 것보다 더 센 슬픔은 오지 않아."


당장엔 안 들리겠지만 그래도 버티세요

무시하고 보란 듯이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게 세상에 대한 최고의 복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