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이불: 1998년 이후⟫ 리뷰— From 1998 to Now
I. 실패의 고고학: 구조와 잔해
[탐색] 실패의 궤적을 따라 구조를 거슬러 올라간다. 인간을 탓하지 않고, 여전히 인간을 믿으며, 그럼에도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 ‘기괴한 애정’의 추적.
Q.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신체와 사회, 인간과 기술, 자연과 문명의 관계망, 그리고 이를 둘러싼 권력의 메커니즘. 인류의 과거와 현재 성찰, 미래에 대한 사유로 나아가는.
—과도하게 설계된 구조, 중단된 프로젝트, 목적을 잃은 듯한 형상들: 인간의 욕심과 열망, 그리고 실패한 이상의 잔해들에 대한 조망 ➝ 인간의 욕망은 인류를 움직여온 원동력이 되었으나 그 결과가 언제나 아름답거나 옳지는 않았다. 근대적 유토피아가 남긴 파편들을 폐기하지 않고 그 안에 얽힌 구조를 파헤쳐 현재를 성찰한다.
II. 기술과 신체: 완전성이라는 폭력(Hubris)¹
[해체] 개별적인 신체가 기술과 권력을 만날 때 일어나는 존재론적 충돌
포스트휴먼(Posthuman)² —더 이상 자연적인 것이 아닌 사회·기술적 산물로 재구성·재편집된다. 인간은 인간 이후를 상상할 때조자도 <인간>을 다룬다.
↳ 인류의 불멸과 완전성에 대한 열망(권력이 신체를 다루는 방식)이 드러나며, 작품 속 기술은 구원의 장치가 아닌 인간의 결핍을 반복해서 증폭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기술은 권력 아래 신체를 더 세밀하게 관리하고 이상화하며 그 자체를 통제하는 언어가 된다.
↳ 인간이 추구하는 ‘완전성’은 늘 타자를 배제하고 현재를 소모한다. 완벽한 신체를 상상할수록 현재의 신체는 더 불완전해지고, 완전한 사회를 상상할수록 현재의 사회를 더 실패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 [비교의 장치]
III. 거울의 방: 반복되는 유령과 양가성
[감각] 전시장에서 마주하는 시각적 체험과 그로 인한 철학적 기시감
✧ Hauntology³ —선형적 발전이 아닌 지리멸렬한 반복의 인간사. 끝없는 루프(loop) 속에서 과거의 유령을 계속해서 마주하는 반복 강박 → 전시 후반 묘한 기시감의 연속.
✧ In-between/ Liminality⁴ —실패의 분기점, 완성되지 못한 서사 사이에 끼인 에너지들의 응축
✧ Ambivalence⁵ —빛·어둠, 이상·현실, 아름다움·트라우마. 가장 대척점에 있으면서도 가장 서로를 가능하게 하는 관계; 모순(Paradox)⁶
↳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할 때에는; 현실 세계에서 일상을 지낼 때와는 달리; 현실의 눈을 가린 채 작정하고 작가의 작품 속 세계관으로 입성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빛과 이상, 아름다움을 발하는 작품을 온전히 마주하며 이상향적인 미(美)를 추구하게 된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대로 미(美)만을 즐기는 작품이 있는 반면, 그 주변을 감싼 어둠에 주목해야 하는 작품도 있는 법이다. 아름다움으로 교묘하게 둔갑한 듯 하지만, 이불(Lee Bul)의 작품은 ‘빛과 어둠’, ‘이상과 현실’, ‘아름다움과 트라우마’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유혹적인 아름다움으로 치장한 내면의 폭력성을 가차 없이 드러낸다. 여기서 오는 카타르시스는 불편한 감정을 수반한다; 숭고(The Sublime)⁷
IV. 실존적 태도: 취약함의 수용
[제안] “Because everything/ only really perhaps/ yet so limitless” —왜냐하면 모든 것은/ 그저 정말로 어쩌면/ 그럼에도 한없이 무한한
인간의 결함이 아닌 인간의 조건으로써 존재하는 **취약함(Vulnerability)⁸**. 이를 받아들이고 불완전한 상태로 존재하는 용기를 제안한다. 인간의 필수조건인 취약함을 삭제하려는 욕망 자체가 폭력이라는 경고를 던지며 멈추지 않는 사유의 태도를 요구한다.
인간의 사유는 언제나 불완전한 가설 위에 서있지만 이를 포기하지 않는 태도 자체가 인간을 인간이게 한다. 인간만이 확실하지 않은 것을 견디는 존재이기에; 괴리(Disjunction)⁹
결코 닿을 수 없는 인간과 인간, 세계와 인간, 세계와 세계에 대한. 이상적인 껍질과 숙명적으로 불완전한 알맹이 사이의 간극에 대한. 어떤 모든 시추에이션도 결코 이상향적인 하나만의 결과를 낳진 않는다. 모든 행동들의 결과는 복합적이고 가변적이고 무형적인 가능성을 가진다. 결과로써 오염되고 실패한 욕망들은 재차 다른 이름으로 둔갑하여 시간에 반복적인 기스를 남겼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불편한, 취약한, 어지러운 상태를 받아들인 이후의 우리는? 유감스럽게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 루프 속에서 미세한 ‘균열’을 찾아내는 것. 완전히 해결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불가능성을 직시하는 행위를 윤리적 실천으로 행하는 것. 세계는 계속해서 투박하게 굴러갈 것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인간다움의 본질. <태도에 대한>
아직도 진보를 믿는가,
그럼에도 진보를 믿는가.
¹ 휴브리스(Hubris):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로, 자신의 한계를 망각한 인간의 오만함을 뜻합니다. 본문에서는 기술을 통해 신의 영역인 '완전함'에 도달하려는 인간의 과도한 열망과 그 열망이 초래한 폭력적 결과를 상징합니다.
² 포스트휴먼(Posthuman): 첨단 기술(AI, 생명공학 등)과 결합하여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선 존재를 뜻합니다. 단순히 '기계 인간'을 넘어, 인간 이후를 상상하는 순간조차 결국 인간적 욕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존재론적 충돌을 보여주는 개념입니다.
³ 하운톨로지(Hauntology): '유령(Haunt)'과 '존재론(Ontology)'의 합성어입니다. 선형적인 발전을 믿었으나 실현되지 못한 과거의 유토피아가 사라지지 않고, 현재의 시공간 속에 유령처럼 반복해서 출몰하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합니다.
⁴ 리미널리티(Liminality):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계' 혹은 '문턱'의 상태를 말합니다. 본문에서는 근대적 유토피아가 실패한 분기점과 아직 완성되지 못한 서사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나아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한 채 그 틈새에 응축된 폭발적인 에너지를 상징합니다.
⁵ 양가성(Ambivalence): 한 대상에 대해 '아름다움과 공포', '사랑과 증오'처럼 서로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공존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가장 대척점에 있는 두 가치가 서로를 투영하여 존재를 가능하게 만드는 모순적인 관계를 보여줍니다.
⁶ 숭고(The Sublime): 미학에서 '숭고'는 단순히 예쁘고 고운 '미(美)'와 대조되는 개념입니다.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와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에 따르면, 숭고는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거대함이나 공포, 위험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압도적인 감정을 의미합니다. 이불(Lee Bul)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숭고는 화려한 외형(이상)과 그 속에 내재된 파편화된 신체나 근대성의 실패(트라우마)가 충돌하여 발생하는 '불편한 경외감'을 지칭합니다.
⁷ 모순(Paradox):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사실이 한 몸처럼 묶여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불의 작품에서 '아름다움'은 '폭력'을 가리는 가면이 아니라, 오히려 그 폭력성을 가장 극명하게 폭로하는 장치가 됩니다. 유혹적일수록 잔인하고, 화려할수록 고통스러운 결합을 통해 우리가 외면해 온 진실을 대면하게 합니다.
⁸ 취약함(Vulnerability): 상처받기 쉽고 불완전한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을 말합니다. 작가는 이를 제거해야 할 결점이 아니라, 인간이 서로 연결되고 실존하기 위해 받아들여야 할 필수 조건으로 제시합니다.
⁹ 괴리(Disjunction): 이상의 추구가 남긴 폐허와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사유 사이의 거대한 간극을 말합니다. 이 불완전한 틈을 메우려 하기보다, 그 어긋남을 기꺼이 견뎌내는 것이 인간다움의 본질임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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