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틈에 선 이방인의 초상
해를 등지고 깨어난 아침의 방엔 어딘가 불쾌한 물선 냄새가 감돈다. 어젯밤 꾼 꿈이 흘러나와 방을 또 덮친 탓일까. 고약한 향을 애써 뒤로하고 고개를 돌리자, 나뭇잎에 뭉개진 연청록의 햇빛이 창문 틈에 마구잡이로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아, 아침.”
서늘한 목덜미를 매만지며 중얼거린다. 애타게 주인을 찾던 알람 소리를 간신히 알아차리고서야, 비로소 오늘은 어제가 아니라 오늘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모두가 치르는 아침의 제례 의식. 그것을 치르기 전까진 난 여전히 어제를 살 터였다.
어젯밤 예약을 맞춰둔 보일러의 온기가 식어버린 바닥에 발을 뗐다, 붙였다 반복한다. 발바닥 군데군데에 느껴지는 시린 감촉이 잠을 깨기 퍽 나쁘지 않은 감각이다. 쩍쩍 갈라지는 발바닥 소리, 그리고 세상이 멈춰도 언제고 돌아갈 듯이 낮게 웅웅 거리는 냉장고를 뒤로한 채, 무언의 의식을 치르듯 화장실로 향한다.
여느 때와 같이 거울 밑에 자리한 시퍼런 칫솔 하나를 집어 들며, 문득 그림자가 비친 거울 속 나를 바라본다. 가장자리에 녹이 피었다. 내 얼굴높이만큼이나 자란 이 녹은 언젠가 잃어버린 짐 한 짝처럼 찰싹 들러붙어있다. 언제 자리 잡았는지도 모를 주름 하나를 뒤늦게 알아차린 사람처럼 왠지 모를 서글픈 맘에 요리조리 얼굴을 살핀다. 옅게 반사된 그림자가 얼굴에 스며든 모습이 마치 종이 쪼가리를 이어 붙인 인형 같다.
금이 난 얼굴을 보며 괜스레 눈가를 몇 번 매만지다, 시간에 쫓겨 서둘러 화장실을 나와 화장대에 선다. 길게 늘어진 이 의식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몇 안 되는 화장품들 사이로 불쑥 솟은 토너 하나를 집어 손바닥에 덜어낸다. 혹여 제 자리를 벗어날까 두려운 듯 손금 사이에 엉겨고인 액체들을 바라보다, 그 뒤로 연붉게 새겨진 네 개의 손톱자국을 발견한다. 다시 보니 반대편 손에도 선명히 찍혀있다. 밤새 주먹을 꽉 쥔 채 잔 모양이다.
“지독하기도 하지, 넌 여전히 어제에 사는구나”
어제 내가 붙잡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이미 희미해져 버린 어젯밤 꿈을,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기 시작한 액체를 보며 떠올린다.
버석한 얼굴에 닿는 손바닥이 내 것이 아닌 듯, 지금 내가 들여다보는 거울이 오늘 것이 아닌 듯, 내가 내가 아닌듯한 묘한 미시감에 불쾌한 울렁거림이 속을 메운다. 몸 밖에 난 모든 구멍으로부터 타고 들어 장기 사이사이에 속속들이 들어앉는 이 메스꺼움도 남은 의식을 마치면 곧 잦아들 터였다. 진작에 끝났어야 될 유예된 장례의 시간이 내게 심통을 부린 것이리라.
그새 바닥에 흥건히 고여버린 액체를 보며, 손바닥에 얼마 남지 않은 토너를 황급히 얼굴에 두드리기 시작했다.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는 저작권 제약이 없는 Stephen Leonardi님의 사진으로, 아래 링크의 [Pexels] 갤러리에서 원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출처: https://www.pexels.com/ko-kr/@stephen-leonardi-58768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