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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호 May 30. 2017

신림동 순대볶음

때는 1986년, 대학 신입생 시절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 사귄, 그러니까 그 전에는 일면식도 없었던 친구 하나가 무려 "순대"를 먹으러 가자는 것이었다.


그전까지 내가 알고 있던 순대는 무려 "먹으러 갈 정도로" 귀한 음식은 아니었다. 순대야 뭐 시장통 가면 양은 함지박에 불 약하게 해서 살살 데우고 있는 거 꺼내서 칼로 썩썩 썰어주면 집에 가져가서 소금 찍어서 몇 개 먹는 거지 그걸 뭘 멀리까지 가서 먹을 음식이냐고 타박을 했는데, 그 친구는 그게 네가 생각하는 그 순대가 아니라면서 강권을 해 온 것이다.


결국 지하철 2호선, 당연히 그 시절에도 지하철이 있었어!! 내가 조선시대 성균관이나 고려시대 국자감 출신이 아니라고!!


사실 지하철 2호선은 대략 1980년 정도에 개통된 걸로 기억한다. 그전에 있던 신촌 로터리의 풍경도 기억하는데, 핵심은 로터리 한 복판에 시계탑이 있었다는 것 정도였다.


바로 그 2호선을 타고 신촌에서 신림역까지 가서 무슨 시장통으로 가더니 자리를 잡는데.. 


널찍한 철판에 순대와 갖은 채소를 넣고 기름을 붓고 양념을 넣더니 휘릭 휘릭 뒤적 뒤적 슥삭 슥삭 볶아 준다. 거기에 막걸리가 나오니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것이 또 없을 것 같은 맛이었다. 거기다가 가격도 엄청 싸. 도저히 이 가격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너무 싸서 당황했을 정도니까.


그 시절이 아마 신림동 순대 볶음이 처음 탄생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돼서였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신림동 순대볶음은 사실 전통 재래시장이었던 신림시장에서 꽤 오래전에 생겨났다고 한다. 시장통 좌판에서 또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술안주 삼아, 가벼운 식사 거리 삼아 순대에 양념과 채소를 넣어 볶아 주기 시작한 것이 1970년대라는 증언이 있다.


그 뒤로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나자 신림시장 내에는 아예 순대볶음을 전문으로 하는 상인들이 모여 각각의 코너를 분양받아 운영하는 시스템이 생겨나고, 이때쯤 내가 처음 가 보게 된 것이다. 그 뒤로는 아예 순대볶음 자체가 유명한 브랜드가 되어 일종의 서울의 명물 메뉴로 성장하면서 시장을 벗어나 그 자리에 빌딩을 올리고 그 빌딩의 층마다 순대볶음 집이 생기기에 이른다.


빌딩 전체가 순대볶음 한 가지 메뉴만을 취급하는 순대볶음 전문 빌딩이라니.. 그 빌딩의 이름까지 순대타운.


심지어 거기서 순대볶음 먹고 있으면 웬 할머니가 껌을 팔러 오는데, 그 껌 파는 할머님이 순대타운 빌딩의 건물주라는 얘기도 들어 봤고.. 


그게 점점 더 발전해서 이제는 그냥 기름에 볶은 뒤 가운데 있는 소스에 찍어먹는 백순대도 나오고.. 이 백순대가 나온 시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아주 초창기, 그러니까 70년대부터 있었다는 주장도 있고, 나중에 90년대 들어서 널리 퍼진 메뉴니까 90년대에 생긴 걸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뭐 어쨌거나.


신림동뿐 아니라 안양에도 중앙시장에 순대골목이 생겨서 거의 비슷한 메뉴를 팔고 있었던 기억도 난다. 작은 점포를 그 와중에 복층으로 변경해서 좁은 사다리를 타고 이층에 올라가 퍼져 앉아 순대볶음을 안주로 술을 마시면서 무슨 얘기를 할 게 그렇게 많았는지..

 

이제는 뭐 그닥 싸지 않은 가격에 그냥 흔한 맛있는 메뉴로 자리를 잡은 느낌이었지만, 처음 맛을 봤을 때의 그 추억은 아직도 잊지를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갑자기 백순대가 먹고 싶어 졌다는 말을 한마디 하려다가 이렇게 장광설을 늘어놓게 된 것일 뿐이다. 가끔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사실 이런 추억 속의 맛은 아마 지금 당장 그 시절로 돌아가서 먹어 보라고 한다면 별 것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젊은 날의 추억이라는 조미료가 더해지고 내 기억 속의 좋았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버무려지면서 세상에 없던 천상의 맛으로 기억되는 것일 뿐.


그래도 뭐 나쁠 것은 없다. 이런 추억 하나 정도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은 나름대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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