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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호 Jan 20. 2017

역사의 죄인

특검팀에서 청구한 이재용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법원의 판단에 사람들이 불만을 토하고 있긴 하지만 이재용의 처벌 판결 문제도 아니고 구속 여부가 뭐 그렇게 큰 사안은 아닌 것이 사실이다. 구속이건 불구속이건 수사는 지속되고 기소는 할 테니 말이다. 


재벌집 귀한 아들내미를 차마 감방에 넣진 못하겠다는 판단이 섞이는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이 계급을 허용치 않는 헌법을 가진 민주공화국의 사법부가 해도 되는 판단 인가 하는 의문이 있을 뿐이다. 


문제는 김기춘이다. 


뭐 사실상 최고의 문제는 박근혜지만, 그거야 일단 헌재에서 탄핵을 인용한 뒤에 생각할 일이고 조윤선이나 기타 조무래기들의 죄를 따지기 이전에 역사적 차원에서는 김기춘이 핵심 문제가 되는 것이 맞다. 심지어 역사적 관점에서는 박근혜보다 김기춘이 더 문제다. 


박근혜야 뭐 잘못된 가정에서 태어나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대통령 역할놀이를 한 잘못된 인간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저런 인간을 대통령으로 무려 "선출"까지 한 우리 사회는 심각하게 반성을 해야 한다. 난 박근혜 안 찍었어요~ 하는 변명은 소용없다. 민주공화국에서 투표의 결과는 모든 유권자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기춘은 "역사의 죄인"이다. 이젠 어떤 상징적인 존재가 된 느낌이다.


긴 시간 동안 이 사회를 지배해오던 폭압적이고 권위적인 가치관이 있는데, 그건 어떤 시점에서는 "반공"이었고, 어떤 시점에서는 "애국"이었고, 어떤 시점에서는 "총화단결"이었고, 어떤 시점에서는 "똘똘 뭉친 민족의 힘"이었고, 어떤 시점에서는 "건전 보수"였다.


권력은 하늘이 점지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며, 일단 권력을 잡으면 안정되어야 하고, 그 권력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빨갱이 들이며, 간첩사건을 만들어서라도 잡아다가 때리고 고문하고 감옥에 처넣고 가족을 망가트리고 일가친척 모두에게 불이익을 줘야 하는 "역적"으로 간주하는 사고방식.


그 사고방식은 한 때 이 사회의 구성원 중 다수가 신봉하는 사고방식이었으나, 제대로 된 민주사회라면 범죄적 사고방식에 불과하다. 김기춘이 지시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 "블랙리스트" 같은 것들이 바로 그런 반민주적 범죄이며, 그런 일을 하겠다고 생각해내고 시행하는 그런 사람이 바로 민주주의의 적이다.


정권을 위해 도청도 불사하고, 정권을 위해 간첩조작에 앞장서고, 정권을 위해 고문을 지시하고, 정권을 위해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하고, 정권을 위해 재벌을 압박해 돈을 뜯고..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기 위해 헌법 자체를 뜯어고쳐서 유신헌법을 만들어낸 사람이 바로 김기춘이다. 그 후로 거의 반백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김기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런 반민주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활동해 왔고, 정권들은 그런 김기춘이 정권 유지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보이지 않는 곳에 기용해서 써먹어 왔던 것이다.


김기춘은 반민주주의자이다. 더 쉽게 말하자면 파시스트다. 정권과 국가를 동일시하며, 국가, 전체를 위해 개인의 희생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여겨 버리는 그런 인물이다. 그런 사고방식으로, 큰 권력을 가지고 수십 년, 아니 반백년 동안 이 사회를 파시즘으로 오염시켜온, 민주주의를 방해한 그런 죄인이다. 그를 역사의 죄인이라고 부르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특검이고 법원이고, 다른 죄인들 모두 떠나서 김기춘만큼은 확실하게 처벌해 주길 기대한다. 대한민국 사회에는 김기춘 같은 사람이 이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이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켜 주시길 부탁드린다.



물뚝심송 박성호의 페이스북 페이지 : https://www.facebook.com/murutukuspage


뱀발 1 : 표지 사진은 나치의 강제수용소 중 일부의 모습이다.


뱀발 2 : 특검을 이끄는 박검사도 그렇고, 이재용 구속영장을 기각한 조 판사도 그렇고, 이는 특검과 법원이라는 국가 기관이 한 일이다. 박영수나 조의연 개인이 한 일이 아니다. 물론 개인이 의미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기관이 한 일로 인해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그닥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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