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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호 Jan 24. 2017

사는 것이 두렵다

세월호, 그 바로 다음날의 이야기


 2014년 4월 17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나한테는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딸이 하나 있다. 내 딸아이와 같은 또래인 아이들이 침몰 해가는 배 속에서 겪었을 공포를 생각하니 손이 떨린다. 어제저녁, 밤늦게 돌아온 딸아이에게 조용히 물어봤다.


“혹시..”


눈치 빠르게 답변을 한다.


“두 명 있었는데, 학년이 다르잖아. 괜찮아. “


아이 엄마는 한 숨만 쉬고 있다. 차마 뉴스도 보지 못하고, 인터넷도 꺼 버리고 세 가족, 아니 강아지 탱구까지 네 가족이 조용히 산책을 한 다음에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집안의 분위기는 침울하기 그지없다. 아이는 조용히 일어나 아침 먹고 학교로 갔고, 두 부부는 앉아서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한 숨만 쉰다. 그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역시 아이를 길러낸 엄마이자, 지금도 몸과 마음이 불편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여성이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그냥 가라앉아 버린 것도 아니고 기울어져서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있던 배에서 아이들이 그렇게나 많이 나오지도 못하지? 그 아이들 엄마는 어떻게 살라고.."


말을 맺지도 못하고 울음을 터트린다. 아이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참았었나 보다. 드디어 나도 억눌러 왔던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나라고 알겠나. 나도 지금 속이 터질 지경이다.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심하잖아. 난 너무 무서워. 우리가 사는 집, 우리가 타고 다니는 버스, 지하철, 우리가 건너는 다리, 우리가 일하는 건물, 그 모든 것이 언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거고, 그게 다 무너져도 아무도 구하러 오지도 않을 거 같아. “


할 말이 없었다. 무서운 것은 나도 마찬가지, 아니 더했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하게 구성되어 있는지 알아도 내가 훨씬 더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률적으로는 그 시스템이 붕괴할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다. 지금 당장은 너무나 끔찍한 사고를 눈 앞에서 본 결과, 우리 모두가 패닉에 빠져들고 있는 거다. 머리는 계속 이런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공포심은 점점 더 커져가고만 있었다.


우리 사회는 유사시를 대비한 각종 시스템에 들어가는 돈을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끌어 나가는 사회거든. 소방, 방재, 유사시 대응해야 하는 백업 시스템, 플랜 B, 이런 것들에 대해 예산을 투입하는 것을 낭비라고 생각하면서, 효율성을 위해 예산을 삭감해 버리는 사회니까.


“이런 심정으로 어떻게 나가서 일을 하지?”


“나도 문제다. 바로 오늘 터키 여행에 관해 사람들 앞에서 얘기해야 되는데,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


“그거, 연기할 수 없어?”


“글쎄.. “


마음 같아서는 당장 취소하고 다 치워 버렸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것은 딴지일보와의 약속이나 출연진들 간의 약속이기 이전에 그 행사에 참여하려고 마음을 먹고 보러 오기로 한 관객들과의 약속이니까. 단 한 사람이라도 보러 온다면, 약속대로 해야 하는 행사니까. 우리들 마음대로 연기할 수도 없는 그런 거니까.


그래도 사회는 돌아가야 되는 거니까. 그게 우리의 할 일이니까.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어찌 되었거나, 이건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상처로 남을 일이다. 쉽게 치료되지 않을 것이다. 공포에 떨면서도 살아나가야 하는 게 인생이며 우리는 그렇게 되어먹은 인간들이다. 결코 물러서지 말고 살아가야 하는 거다. 그러나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인생 조차 채 살아보지도 못하고 스러져간 어린 영혼들은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그들을 자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했던 그들의 부모들은 또 어쩌란 말인가?


그들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데 어떻게 버텨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 그런 것이다. 그게 인간의 위대함이며, 동시에 구차함이다. 멋지게 타오르는 거? 장렬하게 산화하는 거? 다 허튼 소리일 뿐이다.


구차하고 비루하더라도 끊임없이 살아가는 우리들 한 명 한 명이 가장 위대한 인생들이며, 그들이 이 사회를 이끌어 가고 유지해 가고 있는 거다. 만인을 호령할 수 있는 권력을 지닌 자들이 모두 비굴하고 파렴치하게 도망가 버린 뒤에도 이 사회를 맨 몸으로 지켜낼 사람들이 바로 그 사람들이며, 자식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또다시 일어나 일터로 나아가 이 사회를 유지해야 할 사람들이 바로 그 사람들이라는 거다.


그렇게 다시 일어선다.


슬픔과 두려움을 꿀꺽 씹어 삼키고 아무렇지 않은 듯이 다시 일어나 삶을 계속 살아가야 한다. 그게 우리의 할 일이다.


괴롭고 힘들더라도 모두 힘내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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