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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호 Jan 27. 2017

논쟁의 핵심

문재인 안철수 논쟁에 부쳐


모든 논쟁에는 핵심이 있고, 이 핵심을 벗어나게 되면 논쟁은 개싸움으로 흐르기 십상이다. 따라서 성공적인 논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양측 모두가 약간의 훈련과정이 있어야 하기 마련인데, 일반적인 경우 이런 훈련을 겪은 사람들은 별로 없다. 결국 성공적인 논쟁은 매우 드물게 된다.

 

정치인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다. 사실 정치인들 중 상당수는 이런 훈련을 겪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정석적인 태도로 논쟁에 임할 경우 “정치적인 패배”를 하기 쉽다. 지지자들이 개싸움을 원한다면 정치인은 개싸움을 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단히 복잡하고 미묘한 일이 자주 발생한다. 


그러나 최근 임기를 마친 버락 오바마의 배우자인 미셸 오바마는 이 문제를 아주 간단명료하게 정리하기도 했다. 


“We go high when they go low.”


이래야 한다. 정치적 이익을 떠나, 사회에 도움이 되는 제대로 된 논쟁을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이와 관련된 또 하나의 사례가 발생했다. 안철수와 문재인. 두 대선 후보 사이에서 군대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발생한 것이다. 


전말을 살펴보기로 하자. 


문재인 후보 측에서 군 복무기간을 1년으로 단축하겠다는 공약을 얘기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자 이에 대하여 안철수 후보 측에서는 “국방력에 대한 배려나 출산율 저하에 따른 인구에 대한 고려 없이 단순히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 공약”이라고 주장을 했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군 복무 기간 1년. 이거 괜찮은가? 괜찮을 수도 있고, 안 괜찮을 수도 있다. 요즘에는 모병제로의 전환이 주로 문제가 되고 있지만 그건 좀 구현하기 힘든 얘기이고, 현재로는 군대 갈 나이의 자녀를 둔 부모들은 군 복무기간이 단축되길 원한다. 원래 참여정부 때 이미 복무기간은 18개월까지 단축하기로 예정되어 있었고, 이명박 정권이 그걸 멈춘 전례가 있다. 


문재인 후보 측의 얘기는 18개월 시스템이 정착되면 그다음 단계로 12개월 시스템도 고려해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당장 12개월로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18개월이 1차 목표이고 12개월은 그다음 단계의 얘기라는 뜻이다. 


내 의견은 모병제 아닌 징병제 하에서 12개월 복무 기간은 교육훈련의 문제로 인해 지나치게 짧지 않은가 하는 느낌은 있지만 충분히 논의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군대 문제는 그만큼 유권자 대중의 일상생활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논의해 봐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 공약에 대해 안철수 후보 측이 반발하는 내용도 일리가 있다. 국방력이 감소되어서는 안 될 일이고, 인구 변화 추이를 반영하지 못한 주장이라는 것. 연령대가 내려갈수록 인구가 현저히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도 현역 복무자의 선발 기준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데 복무기간을 더 줄여 버리면 어쩌자는 얘기냐는 것이다. 타당한 질문이다. 포퓰리즘이라는 조금은 가시 돋친 표현을 쓰긴 했지만 말이다.

 

물론 대응책은 전체 병력수를 줄인다거나, 교육훈련 제도를 바꾼다거나 예비군 관련 제도를 바꾸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12개월 주장은 유권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싶은 포퓰리즘적 성격이 있다는 주장은 타당하긴 하지만 지나치게 공격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주장에 재반박을 하려면, 자신의 주장을 보강하면 된다. 12개월로도 국가 안보 유지에 문제가 없다는 설명 같은 것을 붙이면 된다. 


그런데 논쟁은 여기서 붕괴하기 시작한다. 


문재인 후보 측에서 “안 전 대표는 군대를 잘 모른다”는 얘기를 꺼낸 것. 


네가 군대를 안 가봐서 모르는데, 네가 회사(혹은 사회) 생활을 안 해봐서 모르는데, 네가 남자들의 세계를 잘 몰라서 모르는데, 네가 어른이 안 되어 봐서 잘 모르는데..


이 모든 진술은 상대의 토론 참여 자격 자체를 부정하는 진술이 된다. 사람은 자신과 직접 관련이 없는 상황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상상해 볼 수 있는 추상 능력이 있는 동물이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사회 정책을 논할 때에 직접 관련이 없는 사람이 더 객관적인 주장을 할 수도 있다. 겪어보지 않아서 토론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미 동등한 대선후보의 입장에서 대선 공약에 대한 상호 비판적 토론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네가 군대를 잘 모른다고 지적하는 것은 매우 수준 낮은 발언이 된다. 이건 지지자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수준의 선동적 발언이라면 모를까, 정치 토론으로도 낙제점 수준의 발언이다. 비판받아야 한다. 


거기에, 안철수 후보 측의 대응도 수준 이하로 나오고 말았다. 이런 잘못된 대응이 나오면, 대응의 부당성을 지적하면 된다. 그러나 상대는 군생활 30개월 했고, 안철수 후보는 39개월 했다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건 마치, 삿대질하면서 싸우다가 너 나이 몇이냐는 질문에 내가 나이 더 먹었다고 맞받아 치는 저잣거리 멱살잡이 싸움의 행태를 보는 듯하다. 이렇게 되면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이제 장교생활이 군생활이냐, 특전사 생활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래도 군대는 마찬가지다, 행정병도 군인이냐, 군의관은 군인이냐, 뭐 이런 시시껄렁한 동네 술자리 잡담 수준의 발화만 이어지게 된다. 결국 서로 삿대질하면서 네놈이 나쁜 놈이라는 주장만 흘러넘친다. 글 좀 쓴다는 사람들까지 끼어서 이런 저급한 감정싸움, 말싸움에 합류하고 있다. 왜 이래야 할까? 


애초에 핵심이었던 군 복무 제도 개혁 문제는 멀리 안드로메다로 사라진 상황이다.


군 복무 제도를 개혁하고자 하는 대선 후보 간의 논쟁이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되는 것일까? 더 이상의 수준을 기대하는 것이 과도한 일인가? 우리 유권자 대중의 수준은 이 정도 정치인을 가질 수준밖에 안 되는 것이란 말인가? 


뜻하지 않게 앞당겨진 대선 일정이 진행되면서 모든 후보들의 점수를 내 마음속에 매기고 있는 중이다. 현재 스코어,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 후보보다 상당히 많이 앞서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번 군 복무 문제로 인해 촉발된 논쟁에서 “안 전 대표는 군대를 잘 모른다”는 식의 반응을 보인 것, 굉장히 큰 감점 요인이었다. 


최소한 우리는 이보다는 더 수준 높은 논쟁을 할 줄 아는 후보들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대선에 참여하고 있는 후보자들은 최소한 이보다는 더 수준 있는 모습을 보여줄 의무가 있다.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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