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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호 Mar 09. 2017

소비의 권리


흔히 떠올리기 쉬운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소비자의 권리 같은 것을 얘기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제값을 냈으면 당연히 거기에 상응하는 서비스나 재화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얘기를 다시 하기에는 지면이 아까운 법.

소비 그 자체가 가져오는 사회적 권리를 말하려고 한다.

자본주의는 시장경제 체제가 지탱하는 순환 시스템이다. 누군가는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한다. 그 생산된 재화는 시장에서 거래되어 누군가에게 팔려간다. 그걸 사가는 사람은 소비자이며 소비자는 재화와 서비스를 생존을 위해 소모해서 없애 버린다. 소비자가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는 소비여력은 바로 그 소비자가 직접 생산에 참여해서 분배받은 돈에 의지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가 된다. 생산에 참여해서 분배받은 돈으로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해서 말 그대로 소비한다. 이게 기존의 시장경제 시스템인 것이다. 이 시장의 순환구조가 적절히 순환될 때에만 자본주의는 생명력을 얻게 된다.

문제는 기술의 발전이다.

인류 문명의 발전에 의해 생산에 필요한 기술이 어떤 임계점을 넘어 진보하고 있는 중이다. 그 임계점이라는 것은 바로 인간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가 여부이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생산성이 향상되더라도 생산에 있어 인간의 노동력은 필수적인 존재였으나, 그 임계점이 깨지면서 생산에 필요한 인간의 노동력이 어느 선 이하로 내려가 버리고 만다. 바로 인공지능과 로봇의 등장 때문이다.

즉 이제는 더 이상 인간의 노동력이 생산의 필수요소가 아니게 되는 상황이 온 것이다. 물론 고도의 의사결정 같은 것을 위해 극소수의 전문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게 생산 비용에 일정 비율 이상 차지하지는 못한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들이 생산활동에 참여할 기회가 줄어든다.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얘기이다. 그다음 단계는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필수적인 소비 여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대거 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다수의 인류가 생산과 소비 양쪽에 참여하며 운영되던 순환 사이클이 붕괴된다는 의미이다. 더 이상 인류는 생산에 필요하지 않은 상태. 이런 붕괴가 가시화되면 생산 역시 붕괴한다. 소비자들이 없어지는데 이미 생산한 재화를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 더 이상 재화를 생산할 이유가 없어지게 된다.

마치 대공황 시대에 대량 생산된 소비재를 살 소비자들이 모두 빈민으로 전락해서 경제가 마비되고 모든 생산이 중단되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듯이 똑같은 상황이 또 연출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소비의 권리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먹고 놀기만 하는 것을 "무위도식"이라고 하며 모든 문화권에서 무위도식은 게으르고 비생산적인 행위로 비난의 대상이 된다. 서구사회에서도 청빈과 근면은 중요한 미덕이었으며 게으름, 나태는 악마적 행위로 묘사된다.

그러나 인간이 생산에 참여할 기회 자체가 사라진 사회에서 게으름은 과연 죄악일까? 어떤 한 사람이 살아 숨 쉬고 생존을 위해 최소한의 소비를 해야 한다면 그는 자본주의의 시장경제 구조를 순환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중이다. 소비의 역할 말이다.

시장을 유지하는 데 있어 이 "소비"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소비를 해야만 하는 인간은 직접 생산에 참여하는가 여부와는 전혀 관계없이 "소비"만으로도 자본주의 시장경제 구조에서 매우 중요한 톱니바퀴인 셈이다.

인간이 필요 없는 수준으로 자동화된 재화 및 서비스 생산공장에서 벌어들이는 돈 중의 일부를 나머지 인간들의 소비를 위해 투자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 때문에? 노동은 신성하고 근면은 훌륭한 일이니까? 일하지 않는 자에게 돈을 주면 안 되니까?

그런 구시대적 도덕적 원칙들은 인간들이 영주의 노예, 농노 상태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산활동에 참여하고 그 대가로 소비를 하고 세금을 내기 시작하던 시대에 생겨난 한시적인 도덕률에 불과하다. 그렇게 사회 경제 구조에 참여한 대가로 시민들은 권리를 요구했고 이에 의해 왕정이 붕괴하고 공화국이 건설되었으며 민주주의가 도입된 것 아니겠는가. 이제 그 단계를 넘어서 인류 문명이 제2의 도약을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생산은 기술이 담당하고 인류는 소비를 담당하면 된다. 기술이 생산해낸 소비재를 팔아 얻은 돈은 인류 전체에게 소비를 위한 여력으로 공급되는 것이다. 이게 기본소득의 핵심 아이디어이다.

그런 면에서 기본소득은 소비의 권리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산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다음 세대의 인류는 하루 8시간의 "생존을 위한 노동"에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자유롭고 문화적인 지적 생산활동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즉, 재화 생산을 위한 노동에서 벗어나 유희와 문화를 위한 보다 창조적인 노동에 임하게 된다는 것. 이제는 생존을 위한 억지 노동에서 벗어나, 스스로 하고 싶은 작업에 노동을 투입해 창조적이고 문화적인 결과물들을 생산하는 시대가 되어 간다는 뜻이다.

이런 미래도 나름 괜찮지 않을까?

기본소득이 우리에게 그런 미래를 가져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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