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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호 Mar 06. 2017

나쁜 놈을 왜 도와줘?


영사 조력이라는 말이 있다. 외국에 나가 있는 대한민국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영사업무의 일환이다.

국제법상 외국에서 우리 국민이 사건 사고를 당하게 되면 해당 국가의 법률과 제도가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관례다. 우리도 그 관례를 넘어설 수는 없다. SOFA 같이 미군이 우리나라 땅에서 범죄를 저질러도 우리 사법제도를 적용하지 못하고 미국 측으로 인계해야 한다는 조약 같은 것이 불공평한 조약일 뿐, 해당 국가의 제도가 원칙이라는 것은 대전제라는 얘기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얘기도 있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서라도 대한민국의 정부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 한다. 그럴 때 바로 법과 제도를 어기지 않는 한 최선을 다해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업무를 하도록 정의해 놓은 개념이 바로 "영사 조력"이다.

거의 대부분은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이다. 직접적으로 뭔가를 해 주기보다는 현지의 룰과 규정을 이해하지 못한 외국인으로서 당하기 쉬운 불이익을 막기 위해 최선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며,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오히려 그런 상황에 빠져 대사관에 연락을 취했는데 귀찮아하며 알아서 해결하라고 모르쇠 하는 것들이 나쁜 놈들이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자들이 그런 업무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자르는 게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해외에 나가 성매매, 즉 섹스 투어를 하던 한국인 일행이 필리핀 현지 경찰에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정도면 사회 일반의 상식에 비추어 보면 거의 확실하게 나쁜 놈들이다. 워낙 만연해 있는 일이기도 하고, 정말로 부끄럽고 창피한, 낙후된 문화 현상이기도 하다.

한 때 일본인들이 아시아권에서 이런 짓을 많이 한다고 우리 사회에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 소위 기생관광이라고 부르던 그런 행태 말이다. 우리는 그런 일본인들을 보고 "돈 좀 벌었다고 추태를 부리다니, 역시 왜놈들.." 이런 식으로 비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 우리가 그 짓을 하고 있다.

제발 그러지 좀 말자. 창피한 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나쁜 놈들이 거의 확실해 보이는 자들이라 해서 대한민국 정부가 "영사 조력"을 거부하고 너희들은 거기서 그렇게 엄벌에 처해져 마땅하다~ 하면서 팔짱 끼고 지켜보는 게 맞는 일일까?

이런 일도 있었다.

http://news.joins.com/article/20782833

단지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곤경에 빠진 국민이다. 특히나 거의 대부분이 세음절로 이루어진 이름을 가지고 있고, 그중에서도 김이박 3성이 너무 흔한 우리 이름의 구조적인 특성상, 동명이인은 너무나 흔한 일이지만 외국에서는 그런 걸 구분하지 못한다.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라는 얘기이다.

이런 일에는 절대적으로 영사 조력이 필요하다. 이거 안 하면 욕먹어야 된다.

해외에 나가서 성추행 성폭행당하는 여성들, 진짜 다급하게 영사 조력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라고 월급 주는 거다. 사실 이런 일을 안 하니까 외교부가 쌍욕을 듣는 거다.

대원칙은 간단하다.

억울한 피해자건, 99% 나쁜 놈이 확실한 범죄자들이건,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해당 국가의 사법제도에 걸려 있는 상태라면 대한민국 정부는 무조건 영사 조력을 제공하는 것이 마땅하다.

법감정? 자업자득? 뭐 무슨 말을 해도 이 원칙은 흔들리지 않는다. 진짜 나쁜 놈이라면 대사관 직원이 나가서 대놓고 욕을 하면서라도 도울 일은 도와야 한다. 현지에서 풀려나면 바로 우리 사법기관에 인계해서 제대로 처벌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것은 다음 단계고 일단은 돕는 게 맞다.

해당 국가의 사법제도가 제대로 정비되어 있건, 아니면 아직도 소매치기 같은 범죄가 발생하면 경찰이 현장에서 범인을 검거해서 일단 패고 시작하는 원시적인 국가이건 관계가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을 보호해야 하고 도와야 한다. 그 국민은 선량한 여행자이건 타락한 섹스 중독자건 범죄자건 가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범죄자일 가능성이 높으면 우리가 우리의 사법제도로 처벌하면 될 일이다.

물론, 정작 도와야 할 사람들의 도움 요청은 외면하면서 섹스 투어나 하고 다니는 개쓰레기 같은 인간들에게 무려 "영사 조력"을 제공하겠다고 나서니 화가 나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그런 놈들을 왜 돕냐고, 돕지 말라고 외치는 것은 옳은 이야기가 아니고, 그저 일회적이고 소모적인 감정의 발산 밖에 안된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하려면 이렇게 주장해야 한다.

대한민국 정부 산하 외교부는 해외에서 곤경에 빠진 모든 국민에게 적절한 영사 조력을 제공하라.

언제나 옳은 말은 이렇게 맹숭맹숭하고 아무 재미가 없기 마련이다. 그래도 그런 옳은 말이 지켜지는 사회가 문명사회고 민주공화국이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재미없고 밋밋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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