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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호 Mar 20. 2017

신격호 회장과 간통죄

우리나라 법 체계에 간통, 즉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상대와 자발적으로 성관계를 갖는 것이 금지되고 이를 처벌하는 조항이 포함된 것은 고조선 팔조법금부터라고 보는 것이 맞다.

그 이후 역사적으로 언제나 간통은 처벌 대상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언제나 부계혈통을 지키기 위한 제도로 작동해 왔다.

즉, 남편의 간통은 있을 수 있는 일 정도로 치부되고, 부유층이나 귀족층의 축첩(부인 이외에 첩을 두는 행위)은 허용되는 식이었다. 심지어 첩이 아니더라도 결혼한 아내 이외의 여성에게서 아이를 낳아 와도 키울 능력이 있으면 키우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고, 이에 대해 여성이 반대를 하는 것은 소위 "칠거지악"의 하나로 인정되기도 했다.

즉, 간통을 죄로 간주하는 것 자체도 성차별적인 제도로 존속해 왔다는 뜻이다.

구한말 대한제국의 형법대전에도 간통한 유부녀와 상간자를 처벌하는 조항이 살아 있었고 (역시 남편의 간통은 문제 삼지 않았다.) 일제시대의 조선형사령에도 마찬가지의 법률이 존재했다.

간통은 사실 죄라고 보기에는 문제가 있는 조항이다. 기독교의 십계명에조차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라고 규정되어 있긴 하지만, 두 남녀가 자발적으로 성적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 사회가 개입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논란은 항상 있어 왔다.

세계적으로도 간통죄는 점차 폐지되는 추세이며, 대신 본 결혼 관계 이외에 또 하나의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는 자에게는 "중혼 금지" 조항을 들어 처벌하는 것으로 대치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즉, 간통은 개인적 도덕적 문제이지 사회적으로는 죄가 아닌 게 맞다. 대신 결혼 관계는 제대로 유지하라고 사회적으로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혼인을 이중으로 하지 말라는 것, 이는 바로 우리 사회가 채택하고 있는 일부일처제의 원칙을 사회적으로 강제하며 법적으로도 강제하겠다는 의미가 된다.

지속적으로 간통죄가 합헌이라고 판결을 내려오던 우리 사회도, 2015년에 이르러 더 이상 이를 유지할 명분이 없어지자 간통죄 자체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고 이제 더 이상 간통죄는 죄가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중혼은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이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그러나..

롯데 그룹의 신격호 회장쯤 되면 우리 사회의 룰 따위는 가볍게 어겨도 되나 보다.

신격호 회장은 원래의 본처는 사망했고, 두 번째 처가 일본에 살아있고 명백하게 혼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또 다른 여성과 혼인에 다름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이는 바로 "첩"이라는 개념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중혼 관계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룰에 의하면 금지된 일이며 처벌해야 하는 범죄행위이기도 하다.

그러나 신격호 회장 관련된 기사를 보도하는 언론들 중에 이 문제를 지적하는 언론사는 보기 힘들다. 세 번째 부인이라는 칭호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것이 중혼 금지의 사회에서 본처 이외의 여성은 "부인"이라는 칭호를 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장 오늘만 해도, "신격호 회장 셋째 부인 '미스롯데' 출신 서미경.." 뭐 이런 기사가 차고 넘친다.

왜 그럴까?

우리 사회 구성원들 다수는 아직도 귀족이나 부유층은 첩을 두어도 별 관계없다는 구한말 일제시대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방증 아닐까?

우리 사회는 아직도 근대화되지 못했다고 판단해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정말로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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