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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호 Mar 16. 2017

안희정 후보의 안식년 제안

안식년 안식월은 또 뭔가?

이재명 후보는 기본소득을 제안했다. 그에 관해 쓴 글이 있다.

https://brunch.co.kr/@murutukus/41

요약하자면, 이재명 후보가 제시한 기본소득 안은 사실 "기본소득"이라고 하기엔 너무 부족한 제안이고 이로 인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기본소득 개념을 대중에게 전파하는 효과가 있으니 큰 틀에서 나쁜 일은 아니라는 논지였다.

이번엔 안희정 후보 측에서 안식년/안식월 제도를 제안했다고 한다. 정운찬 후보도 "국민 휴식제"라는 걸 제안하기도 했는데 그쪽은.. 대단히 죄송하지만 나부터도 별 관심이 없다. 참고로 정운찬 후보는 기본소득제 역시 제안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가장 급진적인 후보이기도 하다.

안희정 후보의 "전국민 안식제"는 무슨 종교적인 안식일 같은 제도는 물론 아니다. 10년간 근무 시 1년의 유급 안식년을 가질 수 있는 안식년제와 1년 근무하면 1개월 유급 안식월을 가질 수 있는 안식월 제로 나뉜다.

사실 현재도 년간 15-25일 정도의 휴가가 있기 때문에 이걸 조금만 더 늘리면 1년에 한 달 쉬는 것은 그리 힘든 일은 아니다. 다만 그 한 달을 온전히 한 번에 몰아서 쉬는 것은 지금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이 있긴 하다. 사실 10년 일하고 1년 쉬는 안식년 제도도 교수 등의 직업군에서는 나름대로 퍼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소하고 위험한 정책이 아니기도 하다.

문제는 그게 유급이고 제도적으로 보장된다는 것. 안식월 제도도 사실 연가를 한 달 연속해서 써 버리면 그동안 내가 담당한 업무는 마비될 것이고 회사 업무에 지장이 생기는 회사가 대부분일 것이다.

왜 이런 조금은 생소하고 위험해 보이는 제도를 도입해야 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은 이 문제를 복지 차원에서 인식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잘 쉬면서 일해야 한다는 것. 충분히 쉬어야 생산성이 높아지고,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고 등등 이런 개념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안식년/안식월 제도를 먼저 도입한 나라들의 경우, 이런 제도를 도입하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일자리 부족이다.

기본적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고자 하는 것과 정확하게 같은 이유다. 노동시간을 줄여서 주 5일제 주 40시간 근무 시스템이 아니라 주 4일제 근무, 주 30시간 근무 같은 제도가 자꾸 등장하는 것은 직원들이 좀 더 많이 쉴 수 있게 해 주려는 인도주의적 제안은 결코 아니다.  세상은 그렇게 착하지 않다.

한 사람이 일하는 시간을 줄일수록 기업의 전체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필요한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게 된다. 즉, 한 사람의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늘리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 안식월제, 안식년제 모두 마찬가지다.

10년에 한 번씩 1년을 쉰다면, 그 쉬는 사람의 자리를 메꾸기 위해 한 사람이 더 필요하게 된다. 즉 10명이면 할 수 있던 일을 11명이 해야 된다는 뜻. 놀랍게도 10%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이다.

업무의 연속성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숙련도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담당자가 일 년씩이나 자리를 비워도 그 업무가 무난하게 이어질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지만, 그걸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하고 1년씩 쉬게 한다는 발상을 하게 되는 이유..

다른 거 하나도 없다. 오로지 일자리 부족 때문이다.

실제로 그만큼 일자리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이거 불경기 문제, 즉 경기가 나빠서 발생하는 일시적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기술이 발전하고 과학이 발전해서 인공지능이 사람의 판단력을 대신하고, 자동화 로봇이 공장 직공을 대신하는 시대, 드론이 택배를 하고 자율 주행차가 운전기사를 대체해 버리고, 자동 판매 시스템이 판매대에서 캐시어를 쫓아내고, ETCS(하이패스 시스템)가 톨게이트 직원을 대체하는 시대에 과거와 같이 기술이 발전해서 없어진 일자리를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가 대치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희망이다.

그 일자리 부족 문제로 인해 자본주의 시장 경제 시스템이 붕괴할 위기에 처했고, 그 위기에 대한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기본소득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안식년/안식월제는 기본소득에 비해 훨씬 약하고 미봉책에 불과한 시스템이다. 유럽의 몇 나라는 이미 도입한 지 오래인 제도다. 분명히 효과는 있다. 그러나.. 그 정도 대안으로 현재의 일자리 위기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판단이다.

뭐 그래도 좋다.

이제라도 안식년/안식월 제도라도 도입해 보자. 기왕이면 주 4일제 근무도 함께 도입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렇게 해서라도 일자리를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다면 (사실은 늘리는 게 아니라 나누는 것에 불과하지만) 나름대로 위기 상황의 도래를 조금이라도 지연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벌어가며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안 그러면 청년 실업 문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총체적인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붕괴라는 끔찍한 꼴을 피하기 힘들 테니 말이다.

너무 끔찍한 이야기를 너무 담담하게 해서 조금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2017년 현재 전 세계 자본주의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국내 정치인들(안희정 후보를 포함해서)은 지나치게 사태를 안일하게 보고 있는 것 같다.

걱정스럽다. 부디 이 걱정이 하늘이 무너질까 두려워하던 기나라 사람들의 걱정, 즉 기우이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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