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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티카카 Sep 15. 2021

피부로 알게 되는 나이

어쨌든, 수영 8

수모는 고무 재질과 천 재질로 된 두 종류가 있다. 머리가 꽉 죄어 답답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천으로 된 재질의 수모를 사야 한다. 머리가 조이지 않는 대신 천 수모는 가끔 수영을 하다가 훌렁 벗겨지기도 한다.  주로 여름에 워터파크에서 쓰면 편하다. 그리고 천으로 된 수모는 오래 쓰면 부분 부분 삭는다. 삭은 수모를 볼 때마다 수영장 물이 독하긴 독한 모양이네라고 생각한다.


고무로 된 수모를 쓸 때도 머리가 작은 사람들은 수모가 이마 위로 넘어가서 끌어내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물론 나처럼 머리가 큰 사람은 고무 수모가 작아서 머리가 쪼인다는 느낌을 갖고 수영한다). 고무로 된 수모도 사용 후에 잘 말리지 않으면, 안쪽에 곰팡이가 생긴다. 수모를 쓰고 수영 수업을 받고 나면 피부의 눌림을 통해 각자의 나이가 드러나기도 한다. 수업이 끝나고 씻고 난 후에 머리를 말리거나 화장을 할 때 알게 된다. 이마에 선명하게 수모 자국이 남아 있는 경우, 그 자국이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으면 나이가 들어서 피부의 탄력성이 떨어져서 그렇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젊은(?) 사람들은 눌린 그 자국들이 금방 사라진다. 그걸 알게 되면 슬퍼진다. 나이 먹은 슬픔.  


오랜 시간 동안 같은 수업에서 함께 수영을 하기에 저절로 얼굴을 익히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수업이 끝나고 샤워장에서 씻고 나와서 서로 옷을 입고 만나면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수영 복장과 아닌 경우의 차이가 컸다(수모와 수경을 장착한 얼굴과 그걸 빼고 화장한 얼굴의 차이는 매우 컸다). 수영장에서는 수영복으로 그 사람을 알아보는 경우도 많았다. 수영복이 바뀌면 모르는 사람인가 하는 갸우뚱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렇게 수영모자와 수경을 쓰면 다 비슷비슷해 보였고, 수영복이 아니면 구분하기 어려웠다.


수경도 처음에는 패킹 있는 수경을 썼다(패킹이 없는 수경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수영에 필요한 장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1인). 그다음에는 미러형 패킹 수경을 썼다. 수영장 안에서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는 게 부담스러웠다(그게 선생님이더라도). 계속 수영을 하다 보니 서로의 눈을 쳐다보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다이빙 스타트를 배우는 시점부터 입수할 때 고개를 제대로 숙이지 못해 수경이 계속 뒤집어졌다. 결국 노패킹 수경으로 바꾸었다. 노패킹 수경은 입수할 때 뒤집어지지 않아서 좋긴 한데, 고무 수모가 이마에 깊은 자국을 남기는 것처럼 노패킹 수경은 눈 주변의 피부가 눌려 자국이 오래갔다. 수영이 끝나면 안경 쓴 것처럼 ‘판다’가 되었다. 그리고 피부의 자국이 오랫동안 남아 잘 회복되지 않았다. 아침에 수영하면 오후나 늦은 저녁에 수모와 수경 자국이 사라졌다(선글라스를 쓰지 않으면 판다 자국 때문에 누군가를 만나기도 어려웠다). 피부의 나이를 속일 수가 없구나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ㅜㅜ


바쁘게 샤워를 시작하기 전에 수경에 습기를 제거하는 안티 포그액을 뿌려놓는다. 샤워가 끝날 때 즈음 물로 헹구고 수경을 쓴다. 그러면 수경에 습기가 덜 찬다. 맨 처음에 수영을 같이하는 친구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안티 포그액이 있는 줄도 몰랐을 거다(수영에 필요한 기초 장비에 대한 정보 없이 수영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안티 포그액을 인터넷이나 수영 매장에서 사기도 했지만, 집에서 식초와 주방세제를 이용해서 만들었다. 식초 7, 주방세제 3의 비율로 만들면 좋다고 해서 만들어보았는데, 집에서 만든 안티 포그액을 수경에 뿌리면 샤워장에 식초 냄새가 진동했다. 장난이 아니었다(식초를 너무 많이 넣으면 냄새만 강하고 습기는 더 찬다). 비율을 잘 맞춰야 한다.


안티 포그액을 수경에 뿌리면, 눈도 생각보다 맵지 않고 습기가 차지 않기에 매번 잊지 않고 수영 수업에 사용하려고 한다. 까먹고 뿌리지 않으면 수업 내내 습기 때문에 힘들다. 수경 안쪽에 습기가 자주 차거나 수경의 안경알이 벗겨지면 수경을 바꿔야 한다. 당연히 수경도 수명이 있다. 새 수경을 쓰고 수영할 때는 수영장 바닥까지 깨끗하게 잘 보이다가 수경을 오래 쓰면 나중에는 뿌옇게 보인다. 시야가 답답하면 수영을 하기가 쉽지 않다. 


어쨌든, 수영복과 수모와 수경은 관리가 중요하다. 오래 쓰려면. 하나를 줄곧 계속 쓰는 것보다 몇 개로 돌려가면서 쓰는 것이 더 오래 쓸 수 있는 거 같아서 그런 핑계로 수영복도 수모와 수경도 계속 산다. ^^;; 


수영 강습반마다 오랫동안 수영한 마스터즈 반 회원들은 수모를 단체로 맞추기도 한다. 반의 단합을 위해서인지, 똑같은 걸 쓰니까 편해서인지 모르지만, 수영장 밖에서 수영 수업을 살펴볼 때 모두 똑같은 수모를 쓰고 수영을 하면 누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다. 가끔 수영복을 단체로 맞추는 경우도 있다.(0.0) 수모를 단체로 맞춰야 같은 반 사람들끼리 소속감과 유대감도 생기고, 단체로 주문하면 싸게 살 수 있어서 종종 그렇게 하는 것 같다. 단체로 수모를 맞춘 반에 나중에 합류하게 되는 사람들은 난감할 때가 있다. 그 반에서 단체로 맞춘 수모를 따로 구할 수 없어서, 수영 수업할 때는 수영장 안에서 너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새로 합류한 사람들은 그 반에서 적응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수영이 완전 초보일 때는 어느 누구도 내게 뭐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뭐 말해서 나아질 것처럼 전혀 보이지 않는 초급 회원이었기에 말을 보태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몇 년 후 상급반을 지나 마스터즈반이 되었을 때, 자유 수영을 가서 수영을 하고 있으면, 쉬는 순간마다 내 자세에 대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며, 그렇게 말을 보태는 사람이 많았다. 자유 수영이기에 한 바퀴 돌고 쉬면서 친구들과 얘기하러 오는 회원도 있고, 자유 수영한답시고 와서는 누군가에게든 집적되는 남자들도 있었다. 


자유 수영에 와서 자기가 알아서 수영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놀람과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지만, 모르는 사람이라도 어설프게 수영을 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며 열심히 코치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도 어느 정도 수영이 된다고 생각했을 때, 친구네 동네 수영장에 자유 수영하러 가서는 친구의 친구에게 어설픈 코치를 남발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많이 부끄럽다. ㅜㅜ


반대로 수영을 잘하고 싶은 마음에 주변 사람들에게 일일이 코치를 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자유 수영 시간에 모르지만 수영을 조금 잘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하면 돼요? 저렇게 하면 돼요? 묻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누구나 친절하게 자신이 아는 만큼 수영을 알려준다. 근데 수영 자세에 대해 설명하기가 참 어렵다. 각자의 몸 구조가 다르고, 몸을 쓰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 몸이 어떻게 되는지조차 파악이 안 될 때도 있어서 이렇게도 팔을 저어보고 저렇게도 발을 차보고 더 나은 방향으로 하려는 것이 최선일 때가 있다. 그러고 보면 수영도 어느 면에서는 삶과 참 비슷하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아레나 안티 포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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