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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티카카 Oct 06. 2021

알고 보면 말 많은 동네

어쨌든, 수영 10


보통 수영 강습은 한 반에 10~15명으로 구성된다. 여름이면 날씨가 더워서인지, 겨울이면 실내에서 하는 운동이라 그런지 17명으로 정해진 정원이 꽉 찰 때도 있다. 한 레인에서 15명 이상이 수영하면 원활하게 수영장을 돌기가 어렵다. 사람이 많으니 선생님의 설명도 알아듣기 어렵고, 내가 수영할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도 많고, 순서도 앞쪽이 아니라 뒤쪽 자리에서 수영을 하려고 하면 어느새 1번이 돌아오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속도대로 수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돌아오는 1번을 보면 마음이 급해서 서두르게 되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강습하는 인원이 6명보다 적어도 수영하기가 어렵다. 회원 수가 적으니 여러 가지 영법을 따라 돌면서도 쉴 틈이 하나도 없다. 밀리는 법이 없으니 더더욱 쉴 수가 없다. 강습에 사람이 많아도 적어도 둘 다 힘들다. 사람이 적으면 사람이 많을 때보다 운동은 더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평소보다 과하게 수영한 덕분에 수영이 끝날 때에는 녹다운이 되기 쉽다. 그러면 회복하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수영 수업을 할 때 누가 1번을 하느냐에 따라 회원들이 많아도 순서가 밀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오히려 사람이 적어도 밀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_-) 1번으로 선 사람이 빠르면 그 뒤의 사람들도 빠른 속도에 맞게 조금씩 더 빠르게 돌게 돼서 밀리지 않고 운동할 수 있다. 1번이 속도를 앞에서 쭉 빼주지 않으면 뒷사람들까지 밀리는 경우도 많다. 1번으로 서는 이가 눈치도 있고, 선생님의 말도 잘 알아들어야 하고(어떤 동작으로 몇 바퀴를 돌아야 하는지 등등), 속도도 낼 수 있을 만큼 빠르고 분위기 파악도 잘해야 한다. 1번이 매우 중요하다(수영을 하는 사람들은 그 사실을 다 알고 있다). 아니면 1번도 욕을 많이 먹는다.


수영장에 간 지 3개월 만에 영법을 다 배우고, 그 이후부터는 교정의 시간이다. 영법대로 하나하나 다시 교정을 하다 보면 대체 지금까지 몇 년 동안 수영을 하면서 뭘 배운 걸까, 라는 생각이 든다. 각각의 영법 자세가 제대로 잡혀야 앞으로 더 쭉 나갈 수 있는데, 교정은 왜 이리 더디게 잘 고쳐지지도 않고, 어려운지 모르겠다. 처음 수영 배울 때 선생님도 많이 바뀌지 않고 하나하나 찬찬히 잘 배웠으면 참 좋았을 텐데….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 시간이 가끔 떠오른다. 그때 좀 더 열심히 잘 배울 걸…. 이제 와서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지만.


허리디스크 때문에 수영장을 다니기 시작했기에 수영장에서 누구를 만나 관계를 맺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동안 회사에서 받았던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로 수영을 시작하기 전에 오랫동안 오랜 시간 혼자 매일 걷고 또 걸었기 때문에. 그래서 수영도 혼자 하는 운동이라고만 생각했다. 


수영장에 가서야 알게 됐다. 수영은 결코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었다. 혼자 해야만 하는 운동이지만. 수영을 배우면서 어떤 동작을 어떻게 제대로 할지 코치(선생님의 코치 말고)를 받거나 필요한 장비에 대한 정보를 얻으면서, 수영장 돌아가는 상황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같이 수영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다. 수영 강습을 같이 받는 사람들끼리 선생님과 또는 회원들과 식사나 티타임도 종종 있었기에, 조금씩 관계가 생겼다. 


그만둔 회사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로 어느 누군가와도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꽁꽁 혼자 숨어 지내고 싶었다. 회사를 그만두면서 모든 관계들이 끊겼다고 느꼈고, 그럼에도 이어지는 관계 때문에 생각이 많았던 시기였다. 주로 회사 사람들과 일과 연결된 인간관계가 내 관계의 다였다고 생각해서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연락할 곳이 없었다.


알고 보면 수영 강습 회원 중에는 어린이의 학교 학부모도 있었고, 옆집에 사는 사람도 있었고, 동네에서 장사를 하거나 가계를 운영하는 사람도 있었고, 각각 다양했다. 그 당시에는 어떤 관계든지 맺고 싶지 않았다. 끊어진 관계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운동하며 지내는 것에 익숙했고, 이후의 삶이 뭔가 정확하게 정해지지 않는 상태에서 사람들에게 나를 설명하거나 드러내는 것도 어려웠다. 각자 다 자기의 필요로 운동하고 있는 건데, 같이 수영을 한다는 이유로 이러쿵저러쿵 사생활을 알아내려는, 이사한 소문과 이야기로 가십거리를 만드는 사람들이 피곤했다. 그래서 적당히, 아니 최소한으로만 관계를 유지했다. 수영 시작 전에 씻는 시간에 맞춰 도착해서 수영이 끝나자마자 엄청 빠른 속도로 씻고 휘리릭 집으로 돌아갔다. 같이 수영하는 사람들이 나의 빠른 샤워 속도에 놀랐다. 사실 머리를 말리거나 바디로션을 바르거나 화장을 따로 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어쩌면 누군가 다가오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바쁜 척 빨리 도망간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결이 맞는 사람들과 아주 가끔 차를 마시거나 식사할 때가 있었다. 매일 혹은 격일로 같은 시간에 수영을 몇 년 이상 같이하다 보면 어느새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금씩 나누게 되고 자신의 솔직한 마음도 보여주게 된다. 이미 벗은 몸을 보았기에 급속도로 더 친해지는 경우가 많다. 가장 친한 친구한테도 알몸을 보여주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이건 몸을 보여주고 다 까고 시작하는 거니까. 좀 더 내밀하고 좀 더 빨리 가까워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친했다가 서로 멀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어느새 엄청 친해졌다가 갑자기 쫙 멀어졌다가 그런 것이 인간관계임을 아는 나이임에도 남는 사람도 떠난 사람도 다 상처가 남는다. 모든 관계를 다 가질 수 없고, 모든 관계를 다 잘 살필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시절 인연으로 남는 사람들도 있고, 시절 인연이었음을 기억하며 사라지는 사람들도 있다. 


코로나 때문에 수영장을 닫으면서 같이 수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한다. 수영장이 오랫동안 닫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다 각자의 삶 속에서 바쁘게 살고 있다 보니 만나기가 쉽지 않다. 같은 동네임에도 시간을 맞춰 약속을 잡고 얼굴 보기가 힘들고, 이사 가거나 다른 운동으로 바꾼 사람들도 많다. 가끔 수영장에서 왁자지껄 시끄럽게 떠들면서 운동하던 그 시간들이 그립다. 수영장에서 말 좀 그만하라고 선생님께 혼나기도 하고, 같이 수영하는 이들에게 시끄럽다고 조용히 하라고 말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웃고 떠들었던 그 시절이, 마스크 없이 편하게 매일매일 수영했던 그 시간들이 지금은 그립다. 잔소리도, 선생님의 코치도, 발차기 소리도, 물을 쉭쉭 가를 때 내 귀에만 들리던 그 수영하는 소리도. 다 그립다. 


코로나가 끝나고(언제 끝날지는 정말 모르겠다) 수영장에 가면 사람들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궁금하다. 수영을 그만둔 사람도 있을 거고, 코로나로 운동을 할 수 없어 찌게 된 살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고, 다른 좋은 운동을 알게 되었다며 같이 하자고 권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다 같이 맨 첫날 수영장에 온 초보 회원처럼 처음부터 수영을 다시 배워야 하는 게 아닐까? 강사 선생님들도 다 바뀌지 않았을까? 


물속이, 수영장이 낯설 것 같다. 그럼에도 익숙하고도 낯선 수영장에서 수영을 맘껏 하고 싶다. 물을 가르면서 그 소리를 들으면서 수영하고 싶다. 

   

나뭇잎처럼 각기 다른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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