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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티카카 Dec 22. 2021

수영에도 거리가 필요하다

어쨌든, 수영 21


수영을 4년 정도 하니, 수영 친구들이 동네 친구가 되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회사 밖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한정적이었다.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도, 프리랜서로 일하는 친구들도, 육아를 하는 선후배들도 다 바빴다. 아이를 봐야 했기 때문에 아침 브런치나 혹은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짧게 만날 수밖에 없었다. 평일 저녁이나 밤, 휴일에는 아이를 가족에게 부탁해서 맡겨야 했기에, 누군가와 시간을 맞춰 만나기가 어려웠고, 차츰차츰 서로의 얼굴을 보기도 안부를 묻기도 더 힘들어졌다. 각자 자신의 삶을 꾸려가기에도 바쁜 날들이었으니까. 누구를 만나기 위한 약속 외출은 더더욱 어려웠다.

 

마음을 나누던 친한 친구들이 사는 곳이 다 제각각이었고, 어떻게든 시간을 맞춰 보는 날에도 만남은 짧고 이별은 길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스스로도 사람들에게 말할 것이 없는 상태였다. 뭔가를 하고 있다거나 무엇을 고민한다던가 내 삶을 어떻게 꾸려가야 하는지를 생각할 수 없었다. 아니, 생각하기 싫었다. 눈에 보이거나 확실한 뭔가가 없는 시기였기에 어떤 누구와도 마음 편하게 만날 수 없었다. 그러면서 서서히 멀어졌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붙잡으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점점 놓는 경우가 더 많았다. 모든 것에 지친 마음이 복구가 안 되었다. 상대방에게 주는 마음이 잘 전달되지 않았고, 상대의 마음도 내게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때는 스스로 마음의 문을 꽉 닫고는 조금도 열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문틈으로 빛과 바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문 테두리를 테이프를 붙여 막아버린 것처럼, 그땐 모든 것을 꽉 닫아버렸다.

 

매일 수영하고, 그러다 보니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이 생겼다. 동네를 돌아다니거나 산책을 가거나 도서관에 가거나 장을 보러 시장이나 마트에 갈 때마다 얼굴을 보게 되니까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건네고,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고, 같이 커피를 마시거나 밥을 먹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사람이 그리웠지만, 나를 보여주고 상처 받는 것도 두려웠기에 다가오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혼자서 조금씩 방어막을 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탐색하고 포기하고 다시 고민하고 반복하는 시간이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미래는 알 수 없는 상태다.)


수영을 같이하는 친구들 때문에 매일 수영을 갈 때도 있다. 말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입 꾹 다물고 수영할 때도 있고, 수영 강습 선생님과 수영하는 회원들과 아주 가끔 다 같이 식사를 할 때도 있다. 스승의 날 기념 혹은 연말이라, 몇 개월에 한 번씩 친목 도모 겸 만나서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곤 했다. 동네니까 누군가의 집에 가서 잠시 티타임을 갖는 날도 있었다. 같은 동네라 짬을 내서 잠시 잠깐 거리에서 만나서 먹을 것을 나눠주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필요한 물품을 건네줄 때도 있다. 수영 친구들은 누구나 고민이 있고, 누구나 하고픈 말이 있고, 수영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예전에 JTBC 여행 프로그램 <뭉쳐야 뜬다>를 보던 중에, 수영 친구들과 패키지여행을 온 팀이 있었다. 방송을 보면서는 수영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오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해가 간다. 수영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만났으니까. 매일 벗은 몸을 보며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어울리는 수영복을 봐주는 사이는 흔치 않다. 먹을 것이 있으면 나눠주고, 할인하는 상품이 있으면 추천해주고, 수영 용품 등을 공동 구매하는 사람들. 알고 보면 따뜻한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항상 말조심은 해야 한다. 소문이 순식간에 퍼지는 곳이라, 어떤 이야기라도 가볍게 여기며 가십거리라고 함부로 말을 하면 안 된다. 조심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면 안 되는데도, 가볍게 건넨 한 마디 두 마디가 부풀어져서 금방 소문이 쫙 퍼진다. 자신의 이야기라면 그렇지 않을 거면서 남의 이야기라고 함부로 말할 때도 많다. 소문들이 모여 모여 거대한 사실이라고 알려질 때도 있다. 소문의 진원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삶이 궁금하고 이러쿵저러쿵 개입하기도 한다.

 

어쩌면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는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듣고 싶은 이야기는 적다. 고립된 상태일지도... 오랫동안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생활에 지치고, 새로운 활력소도 찾기 어려우니까. 수영하는 사람들은 소문과 만들어진 이야기를 통해 돌고 돌고 도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농담 삼아 수다를 떠는 건지도 모른다. 수영장 멤버들끼리의 문화가 생각보다 많다. 수영을 같이 시작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누구와는 친하고 누구 하고는 싸웠고 누구는 미워하고 누구는 질투하고 누군가와는 멀어지기도 한다. 수영장을 오래 다니다 보니 그런 관계들이 보이고 어느새 나도 그 안에서 지지고 볶고 지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관계든 적당한 선과 거리가 필요한 법인데, 사람들과의 거리 조절은 쉽지 않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부분들을 거리낌 없이 말해서 상처를 주고, 멀어지기도 하고, 용서하고 다시 가까워지기도 하며 또다시 반복한다. 수영장뿐 아니라 어떤 조직이나 관계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의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하고, 자신의 행동을 조심해야 하며, 주변 사람을 배려하고 이해해야 하는데, 자신이 가장 최우선이며 모두에게 배려받고 존중받고 이해받고 사랑받기를 원한다. ‘내가 최고, 내가 젤 중요하지’...


수영은 혼자 하지만 같이하는 운동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주말에 자유 수영을 가면 마스터즈반의 단합된 모습이 눈에 보일 때가 있다. 가끔 부럽기도 하다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각자 수영을 하는 이유나 목적은 다를 텐데, 수영 대회에 나가자고 하면 부담돼서 싫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회원들 간의 단합대회를 위해 대회도 나가고 친목회도 하자고 하면 바빠서 시간 내기가 힘들다고 답하면 그 말에 서운해하거나 삐지거나 또 상처를 받기도 하고.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시간은 다들 다르다. 빨리 친해지는 사람도 있고, 천천히 친해지는 사람도 있다. 물론 갑자기 멀어지거나 떠나는 사람도 있다. 수영을 배우면서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수영을 그만두면 수영장과 얽힌 사람들과의 관계는 끝나는 걸까? 남는 관계도 있을까?

 

사람들은 어느새 가깝거나 멀다. 새로운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욱 그렇다. '오픈 마인드'가 되기보다는 닫힌 마음이 더 많으니까. 나를 보여주기보다는 나를 감추고 숨기기를 원하니까 말이다.    
     

적당한 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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