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소개한 이는 나의 직장 동료다. 혁신학교를 만드는 꿈을 가진 통합학급 담임선생님이다. 겨울 방학 때 솥뚜껑 오겹살에 소주로 낮술을 마시다 좋은 사람 있는데 만나볼 거냐 해서 ok 했다. 그와 남편은 역사 강좌에서 만나 돼지띠 모임을 같이 했다. 둘이서는 쑥스러우니까 소개한 친구와, 야자 튼 여자친구 네 명이서 만났다. 동인천 삼치구이집. “얼굴이 검네” 첫인상이다. 그는 긴 정장 코트와 행사용 양복을 입었다. 평상시는 등산복 차림이다. 2차로 우리 둘만 자유공원의 찻집에 올라가 차를 마셨다. 야경 속 불빛을 누군가 야근 중이라고 하던 말이 인상 깊다. “연락드릴게요” 악수를 하고 헤어진 그날 밤 나는 쌍가락지와 금반지를 받는 꿈을 꾸었다.
두 번째 만남은 남산에서다. 내가 가자고 했다. 55년 만의 한파가 몰아친 날, 광역버스 회사는 파업 중이다.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길에서 떨었다. 모자를 쓰고, 주머니마다 핫팩을 넣었다. 명동에서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먹었다. 그가 중불로 줄이고 젓가락으로 사리를 건져 담고, 국자로 국물을 개인접시에 덜어준다. "요리를 자주 하시나 봐요?" "뒤풀이에서 안주 먹다 보니요" 했다. 왜 그때 나는 남산을 약속 장소로 잡았을까? 마흔 넘어까지 오면서 얼마나 많은 소개 자리에 갔을까? 이런 만남에 지쳐서 기대가 적었던 것 같다. 약속시간을 식사와 식사 중간 어중간하게 정하면 차만 한 잔 하고 일어설 수 있다. 만남을 계기로 가고 싶던 공원 한 바퀴 돌면 산뜻했다. 약속 장소를 올림픽공원, 서울숲, 창덕궁, 과천 서울대공원, 현대미술관 식으로 잡곤 했다. 나는 공원과 걷기를 좋아한다. 남산도 그래서였을 거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그때 서울역 근처에서 근무하면서 출퇴근 길에 남산 샛길을 탐사하고 있었다. 한파 때문에 남산은 둘 뿐이다. 10가지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했다. 국립극장 거의 다와서 평지길이 나오자 내가 말했다. "저기까지만 달려요." 나는 달리기를 좋아해서 마라톤 10km와 하프 코스를 달린다. 그가 따라 달렸다. 약수터에서 그가 바가지에 퍼준 약수는 ‘음용 부적합’ 이란다. 내가 따라 마셨다. 유쾌했다. 계속 만나보기로 했다. 나이만 많았던 우리는 연애를 책으로 배운 사람들이라 데이트를 season 1, season2, season3로 나눴다. 계획은 내가 짰다. 실행은 그가 했다. 한 시즌당 3달 정도가 걸렸다. season 1의 마무리는 달밤에 남산 야생화공원 소나무 아래에서 술 마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길치에다 약속시간에 늦는 습관이 내게 있다. 처음으로 인사드리러 가는 날도 내가 늦었다. 그는 얼굴에서 목까지 붉어져 있다. 말을 시켜도 앞만 보면서 운전한다. 나는 안절부절이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 여자가 안 오는 거 아닌가?” 싶었단다. 마침 남산 순환도로를 넘어간다. 소월길 단풍이 절정이다. 풍경에 감탄하다가 우린 문득 화해했다. “이 근처에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신혼집을 정말로 근처에 얻었다. 한 번 이사를 해서 지금은 5분이면 남산공원에 접근할 수 있다.
미래의 풍광 10개 중에서 살고 싶은 곳을 적어본 적이 있다. 집, 가족, 직장 등 여러 분야를 망라한 '꿈'의 목록이다. 미래에의 회고 방식이다. 미래의 일을 마치 이미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상상해본다. 서로 의논하지 않고 '살고 싶은 미래의 풍경 10가지'를 적어와서 교환했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이 집을 장만하려고 얼마나 찾고 찾았던가? 주위에 산이 있어 등산하며 산책할 수 있는 집, 마당이 있어 텃밭을 꾸리고, 옥상에서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거나 명상할 수 있는 집”
나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살고 싶어하던 집에 살고 있다. 따듯하고 볕이 잘 든다. 군더더기가 없고, 물건들이 제자리에 정돈되어 있고, 깨끗하고 쾌적하다. 텃밭과 정원이 있다. 평생 나를 동행한 엄마 채마밭의 정구지, 동북아 3성에서 보이는 꽃나무와 유실수가 있다. 나의 집은 이웃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소리가 있는 인가에 위치한다. 주변에는 갈만한 도서관과 달릴만한 로드, 산책로가 있다. 밥이 식지 않을 거리에 지인이 살고 있어 김치전을 부쳐놓고, 수제비를 떠놓고 부른다. 이 집에는 귀소본능을 자극하는 음식과 문화, 사람의 정이 있다.” 장남인 그는 어머니, 동생네 가족과 모여 살고 싶어 한다. 같은 집이든 같은 건물이든. 이건 문서 밖의 진심이다. 집에 대해 갖는 로망이 비슷해 반가왔다.
우리의 그림대로라면 북한산 밑의 단독주택에 살면 제일 좋겠지만 내 직장은 인천이다. 그의 일은 서울 전역을 왔다갔다 한다. 게다가 텃밭과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이라니 언감생심이다. 남산은 많은 걸 충족시킬 수 있다. 화분으로 당장 가꿀 수 있다. 게다가 고개 너머에는 시댁이 있다. 정들면 이웃이 지인되지 않겠나?
자신이 사는 도시의 공원 중에서 ‘부부 공원’을 하나 고르고, ‘부부 나무’를 정해보라는 조언을 읽었다. 구본형 칼럼에서다. 우린 당연히 ‘남산공원’을 선택했다. 시키는 대로 ‘우리 나무’를 한 그루 정했다. 연리지된 나무는 100살쯤 되었고, 비슬나무다. “당신과 내가 100년 전에 태어났으면 어떤 삶을 살았을 것 같아요?” 질문을 하면서 나무 아래에서 놀았다. 그는 독립군 따라다니며 심부름해주는 작고 다부진 평서방, 나는 삼거리 국밥집에서 커다란 가마솥에 국밥을 끓여서 이 나라 저 나라 사람들에게 듬뿍 퍼주는 개똥이 어멈이었을 말했다. 산책을 갈 때마다, 집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그 나무 앞에 찾아가 이런저런 비나리나 궁시렁을 바치곤 한다. 우리는 결혼기념일마다 그 나무 아래에서 사진을 한 장씩 찍는다. 가족의 역사와 변화를 묵묵히 지켜보아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