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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로병사 피할 수 없는 사바이니

by 무량화

평생 꽃길만 걷다 가는 이도 있을까.

일생을 고통 바다에서 허우적이다 가는 이도 있을까.

단산 거친 돌팍길 오르면서 자꾸만 상일이 오빠가 떠올랐다.

직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 날짜를 받았다는 오빠는 목소리부터 기운이 빠져 있었다.


나보다 두 살 많은 나이라 칠십대도 막바지에 이르른 오빠다.

젊어서 보고 반세기 넘도록 만난적 없으니 노인네로 변모한 모습이 잘 상상되진 않는다.

몇 십 년 만에 언니를 통해 전화가 연결되면서 목소리만 들었을 뿐이다.


서울 오거든 꼭 만나자는 통화를 나눴으나 그간 코비드로 여의치 않았다.

나이 든 지금도 젊어서부터 하던 일을 계속하며 바쁘게 지낸다길래 건강하니 일도 하고 노년복은 타고났나 보다고 했다.

초년 중년 복은 지지리도 없이 살았다는 걸 대충은 알기에 노년복이나마 있으니 그만으로도 감사했다.

현역으로 활동을 해서인지 목소리는 활기찼고 음성만으로는 노인네 같지 않았다.

서울 언니처럼 나도 퉁실하고 여전히 키가 크냐고 오빠가 물었다.

어릴 적부터 작은 키에 속했던지라 체구 왜소한 편인데 오빠 기억에는 큰 키로 여겨졌던 건 아마도....

순간 마음이 짠해졌다.

등교하는 우리가 거인처럼 느껴질 정도로 오빠는 그때 뒷전에서 교복 입고 학교가는 우리가 얼마나 부러웠을까.



그는 작은 이모의 아들인 이종 오빠로 육이오 난리 통에 아버지를 잃었다.


처음 봤을 때 키가 휘청거릴 정도로 크고 깡마른 소년이었다.

국민학교 겨우 마치고 장학생으로 들어간 중학 과정도 결국은 중도작폐하고 입 하나 덜려고 우리 집으로 보내져 이모부 목재소 일을 거들며 얹혀살았다.

목재소 거칠고 궂은일 돕던 오빠는 그래도 총기가 남달라 아버지의 신임을 받으며 한 가족으로 잘 지냈다.

어린 나이부터 가난 때문에 집을 떠나야 했던 소년이지만 이모집에서 그런대로 푸근함을 느껴서인지 성정 바른 청년이 된 오빠.


아버지가 마련해준 우체국 적금통장 하나 들고 상경해 기술학교에서 건축을 배웠다고 한다.

월남전 후반 즈음 참전을 해 돈을 좀 모은 오빠는 결혼을 하여 가정 이루고 잘 산다는 소식을 들었다.

삼십 대 후반, 아내와 불화가 심해 이혼한 뒤 자녀들과도 만나지 못하고 외롭게 홀아비로 지낸다는 풍문이 들렸다.

이제라도 좀 평탄하게 굴곡 없이 살지 왜 가정파탄에 이르렀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행복하게 잘 살면 좋으련만 불운이 계속되자 인생을 아프게 살아야 하는 오빠가 가여웠다.

그나마 하는 일이 튼실해 사는 걱정 안 하는 것만도 다행이고 두 자녀 성년이 돼 결혼하면서부터 내왕을 한다니 그도 반가웠다.



자주 전화를 걸던 오빠가 한동안 연락 뜸하던 차 언니로부터 오빠 소식을 전해 듣고는 곧바로 전화를 했다.

그러나 한참 신호음이 울려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여러 차례 전화를 하다가 결국은 문자 길게 남겼더니 이튿날 미안하다며 전화가 왔다.

건강검진을 받다가 우연히 종양이 발견돼 정밀검사를 해보니 암이었다며 수술 안 받고 그냥 살다 가겠노라고 했다.

완치 가능한 초기인데 바보 같은 소리 말라며 퉁박을 주자, 수술 이후 당분간 장루 백을 차야 한다는데 심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겉으로 표가 나는 것도 아니고 생활하는데 크게 지장받지 않는데 평생 착용하는 것도 아니라면 무슨 문제가 되냐고 설득했다.


노년들어 겨우 맘 편히 살만하니까 안정된 삶 송두리채 뒤흔든 운명의 신이 야속할 법도 하긴 했다.


그래서 어깃장 부리며 신에게 그렇다면 생 전체를 반납해 버리겠다고 포기선언을 하고는 은둔자가 된 오빠.

산전수전 다 겪고 전쟁터까지 다녀온 사람이 겁날게 무어며 힘든 방사선 치료 안 받는 것만도 어디냐고 힘껏 성원을 보탰다.

이제까진 내 몸이었지만 병원에 가면 무조건 의료진에게 전적으로 몸을 맡기고 낫는다는 신념 갖고 마음 추스르라고도 당부했다.

암과의 싸움에서는 먼저 당사자의 투병의지가 중요하니 건강 되찾기 위한 노력 곱으로 하면서 불안감 대신 희망을 품으라고 거듭 일렀다.


그후 통화에선 자녀들이 수소문해 예약한 고대 병원에서 5월 초 수술받는다며 괜찮다 흰소리쳤지만 이미 한풀 꺾인 음성이었다.

자꾸만 코를 훌쩍거리는 게 부정- 분노- 타협- 우울에서 수용 단계 가까이 와있는 거 같았다.

초기에 발견됐으니 행운이라고, 항암치료 등 보조요법도 사용치 않을 거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일부러 가볍게 말했다.

다행 정도가 아니라 외려 감사할 일이라 하자 그렇다며 맞장구를 쳐 잠깐 웃었다.

그럼에도 직장암 초기라는 진단을 받는 순간 불치병 선고를 받은 듯 아연해지며 죽음, 마지막, 절망이란 감정에 휩싸였다는 오빠.

아무리 흔한 병이라지만 암은 여전히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나 보다.



명심보감에, 위와 비교하면 족하지 못하나 아래에 비교하면 남음이 있다고 하였다.

우리는 종종 타인이 받는 복된 면과 자신을 비교해 의기소침에 빠지거나 팔자를 비관하며 운명에 낙담을 한다.

왜 나만 이런 불운이 닥치나, 분개하며 억울해 하고 하늘에 삿대질마저 불사.


모두가 너나없이 고해에서 일엽편주 노 저어나가야 하는 인생사다.


왜 나만 겪어야 하는 고통이냐고 종주먹 들이댄다면 축복의 순간 순간에 감사했던가를 먼저 생각해 볼 일.


물론 도저히 용납키 힘든 기막힌 일이 느닷없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렇게 상식이나 이해 수준에서 풀 수없는 일을 당하면 차라리 전생의 업으로 돌리고 수용하는 편이 스스로를 위해서도 낫다.




살면서 우리는 종종 남과 견줘 비교할 때 의기소침에 빠지게 되고 내게 주어진 것들과 지닌 것에 만족하고 감사할 줄 모르기에 불행감을 느낀다.

더러는 나에게 과한 터무니없는 목표를 세운다거나 도저히 소유할 수 없는 욕망들로 부터 벗어나지 못해 괴로워하게도 된다.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 것은 이 세상 다른 어떤 것도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마음작용에 따라 달라지니까.

매사 좋은데 비교하면 샐리의 법칙이 적용되고 안 좋은데 비교하면 머피의 법칙이 따라붙는 인생사다.

생로병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이기도 하지만 그밖에도 경제적 어려움과 인간적 갈등관계로 힘겨워하는 사람 숱한 세상이다.

그렇다고 명예와 부귀영화 누리며 질병 없이 오래 살면서 몸도 마음도 편안한 삶을 산다고 행복지수 마냥 높아질까.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금고기 동화처럼 행복의 기준치는 갈수록 자꾸만 올라가 끝도 한정도 없다.

또한 운명의 신은 모두에게 공평치도 않으며 그리 자비롭지도 않다지 않는가.

신은 다만 이쪽 저쪽 양편 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환한 꽃길과 고통 바다 고르게 장치해두었다는 걸 잊지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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