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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금바리 타령

by 무량화

지난 오월 캘리포니아에 사는 트레킹 도반 세 명이 서귀포를 방문했었다.

결혼 오십 년 차로 금혼식을 맞은 부부 한 팀과 젊은 친구가 동행을 했다.

그 한 달 전부터 단톡방이 매일 분다웠다.

호텔 예약이며 음식과 일정에 따른 스케줄을 짜느라 연락을 계속 주고받았다.

나름 전망 좋은 숙소를 찾으려 서귀포 시내 발품 팔며 직접 현장답사를 다녔고 식당 오픈 시간도 미리 점검을 해뒀다.

여정은 사월에 딸내미가 다녀가며 요소요소 들렀던 코스라면 적당할 거 같아 그에 준했다.

50년 전 석사과정을 밟고자 결혼과 동시에 함께 도미했던 신랑은 중도에 사업가로 변신했고 신부는 약국에서 근무하다 재작년 은퇴해 노년을 즐기며 살고 있는 노부부 팀.

신혼여행을 제주로 왔었다는 그들은 그 옛날 정방폭포 앞에서 찍은 사진까지 챙겨 온다고 했다.

다시 폭포 앞 바위에 앉아 그때 그 포즈로 사진을 찍을 거라면서.

한 가지 더 주문이 있었다.

한국 방문 중에 제주도까지 다녀온다는 말을 들은 교회 장로가 제주에 가면 무조건 다금바리를 맛보고 와야 한다더라는 것.

거 무척 비싸다는 소문이던데요, 했으나 아무리 가격이 쎄도 꼭 먹어봐야겠다고 별렀다.

그렇게 다금바리 타령은 시작되었다.




우선 다금바리 전문 횟집 가격과 올레시장 회센터에서 다금바리 시세를 알아봤다.

검색된 식당에서는 4인 기준 한상에 삼십 팔만원, 술값은 따로 계산한댔다.

오피스텔 사장네 단골인 부근 회센터에 문의하니 여성 셋에 남자 한 명이면 1.5킬로면 된다고 했다.

킬로 당 가격은 십오만 원인데 이십 이만 원에 해주겠다기에, 앞뒤 견줘보질 않고 선뜻 예약금을 걸고 왔다.

단순계산으로 그 정도 조건이면 괜찮았고 다금바리도 충분히 믿을만하다 싶었다.

오후 퇴근길에 아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연스럽게 낮에 있었던 일을 얘기했더니 보통은 잘하셨어요, 하는데 차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목소리를 깔면 어떤 점인가가 마뜩잖아 내심 가윗표를 던졌다는 신호다.

단출한 살림에 옹색하게 집에서 어찌 상을 벌이려구요?회는 분위기로 먹는 겁니다. 어디까지나 기분으로 즐기는 거구요.

이미 선금을 지불했는데... 우물쭈물 말꼬리를 흐렸다.

이번엔 회 뜰 생각 마시고요. 맡겨 놓은 건 나중에 스스럼없는 옆집 선생님하고 드세요. 일단 전문횟집에 예약해서 접대 하시고요. 먼 데서 오는 분들이니 쿨하게 쏘세요. 더구나 금혼식이라면서요.

순간 등이 후끈해졌다.

맞다! 니 말이 맞네! 니가 말해주지 않았으면 정말 두고두고 무참할 뻔했네. 고맙다, 고마워.

전에는 윗대 어른들에게 길을 물으며 지내왔다면 이제는 아들과 딸내미 조언을 귀담아듣고 참고하게 된다.

젊어 두뇌가 팽팽 잘 돌아가는 아들 덕에 요령부득으로 콕 막힌 데다 머리 회전 속도가 전만 못해진 노인네 한계를 확인했고 스스로 인정.

서귀포 시내 활어횟집에다 4인 상차림에 삼십 오만 원으로 다시 예약을 해뒀다.

아무튼 주책에 속하는 망발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으니 다행.

이른 아침 첫 비행기로 일행이 제주에 도착했다.

시장할 거 같아 우선 제주 시내에서 가볍게 해장국 어떠냐고 하니 반기는 표정이 아니었다.

작년 봄에 왔다 간 뉴저지 친구들 또한 해장국이나 국밥 종류를 안 먹었다.

그녀들은 무슬림도 아니면서 돼지고기는 절대 사양, 해물이나 생선도 꺼리고 국수도 마다했기에 한정식과 등심구이와 파스타만 먹고 갔다.

하긴 나도 제주식 물회나 각재기국이며 몸국은 여전히 먹어내기가 어렵다.

음식은 맛뿐 아니라 생소한 이름 혹은 시각적 느낌이나 입안에서의 독특한 질감과 향 등으로 먹어보기 전부터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의외로 미국에서 오래 산 친구들은 돈육을 기피하는 등 제주 음식 전반이 입에 안 맞는 편이라 먹잘 것이 별로 없어 신경 쓰였다.

그래도 이번 친구들은 신선한 회를 좋아하고 생선 요리를 즐긴다니 반가웠다.

렌터카를 타고 동쪽 방향으로 돌다가 저번에 딸내미와 식사했던 김녕 해녀촌에 들러 쟁반회국수를 시켰다.

멍게회와 고등어구이를 한라산 소주와 곁들여 추가 주문했다.

늦은 아침이라 특히 성게미역국을 맛있어하며 다들 깨끗하게 그릇을 비워냈다.

첫날 여정은 월정해변, 행원바다를 거쳐 비자림 한바퀴 산책한 다음 성산일출봉 올랐다가 김영갑 갤러리 둘러보고 표선 민속촌에 이르렀는데 그새 어스름이 깃들었다.

어물대다가는 저녁식사 시간도 놓칠 판이라 서귀포를 향해 어둠 속을 치달렸다.

여덟 시 무렵 근근 식당 마감전에 집 근처 생선구이집에서 저녁을 먹고 친구들을 호텔에 바래다줬다.

시차도 있는데 진종일 차를 타고 이리저리 돌아다녔으니 고단할 터라 푹 쉬도록 늦은 아점을 먹기로 했다.

이날은 서귀포를 중심으로 인근만 구경할 예정이라 시간여유까지 느긋해졌다.

느지막하게 만나 가까운 쇠소깍으로 향했다.

쇠소깍에서 강바람 쐰 다음 해물탕 소문난 소금막식당에서 전복뚝배기에 해물모둠탕으로 브런치 겸해서 식사를 마쳤다.

오는 길에 보목포구 들렀다가 전망 근사한 허니문 하우스에서 차를 마시고는 소정방폭포와 소라의 성 훑어본 다음 왈종미술관에선 시간 꽤나 투자를 했다.

드디어 기대해 마지않정방폭포 차례.

두 줄기 힘차게 내리꽂히는 하얀 폭포의 나신이 저만치 드러났다.

폭포로 진입하는 층계부터 오십 년 전과는 너무도 달라졌다며 예전의 신랑 각시는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폭포 주변만 달라진 게 아니라 두 양반도 그때와 달리 엄청 변했다구요, 하고는 마주 보면서 우린 싱겁게 웃었다.

그간 비가 잦더니 수량 풍부해진 천지연 폭포는 우람차게 내리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천천히 걸어서 새연교 올랐다가 내려와 절벽 아래 서귀포층 살펴보고는 해녀의 집으로 들어갔다.

도반이 원 없이 먹고 가겠다는 제주산 싱싱한 멍게회와 전복 해삼을 안주 삼아 한라산 술잔을 거듭 비우며 짓던 흐뭇하니 거나한 미소라니.

사실 그 아내나 나나 그런 회는 한 점도 집어 들지 못하는 약한 비위의 소유자인데다 소주는 입가에도 못 댔다.

해녀의 집에서 나와 향한 곳은 외돌개.

바위 하나 불쑥 바다에 솟아있는 외돌개나 쇠소깍이 무에 특별하랴.

금혼식 부부의 취향은 유럽으로 자주 미술관이며 명작의 고향 찾아 순례여행을 다니는가 하면 히말라야 트레킹에 남미 파타고니아 빙하와 오슬로로 오로라를 보러 다니는 사람들.

그래서 칠십리 시공원이고 걸매생태공원 다 생략하고 이중섭 미술관으로 직행해 시간을 보냈다.

거기서 마지막 만찬을 즐길 다금바리 횟집이 아주 가까우므로.

서서히 날이 저물자 서귀포 앞바다 수평선에 일직선으로 어선 집어등이 점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구리공원 색색의 조명등도 곱게 떠올랐다.

서귀포 칠십리 음식특화거리 불빛이 화려하게 반짝거렸다.

보물섬 횟집에 도착하자 예약된 이층 창가 맞춤 자리로 우리를 안내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야경도 전망도 A+급인 위치라 장소와 음식 선정 거듭 흡족스러워 내심 아들에게 고마웠다.

기본 상차림만도 대단했다.

바삭하게 튀김옷을 입은 대하, 굵은 소금 치고 놋노릇하게 구운 자리돔, 전복패 안에서 움쭐거리는 전복, 꼬물대며 접시에서 탈출하려는 낙지, 껍질에 달라붙어 옹송거리는 굴, 비단결 같은 은빛 갈치회, 그 외 이름 모를 여러 생선회와 젓갈들.

갖가지 해산물을 포함한 스끼다시가 삼사십 접시 가량 진열돼 있으니 눈부터 왕창 호사를 한 셈이다.

향긋한 전복죽으로 부드러이 목을 열어준 다음 거품 오르는 생맥주 마주 들고

Cheers! 캬아~~~♡

그 와중에 등장한 주빈 다금바리, 한방에 분위기를 단연 압도해 버렸다.

쟁반만 한 접시에 꽃치레하고 누운 단정한 미태가 예사롭지 않아 시선 집중.

어찌 젓가락으로 저 가지런한 질서를 감히 허물어내랴 싶었다.

아주 오래전 중국 상하이 식당에서 잉어같이 생긴 두툼한 생선이 몸통은 익혀졌는데 아가미는 살아있어 질겁했던 적이 있다.

그때 생각이 났지만 쥔장이 이제 드시라며 아가미 뻐끔대던 머리를 슬그머니 치워주자 마침내 다금바리 맛을 보았다는.....

회 맛이 달큰하며 살살 녹더라는......

시원한 지리탕까지, 풀코스 서비스는 고객 만족 별 다섯 개 감이었다.

친구들은 날씨 복도 많아 여기 머무는 동안 내내 하늘도 청명했다.

행사날이나 잔치때나 여행시기 역시 가장 큰 부조는 날씨 부조, 이 역시 감사했다.

이튿날은 일찌감치 중문 색달해변과 대포동 주상절리 돌아본 뒤 안덕계곡과 용머리해안, 사계해변 찍고 서쪽바다 감돌아가며 신창, 월령, 금능, 한림, 애월 거쳐 밤비행기 시각 맞춰 공항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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