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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28. 2024

까미유 끌로델의 싸인

단테의 '신곡'에서 금지된 사랑으로 형벌받는 파올라와 프란체스카의 키스


영국의 하얀 절벽을 뒤로하고 도버를 건너 프랑스 땅 칼레에 닿은 순간, 안개비 속에 서있는 로댕을 보았소. 수많은 조각작품으로 그 이름 찬연히 살아 있는 오귀스트 로댕.



​영국의 공격을 당한 항만도시 칼레의 위대한 시민 여섯 사람. 그들이 교수형을 각오한 채 앞에 나서서 시민 전체를 구하고 희생된 역사 속의 사실을 기리고자 제작되었다는 <칼레의 시민>상. 목에 새끼줄을 걸고 죽음 앞에 결연히 선 사람이 있는가 하면 머리를 감싸 쥔 채 괴로워하는 사람, 슬픔에 젖어 어깨를 늘어뜨린 모습 등 제각각인 그 조각 작품도 뚜렷이 그려졌소.



그와 동시에 까미유 끄로델, 그대가 생각나더이다. 로댕의 제자로 작품 모델로 또 제작 조수이자 연인이었던 그대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파리를 향해 달리는 동안 잔잔한 전원 풍경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소. ​국토의 대부분이 낮은 평원으로 구성돼 땅은 비옥하고 숲이 짙푸른 프랑스. 키 큰 미루나무와 둥그스름한 관목이 드문드문 서 있을 뿐인 들판은 망망했고 <만종>에 그려져 있듯 지평선은 아득했소.



추수기에 접어든 밀이 묵직이 출렁대는가 하면 초록빛 옥수수밭이 한정 없이 넓게 이어지는 풍요로운 농촌. 이따금 농가가 나타나고 트랙터를 모는 농부가 보였으며 마을에는 예외 없이 첨탑 치솟은 교회가 자리 잡고 있었소. 가로수 두 줄로 늘어선 시골길 따라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경쾌한 하이커의 모습도 눈에 띄었소.



초대형의 우리나라 <대우> 광고판이 마중하는 먼 빛의 파리는 생각보다 현대적이었지만 어딘가 산만한 분위기였소. 그 느낌은 파리 시내를 걸으며 비로소 지워질 수 있었소. 역시 파리는 수준 높은 미적 안목을 지닌 예술의 도시임을 도처에서 실감하게 되었소. 대부분의 일반 건물이나 아파트에 조차 전면이 조각 장식으로 우아하게 치장되어 있었으며 다리 난간 하나에도 소홀함 없는 예술적 감각이 새겨져 있었소.



​바렌느 역 인근에서 찾은 비롱호텔은 생전의 로댕이 거처했던 주택 겸 아뜰리에였다 하오. 로댕 미술관으로 이름이 바뀐 그곳에 여름날 오후 햇살이 흰빛으로 스미고 있었소. 길게 이어진 관람객 줄을 따라 고풍스러운 이층 건물이 우뚝한 뜰 안에 들어섰소.



​로댕의 작품과 함께 까미유 끄로델 그대 열정의 흔적들이 여기 머물고 있다지요. 로댕과의 운명적인 만남. 그 인연의 끈 죽어서도 차마 던지지 못하고 안타까이 부여잡은 뜻 하늘에 사무침이던가요. 그렇듯 살아생전 못 이룬 여인의 절절한 비원은 이승을 떠나서도 퇴색되거나 망각되지 않음을 확인시키듯 이제 로댕의 품에 안겨 영원한 안식에 잠긴 그대. 그렇소이다. 죽어야 만날 수 있는 인연이고 죽음으로써 풀릴 수 있는 비원이라면 백번 고쳐 죽기를 마다하리까.



 아무래도 먼저 주인부터 만나야 했소. 아니 르네상스 이후 최대의 조각가로 불리는 로댕에 대한 예우로서도 그러하지요. 본관 오른쪽 잘 다듬어진 정원수 사이로 <생각하는 사람>이 앉아 있었소. 그에 이끌리듯 우선 야외 조각 전시장인 정원을 돌기로 했소. 내면의 진실, 형태의 진리를 무엇보다 중시했던 로댕. 흔히 생명을 표현한 조각가라 하지요. 과연 청동과 대리석에 담긴 인체는 근육이 살아 있고 체온이 느껴질 듯 실제감을 갖고 다가서고는 했소. 예의 <칼레의 시민> <지옥문> <명상> <다나이드> 등등의 조각들이 숲 그늘 시원한 정원 여기저기에 알맞게 배치되어 있었소.



대리석 덩어리 바위 같은 몸체에 아련히 떠오르는 우미한 여인의 어깨선 고왔으며 차디찬 청동에 격렬한 운동감이 파도치듯 한 관능의 물굽이는 뜨겁기만 하였소. 천재는 하늘이 내는 것인가. 한 사람이 남긴 작품으로는 불가사의할 정도로 많은 양의 조각들에 지칠 만도 했소이다. 그렇다가도  작은 공원이듯 녹음 무성한 마로니에 숲과 부드러운 잔디밭의 벤치와 힘차게 솟 는 분수로 하여 새 힘을 되찾곤 했다오.



​실내의 널찍한 방들 마다에는 소품 조각들이 정연히 늘어서 있었으며 각종 컬렉션 및 데생이 전시돼 있기도 하였소. A.Rodin, 끊임없이 이어지는 로댕의 싸인들 사이에서 그대를 찾는 내 마음은 점차 조급해지기 시작했소. 천재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빛을 못 본 불우한 여류 조각가였던 그대는

19세 까미유와 43세 로댕과의 만남  이후 굴절되고 만 그녀의 삶. 여기서도 몸 낮게 낮춘 숨은 꽃이어야 함에 부아도 나더이다. 한시대를 능히 풍미할만한 그 재능 그 열정이 허무의 재되고 말았음이 생각사록 애석하기만 하였소.



​한참만에 비로소 나는 까미유 끄로델 그대를 만날 수 있었다오. 로댕의 흉상에 또는 소녀상에 단정하고 깔끔스런 정자체로 남긴 이름 CAMILLE CLAUDEL. 유다른 열정의 소유자답지 않게 소심할 정도로 얌전한 싸인에 그대 또한 어찌할 수 없는 여인임을 발견했소. 그대는 로댕과 작품성이 너무 유사해 싸인을 확인하지 않으면 작품 구분이 어렵다고들 하더이다. 그만큼 뛰어난 조각가였으나 큰 빛으로 홀로 서지 못했음은 극복할 수 없는 성의 한계 그 벽 때문인가요, 아니면 지친 사랑 때문인가요.



​그대 유작을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나 또한 조각가 끄로델로 보다는 솔직히 로댕의 연인에 더 비중을 두었더랬소. 그대의 비극적인 삶과 편집증적인 사랑이 호기심으로 작용했던 거지요. 불행한 천재 까미유 끄로델, 그러나 아니었소. 눈동자가 움직일 듯 섬세 다감한 조각이 있는가 하면 균형 잡힌 깨끗한 근육이 격한 몸짓 속에 터질 듯 힘차게 보이는 그대 조각들은 능히 로댕을 두려워하게 만들만했소. 로댕은 조그만 여인 까미유 끄로델 그대를 겁낸 것인지도 모를 일이요.



​올해는 그대가 이 세상을 버린 지 오십 주년이 되는 해라고 하오. 그러고 보면 아주 가까운 시대를 살았소만 왠지 설화 속 여인처럼 아스름한 그대.

예술의 불꽃을 못다 태우고 정신병원에 격리된 채 서른 해 긴긴 세월 어둠만 살라먹다 비참히 죽어간 그대여. 그대는 로댕의 무엇이었던가요. 무엇이길 원했던가요. 밤새운 끌질로도 풀지 못할 격랑에 스스로를 침몰시켜 버린 그대 까미유 끄로델. 쪼아도 쪼아도 끝내 새겨질 수 없는 조각이라서 마침내 뜨거운 피 폭발했음 이리오.



​타고난 비범과 외골수의 집요함이 차라리 고통이었고 고문이었던 그대. 미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대의 허망. 마구 부서지지 않고는 참을 길 없는 그대의 적막을 이해할 듯하였소. 온전한 정신으로는 감내키 힘든 형벌인 애증의 용광로에 그대는 발 담그고 있었으니. 그러나 그대는 패배한 것이 정녕 아니었소. 절대 고립과 완전한 망각 속에서 비참히도 홀로 생에 종언을 고했지만 죽어서 다시 살 수 있었던 그대.



그대의 세계 그대의 생명을 오롯이 바쳤던 로댕의 품 안에서 이제 까미유 끄로델 그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요. 영혼이나마 간절한 염원 이루어 로댕과 더불어 머물기에 나는 그대를 축복받은 여인이라 부르고 싶소. -1992년

카미유의 그녀의 작품 중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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