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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지보(無價之寶)인 스물넉 자
by
무량화
Oct 9. 2024
아래로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이라는 의미의 '무가지보'(無價之寶)로 평가되는 한글입니다.
2024
년
가갸날은 훈민정음을 반포한 지 578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가갸날'은 한글날로, 1926년 '가갸날'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가 1928년 한글날로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글은 창제 후에 '정음'이라 부르거나 '언문' 등으로 낮춰 불리다가 1910년 주시경 선생에 의해 한글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데요.
한글의 '한'은 한민족의 한도 되고, 크다는 우리말 뜻도 있어 우리 글자, 큰 글자라는 뜻을 갖고 있답니다.
이미 1928년 주시경, 이극로, 최현배 선생 등이 우리말에 조선심이 있고 조선혼이 있다며 한글을 소중히 지키고자 '가갸날'을 제정하여 오늘날처럼 한글날을 기렸다고 합니다.
무릇 각각의 국경일이 다 특별하듯 한글날인 오늘 또한 그저 공휴일 표식인 빨간색 날이 아니라 5대 국경일 중 하나로 태극기를 게양하는 날이지요.
1443년, 스물여덟 개의 글자로 이루어진 글자 체계의 발명.
그 자체로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획기적인 시도였습니다.
(지금 사용되는 한글은 스물
넉자이지만
훈민정음 창제 당시 스물여덟 자였다지요)
세종임금께서 훈민정음을 직접 창제한 데는,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정신이 바탕에 깔려 있었지요.
글을 배우지 못한 백성들이 무지함으로 인해 생기는 억울함을 풀어주고자
함이었답니다.
그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도리와 지식을 가르쳐, 더 아름답고 살기 좋은 사회를
이룩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는 한글은 이토록 선하고 인도적인 의도에서 나온 따뜻한 마음의
현신이었어요.
한글은 지식과 정보를 백성과 나누고자 했던 세종의 꿈과 당대의 과학, 철학 사상이 투영된 문자입니다.
사실상 양반과 학자에게만 허용되는 것이었던 문자 해독력. 특수층에게만 제한되었던 이 기득권이 모두에게 분배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혁명이었답니다.
놀라운 것은 이 혁명의 중심에 왕인 세종이 서 있었다는 점입니다.
최만리를 비롯한 조정의 대신들이 강력히 반대했던 사안이었지요.
특유의 학자적 식견과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끈기 있게 대신들을 설득해 가며 훈민정음을 반포한 세종임금님.
오늘날까지도 성군이라 추앙받기에 추호도 부족함이 없는 분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게 된다는 한글입니다.
훈민정음해례본에 적힌 위 문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훈민정음은 배우기 쉬운 글자입니다.
한자의 방대함과 복잡함에 비해 간단하고 체계적인 한글이 문맹 퇴치에 크게 기여하였음은 물론이고요.
중세 시대에 농민들이 글을 읽고 쓸 줄 알며, 이를 통해 지식 보급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역사이지요.
나아가 농사와 예법에 관한 한글 서적이 민중에까지 널리 반포되면서 사회 통합과 농업 발전을 꾀할 수 있었다 하네요.
이로써 중세 사회를 근대로 이끈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낸 한글이었습니다.
하지만 훈민정음이 반포되고도 한참 동안, 한글은 하층민이 사용하던 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양반들은 훈민정음을 한문(漢文)에 대비해 언문(諺文), 아햇글, 암글이라고 낮춰 불렀다
하네요.
그때나 이때나 특출나게 잘난 고위층이나 모자란 풋내기들은 죽자고 한문에 또는 영어에 목매달고 살 듯이요.
한글은 조형원리에서도 몇 가지 눈여겨볼 만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단순화의 원리입니다.
훈민정음 기본 자모음 글자들은 극도로 간결한 최소한의 형태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삼각형, 원, 사각형, 점, 직선으로 이루어진 기본 도형만으로 한글의 그 어떤 형태라도 만들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획을 더하는 가획의 원칙입니다.
한글의 모든 글자들은 기본 자형을 중심으로 센소리와 된소리에 획을 추가하는 간단한 방식에 따라 전개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기본 형태소들은 중심을 축으로 좌우가 대칭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좌우대칭 관계는 시각적인 균형감과 안정감을 줍니다.
한글은 정보화 시대에 문자 전송과 전자 문서화를 위한 최적의 문자입니다.
12개의 핸드폰 자판과 60개의 컴퓨터 자판에서 한글보다 빠르고 쉽게 작업할 수 있는 문자는 없습니다.
특히 한정된 자판만을 사용해야 하는 휴대폰의 문자 메시지 자판을 두드릴 때 그 진가가 발해집니다.
한글은 알파벳, 중국의 한자, 일본의 가나 와는 그 효율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과학적인 문자입니다.
한편, 아일랜드어나 폴란드어처럼 식민정책에 의해 민족과 함께 말살될 운명이었던 한글을 목숨처럼 지킨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렇듯 조선어학회는 우리의 말과 글이 없어지면 우리 민족은 영원히 없어진다고 보았습니다.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화한 조선어학회의 한글운동.
이는 단순한 한글 연구를 넘어 조국 광복을 위한 문화 항쟁으로 평가됩니다.
그럼에도...
날로 심화되고 있는 우리 일상 속의 '한글 파괴 현상'은 도를 넘어섰습니다.
특히 SNS가 일반화되며 'ㅎㅎ(하하), ㅃㅇ(빠이)ㄱㄱ(고고)'처럼 자음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인터넷상에 빈번해졌고요.
인싸에 등장하는 깜놀(깜짝 놀랐다), 귀척(귀여운 척), 문상(문화상품권), 행쇼(행복하십시오), 갈비(갈수록 비호감), 멘붕(정신줄 놓다)처럼 다양한 줄임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초등학생의 경우, '나대다, 찐따, 빡치다'처럼 비속어가 유행어로 등장해 일상 대화 속에서도 언어폭력의 심각성이 대두된대요.
이처럼 마치 암호에 가까운 은어의 남발은 세대 간 의사소통 단절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은 지난 10년간 매년마다 300∼700여 개의 신조어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2004년부터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외국어를 우리말로 다듬어 매달 3~5개를 공표해 왔습니다.
2011년부터는 문인, 언론인, 학자 등의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우리말 다듬기 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이 위원회를 중심으로 누리꾼들의 제안을 검토해 외국어를 우리말로 다듬어 나가고 있습니다.
1년간 100개 이상의 온·오프라인 매체에 새롭게 등장한다는 단어들.
이를 조사 정리한 뒤 비속어 비하어 사회통념상 부적절한 어휘 등을 제외해도 그렇다니, 매일 한
두 개 이상의 새 단어가 생기는 셈이네요.
반면 모든 유행이 그러하듯 반짝 떴다가 자취 없이 금세 스러져버리기도 합니다.
신조어는 새로 태어난 사물이나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지요.
필요에 따라서는 원활한 언어생활에 도움을 주지만 표준어와는 명확히 구분이 됩니다.
팬데믹, 코로나블루는 지구촌을 숨 막히게 한 코로나 시대에 급부상한 신조어겠네요.
MZ세대 같은
젊은 층이 자주 쓰는 인싸용어인
얼죽아, 중꺽마, 이왜진, 홀리몰리, 슬세권이니 빵커는 검색이 필요할 정도인데 플렉스처럼
영어로 만든 조어는 더하지요.
국립국어원이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외국어 중 우리말로 다듬어 새로 만든 표현을 조사했습니다.
이 중에는 댓글(리플),
알림 창(팝업창), 다시 보기(VOD) 등 한눈에 들어오고 발음하기도 좋은 이러한 표현은 우리 언어생활에 반영돼 정착되었습니다.
개이득, 핵노잼 등 한국어로만 구성된 신조어는 하도 들어 싸서 그렇기도 하지만 한눈에 척, 그 뜻이 전달되긴 하더군요.
'린백족', '먹부심', '이슈력'… 이 단어들은 국립국어원이 선정한 신조어입니다.
설명을 듣지 않고는 무슨 말인지 모를 저런 단어의 뜻은 이렇답니다.
린백족(lean back+族)은 의자나 소파에 앉아 편안하게 등을 기대고 온라인 쇼핑을 즐기는 사람 또는 그런 무리를 말한답니다.
먹부심은 먹는 일에 대해 느끼는 자부심, 이슈력(issue+力)은 사람들이 서로 다투는 논쟁거리가 될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합니다.
뜻을 듣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차이가 많이 나는 세대 간 대화에는, 이런 신조
어가 들리면
의사소통에 걸림돌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뿐 아니라 문해력 저하가 심각 수준이라는 기사를 읽고 아연한 적이 있는데요.
심심한
사과 말씀조차 심심하다로 오인한다든지 가로등은 세로등 아니냐고 반문하는 아이 등등.
‘금일(今日)’을 금요일로 착각하거나 ‘고지식하다’를 높은(高) 지식이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따위.
따라서 무분별한 신조어의
남발이 올바른 국어생활의 최대 걸림돌로 지적받고 있습니다.
새로운 말이 생기고 사라지는 건 언어의 숙명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모쪼록 한글날만이라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우리말에 대한 예의를 옳게 갖췄으면 합니다.
세종임금님!! 덕택에 내 나라말과 글을 갖게 되어 오늘도 이처럼 자재로이 한글 자판을 두드릴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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