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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Oct 12. 2024

충격파에 휩싸이게 한 전시회

부산 시립미술관 2층 대 전시실. 시오타 치하루( Shiota Chiharu) '영혼의 떨림' 전시회장이다. 현재 독일에서 활동하는 세계적인 설치미술가다.


1972년 오사카에서 태어나 교토에서 미술대학을 마치고 독일 유학을 가 베를린, 함부르크 조형예술대학에서 수학한 그녀다. 실과 오브제를 이용한 설치작품과 조각 회화 사진 드로잉 퍼포먼스 오페라 무대디자인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


 그녀의 관심사는 인간의 영혼과 내면세계다.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 사물에 담긴 파편적 기억들의 관계를 천착하는 그녀. 젊지만 다루는 주제마다 묵직하다.

입구에 써놓은 글은 이렇다. 실이 엉키고 엮이며 끊어지고 풀린다. 실들은 인간관계를 표현하듯 계속해서 내 마음의 한 부분을 보여준다. 치하루 시오타의 생각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온통 붉다. 초입에서부터 그 빛에 압도당한다. 가히 충격적이다. 강펀치를 맞은 듯 순간 휘청, 아찔해진다. 심장 박동이 격해짐을 느낀다. 전시실 큰 공간 벽면과 천장 전체가 빨간색 실로 겹겹 엮인 채 수많은 연결고리로 이어져있다.


이번 전시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작품 <불확실한 여정>이다. 붉은 실은 생명, 혈관, 운명을 상징한다. 뼈대 앙상한 배들은 표류하듯 방향을 잡지 못한 채라 항해의 불확실성을 보여준다. 영혼의 떨림이란 부제는 정서적으로 투명히 맑은 결을 떠올리게 하나 기실은 철학적 사유를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작품마다 앞에서 오래 멈춰 서게 됐다. 쉽게 발길이 옮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가를 꿈꾸었으나 붓 대신 실을 택한 그녀다. 감정처럼 섬세한 실은 엉킬 수도, 끊어질 수도 있다. 또한 실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관계, 인연도 된다. 작품 제목 <침묵 속에서>는 화재로 타다만 피아노와 수많은 의자를 소재로 썼다. 검은색 실은 거미줄 쳐진 폐허를 연상케 하는가 하면 예측할 수 없는 미래 혹은 미궁 같은 우주도 되겠다.



유년기의 기억 한편, 아홉 살 때 옆집 화재 때 마당에 꺼내놓은 불탄 피아노에서 소리가 나는 듯했던 느낌을 담았다. 트라우마로 남은 추억의 잿더미는 동굴 속처럼 어둡다.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는 기억들이 있다. 아름답거나 혹은 처연하거나 한 것들. 그녀가 내 안의 여러 기억들을 불러내 주었다.




그녀는 개인적으로 두 차례 난소암 수술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 경험이 있다. <벽>이라는 비디오아트 작품 앞에서 순간 망연자실해졌다. 죽음의 공포 상황을 극한으로까지 몰고 가며 일상 속에 상존하는 인간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나 할까. 생생하게 깨어날 수밖에 없는 존재에 대한 불안감으로 오싹해진다. 이외에도 몸에 붉은 물감을 뒤집어쓰는 등 자신의 신체를 직접 오브제로 사용한 퍼포먼스도 있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생겨난 못 쓰는 창틀을 활용한 작품 <내부-외부>다. 28년간 단절된 채 살아온 동서독이 통독 과정에서 보여준 어려움을 대형 설치작업을 통해 독창적으로 표현했다. 같은 언어를 공유한 그들이나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자들의 너무나도 다른 인식 체제를 극복하기란 쉽지가 않을 테니.

순백의 드레스를 거미줄처럼 감싼 검은 실을 통해 여성의 부재와 억압을 이야기한 <공간과 시간의 반영>이란 작품이다. 자신에 슬쩍 대입시켜 보는 여성 관객의 표정이 복잡 미묘해진다. 페미니즘이 기승부리는듯해도 말이다.

의미 없을 것 같은 생활소품인 실, 구두, 드레스, 의자, 침대 등 일상적 사물을 등장시켜 거기 깃든 기억과 관계의 의미를 탐구한다는데 아무래도 내 두뇌 용량으론 이해불가라서 고개만 갸웃.

<욕실에서> 연작 옆에는 이런 메모가 남겨져 있다. '때로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목욕을 하는데, 몇 시간이고 욕조에 잠겨 창문 밖 구름을 물끄러마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구별이 안된다. 그러다 네 시쯤 되면 뭔가 생산적인 일을 꼭 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한 마음이 든다.' 해서 다시 창작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는 그녀.



인간은 한 겹의 피부를 입고 태어나 제2의 피부로 옷을 입는다, 란 그녀의 멘트가 보인다. <피부의 기억>은 직접 바느질한 7미터 길이의 대형 드레스를 오물로 더럽힌 다음 벽에 걸어놓고 위에서 샤워기로 계속 씻어내고 있는 설치작업이다. 보기 좋은 그림만이 훌륭한 예술일 수 없듯 현대미술의 차원은 보기 좋은 게 전부는 아니었다.   



대부분 나이 들면 하나씩 삶의 족적들을 정리하게 마련이다. 보통은 자신이 눈 감기 전 태워버리는 사진들이다. 그녀는 삶의 흔적을 붉은 실로 얼기설기 엮어놓았다. 묶어둔 과거는 점점 빛바래간다. 마침내는 삭아버린다.



베를린을 동서로 가로질렀던 장벽의 벽돌 조각들. 사진 한 장이 그날의 역사를 담담히 들려준다. 맞닥뜨린 역사와 주어진 환경은 의식적으로 사유치 않는다 해도 은연중 자신에게 녹아들어 자기화가 되므로 예술의 모티브가 되어 내면을 표현한다.


감정을 표현하고 형태로 나타내는 과정은 영혼을 파괴시키기도 한다, 란 메모가 옆에 붙어있는 <내 몸 밖>이다. 마음과 몸이 서로 분리되고 폭발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는 그녀. 갈가리 찢기고 부서진 몸을 붉게 염색한 소가죽으로 표현했다. 너는 누구냐? 정체성에 대한 원초적 질문을 이쯤에서 스스로에게 하게 된다.


<에너지의 흐름>이란 제하의 작품에선 실선 배치 만으로 자석의 끌어당김 같은 느낌이 강하게 전해졌다. 그녀의 치열함이 주삿바늘 끝처럼 예리하게 다가와 찌른다. 자꾸만 찔러댄다.


인간의 생명은 수명을 다하면 이 우주에 녹아들어 가는 것일지 모른다.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것은 소멸이 아니라, 더 큰 세상으로 융화되는 과정이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시오타 치하루의 노트-



모름지기 진짜 예술을 하려면 그녀처럼 전신으로, 강렬하게, 진지하게, 치열하게, 무섭게.  그리 못 한다면 숫제 심심파적으로 놀이 삼아 슬슬 재미지게 즐겁게.


시오타 치하루의 회화 작품으로 대형 캔버스에 유화로 그려졌다. 미술의 바탕은 데생이고 구성이듯 여기 기초해 조각 디자인 회화 사진 그 외의 모든 조형예술이 탄생된다. 무릇 모든 예술가는 물론, 단순한 '쟁이'가 아닌 진정한 아티스트가 되려면 인문학적 소양 특히 철학은 필수로 갖춰야겠구나 싶었다.


해가 있을 때 들어갔는데 나와보니 한밤중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세 시간여를 미술관에서 보냈다. 기이하고 섬뜩하면서도 생경함이 주는 묘한 마성에 홀려 넋을 잃다시피 한 오후. 무한정 곱거나 어여쁘지(美) 않아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끌리는 현대예술의 세계, 그 별유천지 거닐며 구경 한번 잘했으니 오늘도 좋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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