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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Oct 21. 2024

주객전도된 서복 전시관과 정방폭포

차이나타운도 아닌데 중국 냄새가 물씬 풍기는 여긴 뭐지?

서복이라면 영원히 살고싶은 진시황의 불로초 특사로 익히 알려진 인물이다.

나아가 정방폭포 바로 곁에 서복전시관이 선 이유야 타당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과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초입은 물론 전시관이나 공원이나 후원 규모가 대단스러워 갸웃해진다.

더군다나 원나라와 맞서 항쟁한 삼별초의 난을 기리는 기념비가 서있는 제주섬이다.

그 터에 들어선 중국풍이 지나쳐 눈에 거슬린다.

얼핏, 중국정부에서 비용을 댔나 싶을 지경이라 물어봤는데 빗나간 예상이었다.

내심 한중 우호증진 차원에서거나 중국 자본 유치를 위해서, 혹은 중국몽에 빠진 행정가의 얼빠진 아부 같아 떫어진다.

장보고 기념관이라면 수긍할만 하나 진시황 심부름꾼인 중국할배 기념관에 세금 마구 처바른 데 심통이 난 것.

전말이야 어떠하든 서귀포의 랜드마크인 명승지 정방폭포보다 더  돋보일 만큼 거창하게 꾸며놓아 주객전도란 생각이 들었다.

설령 서복이 본국으로 돌아간 포구라 해서 지명이 서귀포라는 설이 있다 할지라도.



제나라 사람 서복(徐福). 그는 불로장생 헛꿈을 꾼 진시황 하명에 따라 불로초를 구하러 동남동녀 천명이나 거느리고 제주도에 왔다.

신세계를 향한 컬럼버스의 대 항해처럼 사복 역시 물자 실은 여러 척의 배와 수많은 인원 등등 행렬만도 장관이었을 불로초 구하기 프로젝트.

험한 파도 헤치고 해동국 삼신산에 있다는 명약을 얻고자 바다를 건너왔으나 불로초 대신 신선의 열매라 불리는 '시로미' 만 구해 돌아갔다.

지금은 희귀 및 멸종 위기식물 136호로 지정돼 보호받는 식물이지만 시큼 달달한 까만 열매는 한약제로 쓰인다고.

영지처럼 생겼다는 불로초를 못 찾아 목적도 이루지 못한 처지에 절경지 보고 감탄해 정방폭포 암벽에다 휘호 날릴 여유야 있으랴만.

암튼 '서불과지(徐市過之:서복이 이곳을 지나갔다)'라는 글자를 암벽에 새겨 자신의 경유지를 만일에 대비, 싸인처럼 곳곳에 남겨놓은 서복.





화산섬인 제주 남해안가 정방폭포는 화산 분출 시 용암이 굳어 생긴 수직절리로 인해 발달한 폭포라 경관이 뛰어나다.

깎아지른 절벽지 주변에는 해송이 자라고 만조 때는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폭포가 가히 장관인 바 명승 제43호로 지정된 정방이다.

따라서 인근 해안 역시 두루 다 명승지다.

전시관 앞 어디나 빼어난 풍치라 서복 10경이라 이름 붙은 공원 풍경을 숨은그림 찾듯 찾아보며 산책할 수 있는 데크길이 잘 꾸며져 있다.

후원 격인 불로초공원엔 중화풍의 정자와 교각에 담장이 서있으며 약초식물도 골고루 심어졌고 연못에는 수초 가득하다.

설화를 바탕으로 구전(口傳)된 문화 유적지로서 아름차게 조성된 기념관 곳곳에 선 조각이며 담벼락마다 세심하게 그림 새겨 넣은 정성이라니.

전시관 내부에는 서복 관련 역사적 사실과 항해도 애니메이션을 위시해 진시황의 청동마차와 병마용갱의 실물 복제품이 위세롭다.

하여간 어느 하나 소홀함 없이 시종일관 알뜰하게 꾸며놓았으니 마무리도 충실히, 진짜 후문까지 신경 써서 의젓하게 세워뒀다.

바로 연결되는 자연이 준 천혜의 선물인 정방폭포가 머쓱해질 정도로.  

폭포가 무정물이기 망정이지 만일 유정물이라면 머쓱 정도가 아니라 삐치고도 남을 일 같았다.



솔동산으로 불릴 만큼 소나무가 많았던 곳.

주변 행정명이 송정동인 것도 이에 연유함이 아닌가 싶다.

전망이 훌륭해 바로 앞에 섶섬이 동그마니 앉아있고 새섬이 저만치 누워있다.

지형이 소머리 모양으로 생겼다는 설에 따른 소남머리, 소나무가 많은 동산이라는 설에 따라 소낭머리라 불린다.

서귀포에는 워낙 명소가 많아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비경도 숱하다.

그중 하나기 소낭머리로, 올레 6코스 경유지이기도 한 이곳은 정방폭포와 자구리 해안 사이에 위치했다.

관광객이라면 정방폭포만 쓱 둘러본 다음 인증샷 날리고 가버리지만 서귀포 주민들은 인파 몰리지 않는 호젓한 바닷가를 더 선호한다.

인근 해안 벼랑길은 어디나 솔숲 짙푸르게 우거진 높은 절벽지대로 해조음 들릴 만큼 바다와 가깝다.

반듯반듯 깎아지른 주상절리대가 펼쳐진 해벽에 부딪히며 쉼없이 탄주하는 파도소리 사뭇 오묘하다.

시선 들면 망망대해 펼쳐지면서 태평양 건너온 해풍 청쾌하게 불어젖힌다.

풍광 근사한 자구리공원 전망대에서 옆 층계를 내려가면 소낭머리 노천탕과 용천수장이 나온다.

노천탕은 말 그대로 노천에 만들어진 목욕탕,  이제는 사용치 않고 대신 여름철이면 시원한 족욕장 이용객이 많다고.

예전엔 드넓은 용천수장이 비좁을  정도로 사람이 바글거렸다는데 하릴없는 지금은 낙엽만 떠다녔다.

용천이란 물이 솟아난다는 말처럼, 지표 깊숙이 흐르던 지하수가 지층이나 암석의 틈을 통해 용출되는 걸 의미한다.

어디건 용천수가 솟는 곳에 부락이 들어섰으니 용천수는 제주인에게 있어서는 곧 삶의 근간이자 원천인 셈.

​과거 수돗물이 공급되지 않던 시절, 물이 귀한 제주도에서 용천수는 산물, 곧 살아있는 물인 생명수 그 자체로 불렸다.

화산석으로 이루어진 토질이라 제주에선 비가 많이 와도 금방 땅속으로 스며들어 버리므로 물 흐르는 개울보다 대부분이 건천이다.

그처럼 땅속을 흐르던 물이 바위 틈으로 솟아나면 엉물, 용출량이 많아 물이 넉넉한 곳은 큰물, 용출량이 아주 적어 졸졸 흐르면 새가 먹는 생이물, 장마철에만 솟아나는 구명물까지 있으니 물 이름도 제각각이다.


올레길 표식을 프레임 삼아 담아본 섶섬만이 아니라 어디나 앵글 들이대봐도 아름다운 소낭머리요 자구리 해안이다.

정방폭포를 비롯 인근 모두 빼어난 경관으로 사철 방문객들 끊이지 않으나 4.3 당시 시체 즐비했던 끔찍한 역사의 현장임을 안내문이 귀띔해 준다.

현재 송산동 주민센터는 과거 서귀포 면사무소였다가 2연대 본부 건물로 사용됐고 서귀포 초등학교는 대대 병력의 주둔지였다.

서복전시관 자리는 원래 전분공장 터였으나 수용소가 들어서며 날마다 끌려들어온 사람들이 죽을 차례만을 기다렸다.

시대의 광기가 부른 폭거였다.

낮에는 군경 토벌대, 밤에는 산에서 내려온 남로당 무장대에 의해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만도 못하게 취급되던 시절이었다.

이념이 무엇이관대, 사상이 대체 뭐 말라비틀어진 개뼈다귀인지, 핏발 선 눈으로 서로를 겨누던 참담한 시기였다.

그때나 이제나 순박한 백성들은 영문도 모른 채, 무고한 양민들은 이유도 모른 채, 시대의 희생제물이 되곤 한다.

억울하지만 기막히지만 질문할 수도, 답변도 들을 수 없던 단절의 시대.

그렇게 서귀포 주민 248명이 총구 앞에 고개 떨군 채 한순간 절벽 밑으로 사라졌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무서운 세월이었다.

절벽 아래로 스러진 희생자 중 백여 구의 시신은 파도에 쓸려가버려 수습조차도 못했다.  

제주섬 빙 둘러 마을마다 4.3의 광풍 휩쓸지 않은 곳 없으니, 그 통한의 세월 앙금 돼 가라앉아 붉은 동백꽃으로 무수히 피어나는지도.

여행객들은 폭포에 혹하고 동백꽃에 매료되지만 제주인에게 폭포수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며 동백꽃은 피멍 든 생가슴 아니랴.

하지만 우리는 과거에 볼모 잡히지 말고 미래를 해 희망을 적어나가야 한다.

"진실을 규명하자는 것도, 누구의 잘못이냐고 캐어묻는 것도, 누구의 책임이라고 탓하는 것도,


배상 보상 문제를 논하는 것마저도 용서와 화해 앞에서는 더 이상 진리일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우리의 의연한 모습이 그 일로 구겨지거나 추해지는 일은 없어야 하겠기에 그러합니다.

화해와 상생의 의미가 잘못 정의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아프고 아픈 모든 사연들은 가슴속 깊이깊이 묻어둘 일이며

아물지 않은 상처, 소리 지르고 싶은 고통, 보상받고 싶은 심정 그 모든 것 용서와 사랑과 화해로 대신할 일이라고,

저 피의 바다는 우릴 보고 조근조근 말을 전합니다."

4.3은 변할 수 없는 역사이자 진실이나 어느 편 역성도 들지 않는다는 분.


직접 피해 당시자인 여든 넘은 성산포 시인의 시를 이럴때마다 인용하곤 한다.


4.3사건 관련 정방폭포 학살에 대한 얘기는 민감한 부분이라 뒤로 미룬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조차 시각 미묘한 시기라서....

척박한 산간 바위에 붙어산다는 약제 시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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