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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Oct 22. 2024

천년숲 비자림 맨발로 걸어보자

지난해 일이다.


다문화가정 한국어 교사로 세 시간씩 일주일에 닷새를 일했다.


목요일 한글 수업을 마친 그다음 주 월요일, 학생인 라오스 여성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으니 오시면 안 돼요, 민망스러운 듯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그런다.

안 그래도 조심스럽던 차였다.

지난 수요일에 수업하러 가보니 그녀의 작은 아들이 때꾼한 눈을 하고 방에 누워있었다.

어디 아프냐고 묻자 감기 걸려 병원에 다녀왔다고 했다.

코로나는 아니라며 먼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이 이마를 짚어보니 열이 있었다.

이튿날도 어린이집에 못 가고 아이는 코 훌쩍이며 홍색 물약을 받아먹었다.

아이 엄마도 약간 목이 쌔하다고 했다.

평소와는 달리 슬그머니 마스크를 착용하고 수업을 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손부터 여러 번 씻었으나 기분이 영 개운치 않았다.

그럼에도 별다른 이상 증세는 없어 평소처럼 밥 맛나게 먹고 숙면 취하는 등 아무렇지 않았다.

금요일만은 효돈중 학생의 수업이 있는 날.


마스크를 계속 착용하고 평소처럼 수업을 진행했다.


팬데믹 기간 동안 부산 곳곳을 누비고 다녔지만 위생수칙 잘 따라서였던지 코비드 포로가 된 적이 전혀 없었기에 믿는 구석이 있긴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별다른 이상은 없었으나 그래도 좀 찝찝은 했다.


이웃인 황선생이 주말이니 윗세오름에 가자고 했으나 여차여차해서 당분간 자숙하고 지내겠노라 했다.

올 초, 교실에서 아픈 학생으로 인해 코로나에 걸렸던 그녀가 께름칙하면 검사해 보라며 자가진단키트를 건넸다.

약간의 증상이 느껴진다면 당연히 사용해 보겠지만 전혀 아무런 증세도 없는데 굳이 할 필요가 있겠나 싶었다.


혹시나 싶으면 일단은 검사를 해봤을 테지만
주말 동안 칠십리 축제구경도 다니고 별 탈 없이 잘 지냈다.

그러다 월요일에 밀착 접촉자였던 라오스 여성의 확진 소식을 들었던 것.  

나 자신 보다 금요일날 교실에서 수업을 받은 베트남 학생의 안위가 염려스러웠다.

괜찮냐며 전화해 보니 축구팀 훈련받고 왔다며 여전 씩씩한 음성이라 휴우~ 안도감이 들었다.

일 주간의 자가격리 기간 동안 라오스 여인 수업이 없어 오전 시간 자유로우므로 먼 데까지 놀러 다녔다.


평상시 시간 제약에 걸려 못 갔던,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 이리저리 억새 구경 다니기 바빴다.   

그러다 문득 비자숲이 생각났다.

두어 시간 족히 걸리는 거리라 생각이 있어도 훌쩍 나서지 못하던 곳인데 이참저참  다녀오기로 했다.


나의 한약방인 거기 가서 깊숙이 심호흡하면서 개운하게 심신 정화시키고   치유도 해야겠구나.

알칼리성 천연 세라믹인 송이는 신진대사 촉진 및 산화 방지 기능과 곰팡이 증식을 막는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송이 밟으며 비자숲 거닐기만 해도 비자열매에서 번지는 상긋한 향기가 함유한 살균작용으로 인해 나쁜 독소 자연 소멸되리라.

피톤치드 음미하면서 코 벌름대며 비강과 인두 최대로 열어두고 허파꽈리 부풀려 크게 심호흡하리라.

삼림욕장에선 셔츠 소매 걷어붙이고 바지도 무릎까지 걷어 올린 다음 모자 벗고서 시원스레 즐풍(櫛風) 즐기리라.

양말 벗고 맨발로 숲길에 깔린 황톳빛 화산송이 밟으며 별사탕 자그락대는 소리 고즈넉이 귀 기울여 보리라.  

상큼하고도 향긋한 한약 내음 같은 게 온데 흐르는 숲 향기에 오래 취해보리라.

천천히 거니노라면 한약초 향 사방에서 말갛게 스며들 테니 청량감은 절로 따르리라.


숲 향기로 말하자면 비자림만큼 독특한 데가 달리 또 있을까 싶잖다.

식물 속에 들어있는 정유 성분이 숲 속 공기에 녹아들어 청정히 번지는 테르펜으로  삼림욕을 할 수 있는 그곳.

피토 케미컬인  성분이 자율신경을 자극해 마음을 안정시키고 정신집중 등 뇌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고 하였다.


외가 작은할아버지 댁 사랑채에는 한약방이 차려져 있었다.

먹감나무 약장 작은 서랍 문고리 양옆에 한문으로 쓰인 약초 이름이 있었는데 그 많은 중에서 척척 골라내 첩약을 짓던 할아버지.

아랫목 경상 위에는 늘 지필묵 단정했으며 그 아래쪽에는 길들어 반질거리는 약저울과 약재 써는 작두가 놓여 있었다.

안마당 풍로에서 김 폴폴 올리는 약탕기 입구는 삼베에 감싸인 채 달큰한 감초 내를 담장 너머까지 풀어냈다.

한약냄새에 향수 같은 게 어려서일까.

나는 한약을 양약보다 선호하는 편이다.

약효가 더디 나긴 하는 한약이지만 양약처럼 직방으로 효과 나타나는 건 어쩐지 겁난다.

느리게 효험이 드러나는 한약이 그래서 오히려 미덥다.

핏줄을 타고 세포 사이로 서서히 약기운이 스며들어가는 느낌도 좋다.

더구나 딸내미가 조제해 주는 한약은 어떠한 경우라도 무한 신뢰가 가므로 효과도 확실하다.


그처럼 비자림도 여늬 숲과는 차원이 영 다르다.


비자림은 눈 시원하게 해 주고 청각 상큼하게 열어주고 후각 청량하게 트여주고 덤으로 미각과 촉각도 깨어난다.

시(視)·청(聽)·후(嗅)·미(味)·촉(觸), 오감 고루 자극하니 이보다 더 좋은 데 어디일까.

두어 시간 형체없는 정령처럼 비자림에서 부유하다 숲을 나오니 심신 가뿐하고도 상쾌하다.

잠시동안이나마 맑은 기운으로 전신 세례 받아 정화된 데다 더할나위없이 충만된 사유의 시간을 선사해 준 비자림.


이번에는 비자림 A B코스를 맨발로 걸은 덕인지, 피톤치드로 샤워를 한 덕인지, 천년숲에 다녀온 후 심신 날아오를 듯 쇄락해졌다.


그럼 그렇지, 바이러스쯤이야 냉큼 물렀거라~일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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