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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무량화
Oct 22. 2024
온평리 혼인지와 축제장의 동심
축제로 동네마다 들썩대는 시월.
환절기이기도 해, 여름철 옷은 정리해 넣어두고 추동복을 꺼내놓느라 오전 시간을 다 보냈다.
뒤늦게 온평리 혼인지 행사장으로 향했다.
갈바람 소슬한 오후녘, 온평 마을 길가엔 촘촘 청사초롱이 달려있고 축제 현수막 펄럭거렸다.
어딜 가나 한창인 억새꽃 하얀 머릿단 출렁대며 나부꼈다.
행사장에서 들리는 노랫소리 쟁쟁했다.
혼인지 주변은 주차장으로 변해있었으며 광장 무대와 식당을 중심으로 인파 왁자지껄한 축제 현장 풍경은 대개 엇비슷.
체험장 판매장 무료시식 등등 고깔 모양 부스 길게 줄 서있기는 대동소이했다.
흥겨운 가락에 신들린 듯 아녀자들은 너울너울 춤을 추어댔다.
막걸리 기운에 불콰해진 남정네들도 춤판에 끼어들었다.
하루 기분풀이 신명풀이 즐거운 마을 잔칫날에 다름 아닌 행사장.
소음을 피해 숲길로 들어섰다.
거기서 비눗방울 놀이에 취한 한무리 동심과 만났다.
아이들은 오색영롱한 비눗방울을 잡아 보겠다고 뛰어다니며 한창 놀이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비눗방울처럼 투명한 웃음 날리며 신나게 즐기는 아이들의 티없이 순수무구한 표정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동안 동심의 세계에 취해있다가 혼인지 연못 옆을 지나서 행사장 밖으로 나갔다.
혼인지와 머지않은 연혼포로 가기 위해서였다.
탐라 건국 신화의 세 주인공 배필이 될 벽랑국 세 공주가 닿았다는 포구다.
신화는, 선조들이 남긴 문화 유산으로 단군 신화가 그러하듯 예로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들이되 단순한 전설과는 다르다.
이는 한 민족에게 전승돼 내려오면서 종교의 체계를 갖게 되었고 어언 섬김의 대상으로까지 격상되었으니까.
태곳적에 초자연적 존재가 어떻게 하여 이 세상에 나타나 주술적, 종교적 능력을 갖추게 되었을까.
초월적 존재인 신화의 주체가 어떻게 신비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제신의 세계가 그러하듯 명쾌하지가 않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비롯, 알을 깨고 나온 김수로왕이나 푸른 바다 거품에서 태어난 비너스처럼 말이다.
첨단과학시대에, 샤머니즘 같은 과거 회귀성 고리타분한 옛 얘기 정도로 치부하지 말고 신화란 무엇인가부터
이해해 보기로
.
신화는 개인이나 사회가 각기 주어진 환경에 긍정적인 태도로 적응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란 점에 개인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집단 단결의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신화 자체가 원시사회의 불합리성을 반영한다는 점만은 먼저 인정해두고.
그처럼 건국신화나 시조신화는 근본 내력이 신앙에 바탕을 두기에 하늘에서 내린 신령스런 신격을 부여 받는다.
제주 도심에 있는 삼성혈은 고을나(高乙那), 양을나(良乙那), 부을나(夫乙那)의 세 신인(神人)이 솟아났다는 곳이다.
삼성 씨족의 시조 신화이자 탐라(耽羅)의 개국신화가 시작된 곳 삼성혈은 따라서 제주의 성지나 마찬가지다.
제주 관광이 먹고 노는 관광이 아니라 자연사와 문화와 인류학을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는 수준 높은 관광지로
만들겠노라
고
제주도민들은
다짐
한다.
그와 연계해, 먼 상고시대의 신화로만 치부되는 세 신인이 혼인 맺은 곳을 찾았던 것.
하긴
<고려사> 11권 탐라 고기(古記)에도 언급된 바 있는 남동쪽 바다(현재
성산읍
온평리 바닷가)다.
망망대해 저 끝에 걸린 수평선, 짙푸른 바닷가에 들고 나는 파도는 영겁토록 이어질 텐데 인간사는 유한하고.
태초에 한라산 기슭 삼성혈에서 세 신인이 솟아났다.
어느 날 동쪽 바다에 자줏빛 흙으로 봉인된 나무 함이 떠밀려왔다.
세 신인이 함을 열자 푸른 옷을 입은 세 처녀와 소와 말 그리고 오곡 씨앗이 들어 있었다.
동해 벽랑국 임금이 보낸 세 공주와 삼신인이 혼례를 치르고 씨앗 심어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 탐라국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허물어진 환해장성 아래 우묵사스레피와 해국이 나지막하게 누워있었다.
해풍 상쾌하게 몰아치고 햇살 따스한 오후, 건조대에 매달린 오징어는 흔들흔들 그네를 타며 물기를 말렸다.
벽랑국의 세 공주가 해안에 닿았을 때 황금빛 노을이 내리고 있어서 ‘황루알’이란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이곳.
신화와 인연의 땅이라는
온평포구다
.
한라산에서 단숨에 달려내려온 세 신인이 크게 기뻐하며 쾌재를 불렀다는 쾌성개란 곳도 여기 있다.
함에서 나온 꽃가마가 최초로 닿은
지약이
오통, 공주들이 디디고 올라왔다는 디딤팡돌도 있다는 연혼포 해안이다.
‘온평리’의 본래 이름은 그래서 ‘연혼포 (延婚浦) 혹은 영혼포(迎婚浦)로 불렸다.
고(高)·양(梁)·부(夫) 삼성과 벽랑국의 세 공주가 혼례를 올린 마을이라는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투명히 푸르고 파도 잔잔한 온평포구는 광치기 해변에서 시작되는 제주올레 2코스 종점이자 3코스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온평포구에는 제주에 몇 개밖에 남지 않은, 현무암으로 쌓아올린 첨성대 닮은 도대가 우뚝 솟아있으니 눈여겨보길.
어로작업을 나간 어부들이 생선 기름 이용하여 불을 밝혔던 전통 등대인 ‘도대’가 아직도 잘 보존되어 있으므로.
마을 앞 해안선의 길이가 6㎞ 정도로, 제주도 해안마을 중 해안선이 가장 길다는 이곳.
여기서부터 신산리 역시나 기나긴 해안선 따라 환해장성이 장엄하게 펼쳐져 있다.
서서히 석양빛 스며드는 온평포구.
황루알다이 저녁놀 황금색으로 번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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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 지나니 만사 여유작작, 편안해서 좋다. 걷고 또 걸어다니며 바람 스치고 풀꽃 만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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