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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무량화
Oct 26. 2024
한라산 기슭 천미천에 가을비
지금은 건천인 천미천.
그 위로 운치 있는 아치형 다리가 놓여있다.
맨 처음 제주에 와서 여길 찾았을 때도 단풍이 한창이었다.
이번 역시 절정을 맞은 단풍이라 우연히 옛 벗을 만난 듯 반가웠다.
부리를 마주 댄 까마귀 두 마리, 정겨운 풍경을 연출해도 으스스 하긴 마찬가지.
까마귀 떼가 천변 단풍나무를 옮겨 앉으며 음산하게 까악 댄다.
퍼득거리는 날갯짓 소리가 들릴 만큼 덩치 큰 데다 새카만 몸체조차 왠지 거슬리는 새다.
까치 사촌 같으나 분위기며 느낌은 영 천양지판이다.
동행이 있으니 망정이지 홀로라면 후딱 내빼고 말았겠다.
천미천은 한라산 자락 어후오름 일원에서 발원하여 물장오름, 물찻오름, 개오름 등을 지나 표선면 하천리까지 이어진다.
물길이 약 25.7km로 제주도에서 가장 긴 하천이다.
연중 거의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의 형태를 보이나, 폭우 시에는 엄청난 급류가 겁나게 내려온다고 한다.
일광욕, 삼림욕, 해수욕은 3대 자연욕에 해당한다.
삼림욕은 경관과 소리와 향기 및 음이온과 온습도와 햇빛으로 쾌적한 느낌을 우리에게 전해줘 면역력을 향상시킨다.
우리의 심신 건강에 큰 혜택과 도움을 주기에 일상의 피로를 풀고자 숲을 찾곤 한다.
숲 치유요법의 효과를 확실히 누려보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장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높이는 해발 600~700m라고 하듯 여러모로 이 숲길이 힐링의 최적지가 아닐까 싶다.
안테나가 삐죽 솟아있고 철망이 쳐져 있어서 아마도 통신시설인가 보다 했다.
산악기상 관측장비란 큰 글자가 눈에 띄기에 가까이 다가갔다.
안내문을 읽어보니 산림재해방지를 위해 태양광 이용해서 숲속의 산악기상을 관측하는 장소란다.
고즈넉한 숲이긴 하나 한라산 둘레길과 연결된 꽤 높은 산자락이다.
종잡을 수 없이 수시로 변덕 부리는 고산 날씨임을 감안하면 절대 필요한 기상관측소이겠다.
이 숲에 서식하는 목본류는 낙엽수들이 주종을 이뤘기에 단풍 이리 고웁다.
서어나무 때죽나무 졸참나무 참꽃나무 사람주나무 쥐똥나무 말오줌대나무 등등이 서로 어깨 비비며 키 돋워간다.
초본류로는 천남성 꿩의밥 둥굴레 좀비비추 풀솜대 새우난 으름난초 개족두리 제주조릿대 등.
석송 고비 관중 뱀흡 가는홍지네고사리 나도하초미 등속의 양치류도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울긋불긋 화려하기보다는 적당히 수수해서 더 정스러운 숲.
격정 불사르며 도발적으로 튀는 홍단풍이 아닌, 어울렁 더울렁 더불어 배려하며 서로 조화이룬 나무들.
바라건대 이 숲의 가을처럼 겸허하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
단풍 숲 너머로 도도록 솟은 능선은 물찻오름이겠다.
물찻오름(水城岳)은 조천읍, 남원읍, 표선면 등 경계선이 마주치는 정점에 위치했다.
완만한 봉우리로 보이지만 산정에 일 년 내내 물 그득한 호수를 품고
있는
여름철, 한시적인
개방일이 기다려진다.
더구나 자연휴식년제로 15년간이나 묶여있었기에 식생복원이 잘 이루어져 자연생태계가 살아 숨
쉬는
오름이다.
오름으로
향하는
아쉬운 눈길 거두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무렵부터 성글던 빗방울이 부옇게 쏟아져 내렸기 때문이다.
마침 정자 쉼터가 있어 비도 피할 겸 다리도 쉬어주며 간식을 들었다.
월든 삼거리 길을 지나면 그때부터 울울창창한 삼나무 숲길이다.
데크로 고르게 다듬어진 무장애숲길과 미로숲길을 천천히 돌아서 나오자 차로가 보인다.
교래리에서 내려 출발은 제주시 비자림로에서 시작했는데 마침표는 서귀포시 남조로 사려니 숲에서 찍었다.
오르내림 없이 비교적 평탄한 길이라
네댓 시간 걸은 요량으로는 전혀 피곤하지가 않은
산책길 같은
숲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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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 지나니 만사 여유작작, 편안해서 좋다. 걷고 또 걸어다니며 바람 스치고 풀꽃 만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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