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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Oct 26. 2024

직무유기로소이다

얼굴은 마음이 그대로 반영되는 거울이라고 한다.

그처럼 저마다의 얼굴에는 그간 살아온 내력이며 심상의 기상도가 곧이곧대로 새겨져 있다.

편안한 얼굴, 강퍅한 얼굴, 불만이 새겨진 얼굴, 미소 스민 환한 얼굴, 수심 깃든 어두운 얼굴, 각양각색이다.

객관적으로 보기에 버거운 고통을 겪는 여정인데도, 나름 자신을 잘 다스려 맑고 온화한 얼굴을 지닌 사람도 더러 있긴 하다. 참 대단한 경우다.

운명론자까지는 아니지만 싫든 좋든 몫 지워진 숙명이란 것이 분명 존재하는 우리네  삶.

거부할 수 없는 신의 뜻 혹은 인연법에 적용시켜 가며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기까지에는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불편한 심기, 불쾌한 기분이 들면 즉각 미간에 세로 주름이 서며 내 川자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내 얼굴.

날이 갈수록 주름은 점점 더 깊어지면서 골이 뚜렷해진다.

이마의 주름뿐인가, 가까이 볼라치면 눈가 여기저기에다 입언저리까지 어지러이 드러난 새 발자국.

무에 그리도 못마땅하고 거슬리는 일 천지였던지, 참아내기 힘든 일들이 어이 그리도 많았던지, 얼굴 전체에 이리저리 깊게 팬 주름 골짜기들에 스스로도 기가 찬다.

나이에 비해 유달리 심한 주름살. 행차 뒤에 나발 불듯 가로 늦게 영양크림 퍼 발라봐야 소용없는 일인 데다 이미 화장으로 감춰질 수준도 아니고 성형은 애당초 생각 밖이니 그저 인정 내지는 수긍하고 더불어 지낼 수밖에.



이른 결혼으로 삼십 대 초 나는 이미 사추기를 맞았다.


덕분에 그때부터 글쓰기에 빠지게 되었는지 모른다. 독선적이면서도 편벽된 경상도 남자를 만났던 것이다.


전근대적인 성향의 완강한 남자였다. 아이가 있으니 되물리고 백지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속에 두드러기가 날지언정 맞춰가며 살아야 했다.


경상도 사람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유달리 강한 영남 기질 그 자체인 데다 환경적 요인이 보태져 참 복잡 난감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게다가 나는 자의식이 솟대처럼 드높았다.


 티격태격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힘겨운 나날이었다.



차츰, 웃자란 순들은 가뭄에 타들어가듯 오그라들었고 뻣뻣하던 결기는 서리 맞은 고춧잎 꼴이 됐다.


날 선 반응으로 일일이 대거리를 못하는 대신 그때마다 상이 절로 찌푸려 들기 시작했다.


모란처럼 활짝 펴보기도 전에 체념하며 찌들어가는 젊음이었다.


각진 모서리끼리 부딪치는 일들이 반복되며 얼굴 밝게 펴질 새가 없었다.


끓는 분을 제때 발산시키지 못하다 보면 그게 고스란히 얼굴에 주름으로 새겨지는 것 같았다.


한때 주름에게 감사한 생각도 들었다.


만일 그 온갖 스트레스가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면 소화불량으로든 심장 부담으로든 무슨 탈이 나 큰 병소가 됐을 터인데 외려 다행 아닌가 하고.


고통스러운 외적 갈등이 내부로 스며들어가 그때마다 상흔을 남겼다면 속이 만신창이가 됐을 것 아닌가 하고.


 


그러나 손바닥도 맞부딪쳐야 소리가 나는 법. 무턱대고 상대방 탓만 할 일이 아니었다.


원인은 모두 네 탓! 전적으로 모두 다 네 탓! 시종일관 책임 전가를 했더랬는데 아니었다.


곰곰 짚어보니 내 성격 탓이 더 컸다.


자존감만 하늘을 찌르고 이기적이며 고집 센 데다 너그럽지 못하고 이해심도 부족한 자신임을 왜 수긍하려 들지 않았던가.


편편하니 무던한 사람도 못된다. 옹졸하고 편협한 소갈머리에다 유한 구석 없이 까칠한 자신이다.



그처럼 비좁아터진 속에다 송곳 같은 성미는 대충 넘어갈 별것 아닌 일에도 쫀쫀하게 매달려 노심초사 안달복달 스스로 신상을 곤고하게 만들었다.


매사에 느긋하지 못한 데다 지나치게 과민해 제 속을 혼자 끓이며 더욱더 자신을 힘들게 했던 것이다.


이 나이 되도록 감정 조절에조차 미숙한 풋내 나는 자신, 수양을 해도 한참 더 해야 한다.


철이 들려면 여전히 한참 멀었다.


결국 많은 부분이 내가 부족하고 모자란 탓인데 둘째 손가락은 줄창 밖으로만 향하고 있었으니.



링컨은 나이 사십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고 했는데 민망한 노릇이지만 그 시절부터 이미 현진건의 <빈처>처럼 시들 마른 낙엽 같은 얼굴을 한 나였다.


당시 주변에서 좋게들 표현해 고뇌하는 시인의 얼굴답다고 했다.


허나 그에 상응할만한 각고의 결과물은 도시 나오질 않았고. 그때나 이제나 잡문에 매달려 노닥거리는 나.


그렇듯 잡다히 부딪히는 일상사로 지지고 볶아치다 보니 고뇌하는 시인처럼 시든 낙엽 꼴인 얼굴이다.


 면목없고 미안한 노릇이다.


  


가령 살이라도 좀 붙었으면 그나마 나으련만 체질상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찌니 비쩍 마른 얼굴에 기고만장 활개치는 건 주름뿐, 내가 봐도 가히 심각한 수준이다.


그리 거친 피부를 타고난 것은 아닌데 평소 게으른 탓에 세안도 대충 하고 피부 손질이라야 로션이나 쓱 바르면 끝이다. 


게다가 겁 없이 자외선과 맞서는 등, 한마디로 어이없을 정도의 무지막지한 의무 태만이었다.


그처럼 관리 소홀을 넘어 방치하다시피 한 결과 주름살이 마구잡이로 늘어나 버렸음을 솔직히 시인해야지 자꾸 누굴 걸고넘어지랴.


직무유기에다 자유방임의 후유증으로 곱게 잡힌 주름 대신 험한 골을 이룬 주름만 잔뜩 펼쳐놨으니 자신의 얼굴에게조차 민망스러울밖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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