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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무량화
Oct 26. 2024
마무리를 아름다이
오래전 어떤 텔레비전 프로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상황이다.
사자성어를 알아맞히는 퀴즈프로의 출연진은 시골 노부부.
할아버지에게 답을 먼저 보여준 다음 그 내용을 할머니가 알아듣도록 요령껏 설명해 주어
,
제한된 시간 안에 사자성어를 맞추게 하는 프로였다.
답지를 쓰윽 훑어본 영감님은 '까짓, 이쯤이야.' 하는 표정으로 빙긋 웃는 여유까지 보이며
자신만만하게 한마디 건넨다.
"임자하고 나하고 그런 사이 있잖여. 그걸 뭐라혀?" 척하면 삼천리,
이심전심 통하는 구석을 철석같이 믿는 영감님이다.
그러나 약간 긴장한 할머니, 영감님을 건너다보며 뜬금없이 뭔 소리냐는 듯 뜨악한 표정이다.
도통 감이 안 잡히는 모양인지 뚱한 얼굴로 "그게 대체 뭐여?"오히려 반문한다.
답답한 채 애가 탄 영감님이 던지는 제2탄.
"우리 두고 남들이 하는 말!" 그것도 모르냐는 듯 냅다 소리를 지른다.
봉건 군주처럼 군림해 온 전력에다 구세대 남편의 본색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아내를 수하 하인 다루듯 막 대하는 버릇은 여전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수십 년에 걸쳐 단련된 터라 고까울 것도 없다는 듯 담담한 할머니.
오직 답을 파악한 것에만 신바람이 난 할머니가 위풍당당 받아친다. "아~ 원수!"
당황한 영감님이 손가락 넷을 좌악 펴들고는 "아니, 넉 자여, 네 글자라구!"
이번에야말로 할머니 큰소리로 호기롭게 외친다. "평생 웬수!" 정답은 천생연분이었다.
동상이몽의 극치요 진짜로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오랜만에 걸려온 친구의 하소연 전화가 국제전화임에도 길고 길다.
은퇴한 남편이 집에 들앉아 하루 세 끼를 꼬박 차려달라니 꼼짝없이 매이게 돼
늘그막에 족쇄를 찬 신세가 됐다며 한탄이 무진 이어진다.
좋게 말해 선비 기질의 골샌님 같은 조용한 성품에다 반생을 교단에 선 양반이라
책 읽는 취미 외엔 즐기는 도락이 있는 것도, 친구들이 많은 것도 아니다.
남들처럼 산행이니 낚시에 흥미를 붙여볼 생각도 전혀 없이 흐리나 개이나 그저 집구석뿐이다.
도량 좁은 삼식 씨로 인해 그녀는 숨이 턱턱 막히는 게 갑갑해 미치겠다는 푸념이 늘어진다.
젊어서부터 학교와 집밖에 모르던 착실한
가장
이다.
한창때 남정네들 밖에서 주색에 빠져 아녀자들 속 무진 썩힐 그 즈음,
그녀 남편은 가정적인 모범 가장으로 친구들 모두가 선망해
마지않았
다.
일요일이면 온 식구들이 함께 가까운 야외로 나들이를 가고
방학이면 번번이 먼 고장으로 가족여행을 떠나는 참 부러운 생활을 하던 그네들이었다.
중년의 고빗길을 위태위태 넘어가던 우리와는 달리
반석 위에 지은 집처럼 안정된데다 바람 타지 않는 평화로운 친구네 가정이었다.
헌데 세심한 성격은 이제 '쪼잔한' 남자가 되어
별 사소한 살림 간섭을 다 하는 피곤한 사람으로 격하되었다.
자녀들도 갈수록 잔소리꾼이 되어가는 아버지를 기피하며 한심한 노인네로 치부해버린단다.
진작부터 가정밖에 모르는 꽁생원이라 낙인찍혀 사회성 전무한 남자로 굳어지면서
그 흔한 동창회 모임도 교류를 끊고 기웃대지 않았으니 불러내는 친구도 거의 없단다.
그렇게 점점 그는 소외된 아웃사이더가 되어 칩거 중인 모양이다.
그야말로 비온 뒤 길바닥에 비닐
쪼가리나 낙엽
들러
붙듯 집에 착 들어붙어 있는 남자.
해서 평소 죽이 맞는 벗들과 어울려 문화센터로 이것저것 배우러 쏘다니면서
찻집에서 수다도 떨고 연극도 보던 재미를 다 놓쳐버렸다고 그녀는 한숨을 푹 쉰다.
게다가 남편이 점점 몸에 좋다는 약들 이것저것 챙기며 신줏단지 위하듯 하는 것도,
또박또박 주는 대로 밥그릇 비우는 것도, 웬 잠이 그리 퍼붓는지 누웠다 하면 바로 코를 고는 화상도
매사 하는 짓거리마다 다 밉상뿐이란다.
이렇게 꼴 보기 싫어서야 정말이지 남은 인생 어찌 살꺼나 탄식하기에,
모두가 부러워 한 젊은 시절 얘기로 그녀를 위무하며
나이 들수록 건강만큼 소중한 게 없다는 뻔한 논리나 펴볼 도리밖에 없었다.
90년대 한시절 일본에서 부쩍 황혼이혼이 유행했다.
남편이 퇴직금을 받을 즈음 아내가 당당히 자기 몫을 요구하며 재산분할 訴를 건다는 것.
평생을 나붓나붓 상냥하게 남편 시중이나 들며
자신의 꿈은 접어둔 채 가정을 돌본 주부들의 뒤늦은 자아 발견에 따른 반란이다.
그간 가족 위해 바친 희생의 시간들을 법이 책정한 대로 가사 노동비로 환산해 챙기고는
남남으로 갈라서서 자유로이 살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더랬다.
일생을 자기주장 못 펴보고 남편 그늘에서 숨죽이고 산 여자들이
지난 삶에 넌더리를 내며 황혼에 이르러 과감히 반기를 드는 것이다.
그럭저럭 결혼한 지 사십 수년이 넘었다.
그간의 세월 잘 견뎌내고 여태껏 혼약을 지켜온 내가 꽤나 대견스럽다.
어찌 보면 나는 참 바보요 못난이, 뒤돌아보면 억울하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직 단 한 번 주어진 유한한 생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파란만장까지는 아니어도 우여곡절도 많았던 여정, 말없이 가슴에 묻어둔 사연들이 그 얼마인가.
나도 마찬가지라고 대거리하고 나설 만큼 후안무치는 아니어서
,
요셉
은 요즘 들어 더러 고맙다고도 하고 미안하다는 말도 건넨다.
봄바람은 물론 태풍 몰아치는 바람까지 한바탕씩 일군 터라 잘못한 일들이 많다며
죄스러워 한
다.
곤고하게 살아온 지난날을 증거하듯 남달리 주름이 깊은 얼굴,
무수히 그어진 굵고 가는 주름살이 지나온 인생역정을 말없이 대변한다.
그러나 인생사 결국 오십 보 백 보, 저마다 양지와 응달이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았던가.
게다가 나이 드니 이젠 자존심 상하거나 창피할 것도 별로 없으니 말인데
,
주색잡기도 능력이라 여기며 남자는 하늘이라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이 골수에 밴 구시대 사람인 그였다.
아집과 독선으로 똘똘 뭉친 데다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라고는 겨자씨톨만큼도 없던 위인이
뒤늦게나마 신앙의 힘으로 개과천선, 대폭 변화되었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지금 이 자리까지 왔을까?
그러니 날마다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당신은 매우 훌륭한 동료였소. 정말 만족스러운 삶이었소.
좋고 또 좋았소. 당신과 함께 있어서 좋았소."
53년간을 해로하다가 드디어 죽음을 앞둔 남편이 아내에게 건넨 마지막 인사다.
헬렌 니어링이 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 나온다.
결혼 40주년을 기념하는 보석은
샤파이어
이고 결혼 50주년은 금혼식이라고 한다.
벽옥
처럼
신비로
운
푸른
빛으로 삶의 깊이를 더해가며 영예로운 금혼식의 그날을
맞이
하고 싶다. 2010
<세월 쏜살같아 어느새 금혼식 훌쩍 넘어
명년이면 어언 녹색 평화로운 에메랄드혼식이 되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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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 지나니 만사 여유작작, 편안해서 좋다. 걷고 또 걸어다니며 바람 스치고 풀꽃 만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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