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일이다. 오는 가을을 영접하기 위해 소담스러운 국화분 둘을 현관 양 옆에 데려다 놓았다. 자주보라색과 진노랑빛 소국이었다. 가으내 향기롭던 그 소국이 한아름 만개한 꽃을 품은 채로 하룻밤 느닷없는 무서리에 맥없이 지고 말았다. 그냥 버리기 아까워 꽃송이를 따서 바짝 건조시켰다가 베갯속에 넣었더니 은근슬쩍 스며 나는 국향이 은은하다.
어젯밤엔 꿈길까지 그 향기가 따라왔던가, 유년의 뜨락에서 노니는 어릴 적 풍경이 어제일이듯 그려졌다. 꿈에서는 나도 어리지만 우리 엄마도 아직 젊다. 양지바른 툇돌에 방문을 떼어놓고 엄마는 창호지를 바른다. 새하얀 창호지가 눈부시다. 겹으로 바르는 손잡이 부분에 나는 국화 잎을 대각선으로 배치시켜 얹는다. 옆으로 고개 갸우뚱 기울인 채 중심이 맞나 가늠해 보는 엄마의 미소 어린 얼굴이 너무도 역력하다. 간밤 꿈 때문이리라. 비록 넉넉지 않았어도 훈훈하기만 했던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간단없이 밀려든다.
요즘과는 달리 꽃구경은 엄두조차 못 내던 겨울철에도 꽃과 만나는 방법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달빛 차가워지는 상강 지나 입동이 오기 전에 그 의식은 치러졌다. 먼저 희고 노란 소국을 송이 채로 몇 개 따둔다. 마당 한켠에 주먹만 한 구덩이를 파서 둘레를 토닥토닥 잘 다진 다음 그 안에 국화를 색 맞춰 보기 좋게 깔아 놓고 당시로는 귀하게 구한 유리조각을 얹는다. 다시 그 위에 고운 흙을 도톰하게 덮어둔다. 온누리에 백설 하얗게 덮이는 겨울이 온다. 그때 우리끼리만 아는 비밀의 장소, 잘 새겨둔 꽃의 위치를 정확히 짚어 살살 눈을 헤집고 흙을 밀쳐낸다. 성에 서린 유리 아래로 국화가 송이송이 얼굴을 내민다. 반가움에 탄성을 지르는 아이들.
작년 여름 한국에 나갔다가 삼십 년 만에 여고 친구를 만났다. 순전히 인터넷 덕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큰 덩치에 장대 키로 언니같이 든든하던 친구는 억양 심한 경상도 댁이 되어 있었다. 병원장 부인으로 포시럽기만 한 줄 안 그녀는 의외로 손마디가 굵고 거칠었다. 철 따라 매실 장아찌에서부터 늦가을 메주까지 손수 마련해 가족들 상을 차린다는 그녀. 지금은 며느리네 장이 보태져 시골장날 돌고 돌며 콩을 더 많이 사와야 한다고 말하는 그녀 표정이 사뭇 흐뭇해 보인다. 그처럼 그녀는 아기자기, 아주 곰살스럽게 살림 재미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분재와 수석을 오래 한 솜씨라 집안 곳곳이 잘 꾸며져 있는 것은 그렇다 쳐도 그녀로부터 대접받은 차는 감탄사가 절로 발해질 만큼 운치있었다.
붉으레 빛 고운 오미자 차를 내왔다. 건강 청량음료인 오미자 차는 식욕을 돋우며 몸의 독소와 부종을 제거해 주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또한 폐와 심장 신장에 작용하는 따뜻한 기운이 든 한약재가 오미자이기도 하다. 청정지역인 홍천산 오미자를 사기 위해 시월 첫새벽부터 강원도까지 차를 몰았다는 그녀다. 빳빳하니 풀 먹인 모시 차받침 위에다 보기에도 시원스러운 큼지막한 크리스털 글라스가 올려졌다. 커팅 잘된 글라스도 보석 같은데 그 안에는 또 하나의 진기한 보석이 들어있었다. 얼음 찔레꽃이었다. 황홀할만치 붉은 빛깔, 거기에다 시린 얼음 속의 흰 찔레꽃이 이루는 조화는 그야말로 오감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한 잔의 차를 앞에 두고 정감 어린 얘기들이 오갔다. 잊고 살았던 어릴 적 친구들 이름이 줄줄이 꼬리를 이었다. 그러면서 오미자 차 빛깔 곱게 뽑는 요령도 익혔다. 오미자는 찬물에 우려야 깔끔하니 떫은맛이 덜하다고 했다. 곁들여 얼음 찔레꽃 만드는 방법도 배웠다. 찔레꽃을 싱싱한 채로 유지시키기 위해 미안하지만 가지 째 잘라와 집에서 뒷 손질을 해야 한다고 했다. 찔레꽃을 꼭지 채로 따서 물에 살살 휑궈 물기를 뺀 후에 반만 물을 채운 얼음틀에 꽃을 펴서 올려놓은 다음 급랭을 시킨다고. 일차로 물이 얼면 꺼내서 그위에다 마저 물을 채운 후 다시 냉동실에서 얼려 보관해두고 쓰란다. 단, 얼음 만들 물은 반드시 한번 끓인 물이어야 기포가 생기지 않는단다. 그날 처음 마주했던 투명한 얼음 중간에 하얗게 핀 찔레꽃은 가히 예술이었다. 흰꽃 이파리가 동동 뜬 붉은 오미자 차, 둘은 환상의 조합을 이루고 있었다.
아직은 눈에 파묻힌 숲, 지난해 하얗게 꽃 피웠던 찔레 덩굴에는 찔레열매가 조랑조랑 빨간 얼굴로 얼음에 싸여있다. 그러나 나목의 겨울눈 점차 도톰해지고 산야 어딘가 호젓한 양지녘에 노루귀며 처녀치마가 살몃 봉오리 열어가고 있을 지금은 이월. 여긴 여전히 눈 깊이 쌓인 겨울이지만 저 눈 아래 어디쯤에서 움터오는 수선의 촉, 그 신비로운 태동이 감지된다. 어느새 입춘이 지났다. 봄이 오고 있는 것이다. 잰걸음은 아니나 틀림없이 지심 깊은데서부터 솟구치고 있는 봄의 기운. 어쩌면 창호를 새로 바르던 간밤의 꿈은, 새봄이면 나의 일상도 새로워지리라는 예시(豫示)와도 같은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