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슬 좋은 부부같은/ 자반고등어 한 손을 사왔다./ 겹쳐있던 몸을 떼어내니/ 움푹 패인 흔적들이 여기저기/ 함께 절여졌던 세월만큼/ 깊게 패여있다. 이성이의 시 일부분이다. 琴瑟之樂이요 琴瑟相和라 하였다. 거문고와 비파가 어우러져 조화로이 내는 소리처럼 부부 사이가 정겹고 화목하길 누구나 꿈꾼다. 해서 풍요로울 때나 가난할 때나,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아플 때나 성할 때나 항상 서로 위하고 사랑하며 검은 머리 파뿌리되도록 잘 살라는 말을 들으며 결혼을 한다. 그러나 천생연분을 만났다며 죽고 못살던 초심은 간데없어지고 요즘같은 세태엔 백년해로를 확실히 보장하기 어렵다. 워낙 쉽게들 간단히 갈라서는 세월인 까닭이다.
미국 서부를 여행하다 보면 무려 3천여 년의 풍상을 겪은 세코이어 거목을 자주 만나게 된다. 운명 교향곡의 장엄한 첫머리가 들릴 듯 위엄어린 숲의 화엄세계가 펼쳐진 곳.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라는 '제너럴 셔먼'이 있는 세코이아 국립공원이 아니라도 요세미티 등 숲이 울창한 곳이라면 어디서든 우람한 그 나무와 상봉하게 된다. 둥치만도 몇 아름에 우듬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다라니 솟구친 거대한 나무들이지만 의외로 얕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세코이어. 그러나 흙속 뿌리들끼리 뒤엉켜 서로를 지탱해주고 있기에 고지대의 강풍을 견뎌낼 수 있다는 그 나무.
그뿐 아니다. 땅 위 줄기가 희한하게도 자석이 맞붙듯 가까이 있는 이웃나무 밑동과 서로 맞붙는다. 그렇게 둥치가 합쳐진 채로 하나의 연리목 되어 보다 크게 성장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아메리카의 정신과도 통한다고 오래전 여행가이드는 설명했었다. 정정한 세코이어 기둥을 쓰다듬다 보니 거기 절로 겹쳐지던 까미유끄로델의 걸작품 <왈츠>. 지심 저 아래에서부터 뜨겁게 불타던 열정이 용틀임하며 힘차게 천상 향해 솟구쳐 오르는 것 같은 남과 여의 조각상이 기상 푸른 세코이어에 겹쳐졌다.
이십여 년 전에 본 북경의 자금성 후원에 서있던 나무도 생각난다. 두 몸이 한 몸이 되는 연리의 대장정 끝에 특이한 모습을 갖게 된 나무 하나가 구경꾼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두 나무가 한 덩어리로 서로 겹쳐진 채 가지가 얼크러진 향나무는 '사랑나무'란 별칭 때문인지 그 앞에서 사진들을 찍느라고 북새를 이뤘지만 수형은 볼품없이 비리비리했다. 그늘진 장소여서인가, 푸르른 활기도 별로 없거니와 새 한 마리 둥지 칠 수 없을 정도로 앙상하다 못해 빈약스런 나무는 바짝 마른 미라와도 같았다. 그래도 노트르담의 꼽추가 집시여인과 순애보로 마지막을 장식하였던 순간이 홀연 떠올랐었다.
학교 다닐 적, 도자기를 하던 시간에 연리지(連理枝) 문 흑상감을 한 독특한 문화재를 슬라이드로 본 적이 있다. 서로 교차되듯 엇갈린 나무줄기가 상감된 문양을 지닌 조선 전기 15세기 무렵에 제작된 그 백자병을 계기로 비로소 연리지란 단어에 눈뜨게 되었다. 백낙천은 장한가에서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읊으며 '하늘에 있어서는 바라건대 비익조가 되고 땅에서는 바라건대 연리지가 되기를...' 노래했다. 둘이 서로 죽어서도 영원히 하나가 되기를 바란 양귀비의 염원을 담았다는 시다. 애초부터 눈 하나에 날개 하나라 둘이 한 몸 이루어야만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새 비익조는 들어봤으나 연리지는 또 무어람. 궁금증으로 상세히 백과사전을 훑어보게 되었다.
그때 찾아본 사전풀이에 의하면,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맞닿은 채로 오랜 세월이 지나게 되면서 서로 합쳐져 한 나무가 되는 현상을 연리(連理)라 이른다는 것. 이처럼 뿌리가 다른 나무줄기가 서로 엉켜 붙어 마치 한 나무처럼 자라는 현상을 일컫는 단어다. 두 나무의 가지가 맞닿아서 결이 서로 통한 것은 연리지, 뿌리가 서로 다른 나무의 줄기가 이어져 한 나무로 자란 것은 연리목이란다. 신기한 것은 한 몸이 되어도 각각의 성격을 잃어버리지 않거니와 한 나무에 병충해가 생기면 다른 나무가 영양분을 나눠 줘 병을 이기게 한단다.
흔히 남다른 부부애나 두 남녀의 지극한 사랑에 비유되기도 한다는 연리. 그러나 남남이 맺어져 한평생 사노라면 굽이굽이 참고 견뎌야 할 일 무수해 더러는 인연의 끈을 놓아버리도 한다. 서로의 다름을 껴안고 하나 되어 의지하며 살아가는 연리목을 통해, 우리네 곤고한 여정 끝까지 인내할 수 있는 삶의 지혜를 배우라는 것일까. 어느 공동체이든 하나로 결속돼 서로 돕고 살면 어떠한 시련이 닥쳐도 어려움을 쉽게 극복할 수 있게 되리라는 무언의 가르침일까. 그리하여 서로 연합하여 조화 이루고 사는 아름다운 우리가 되라는 말없는 당부가 담긴 연리지요 연리목이리라.
오랜 지병으로 고생하는 아내를 보다 못해 자식들에게 짐 되지 말고 먼 길 같이 가자며 함께 자살한 노부부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회혼식에 이른 오랜 친구요 따뜻한 동반자요 좋은 협력자였던 반려를 머나먼 길 차마 혼자 보낼 수 없다며 마지막 여정을 함께 하기로 작심했다는 유서를 남겼다. 숨진 모습이 모자이크 처리된 채로 실렸는데 죽어서도 마주 껴안은 자세다. 화산재에 묻혔다가 발굴된 폼페이 유물 중에는 서로 으스러져라 꼭 부둥켜안은 채로 최후를 맞은 남녀가 있긴 했지만 한국정서로는 의외였다. 암튼 풋사랑에 눈먼 충동적인 정사도 아니고 줄줄이 자손을 둔 노부부가 그 결단에 이르기까지에는 얼마나 오랫동안의 고심이 따랐을까, 헤아리는 심사가 착잡하다 못해 애연했다.
그 기사를 같이 본 한 친구는 "멋져라, 얼마나 마나님을 사랑했기에... 역시 마지막까지 기사도 정신을 잃지 않으셨구나!" 짐짓 감동을 표하자 다른 친구가 대뜸 이죽거리는 말투로 되받았다. "아이고, 지겨워라. 평생 산 것만도 징그러운데 저승 가는 길까지 같이 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몸서리치는 시늉을 했다. 하긴 내생이 있다면 지금의 배필과 다시 만나고 싶냐는 질문에 한국의 아내들은 거지반 노우~라고 한다지. 짝을 잃으면 따라서 죽는 새도 있다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일을 당한 판에 오히려 화장실에 들어가 혼자 배시시 웃는다는 얘기도 떠도는 시절이다.
부부 인연은 누생에 걸쳐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만큼 지중한 연이다. 비록 한평생 살면서 알게 모르게 준 상처들로 '움푹 파인 흔적들이 여기저기/ 함께 절여졌던 세월만큼/ 깊게 패여있을' 지언정 그래도 세세생생을 거치다 드디어 어느 순간 맺어진 인연이다. 평생웬수로부터의 자유독립만세를 외치는 황혼이혼이 흔하다손쳐도 역시 부부는 서로 간에 든든한 버팀목이자 의지처. 그러나 한쌍의 원앙이자 연리목 되고자 한다면 먼저 상대에 대한 존중감과 신뢰심이 필수다. 2014